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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 작가 “인간과 도시는 한 몸”

생명력 지닌 유기체로 도시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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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9호 왕진오⁄ 2012.06.18 11:33:56

정신없이 지나가는 거리의 자동차들 그리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며 미로와 같은 빌딩 숲 사이를 헤매는 수많은 생명들. 도시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존재들이다. 인간이라고 지칭되는 생명은 자신의 욕심과 과학을 빌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 성장하고 변신하는 또 다른 생명체가 됐다. 그 변화의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도시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을 파괴시키는 공간이기도 한다. 본질을 잊어버린 이종 생명체로서의 우리에게 도시는 또한 위협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 혜자(43. 본명 김혜자)는 도시를 인간이 만들어낸 소유물이 아니라 스스로 에너지를 갖고 인간을 둘러싼 또 다른 생명체로 인지한다. “내 심리적 공간의 상징적 표현이 도시인 것 같다”는 그는 “나로부터 시작한 환경에 의해 내 존재가 변해가는 감정을 그려보고 싶었다.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나만의 느낌으로 그려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 도시는 정체돼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탐구하면서 변하려는 인간과 닮은꼴이다. 그에게 도시는 인간을 닮은, 또 하나의 에너지를 지닌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과 대상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탐구하던 작가 혜자는 2008년 ‘불확정 풍경(Uncertain Scape)’ 전시에서 작업실과 외부 환경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경계에서 도시가 지니는 무정형의 에너지에 관심을 쏟았다. 이어 ‘감정의 도시(Emotional City)’ 전에서는 작업실 외부 환경으로 들어가 도시가 지니고 있는 생명의 에너지를 자신의 오감을 통해 느끼면서 본질을 탐구했다. 혼돈과 질서로 뒤엉킨 도시의 에너지 작가 혜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외형적인 도시를 그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이끌려 사람들을 휩싸고 있는 에너지를 그린다. 그에게 도시의 풍경은 가상과 실재가 섞여 있다. 알 수 없는 에너지들이 혼돈과 질서로 뒤엉켜 있다.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조명들,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건물들, 어둠이 내려앉은 뒤 조명 덕분에 새로운 형태로 변신하는 도심 거리를 걷는 군중들. 이런 모습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는 개체가 아니라 유기적 관계로 연결되고 혼합된 하나의 형체로 나타난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도시 풍경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가상의 모습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다. 2008년 그의 작업은 거리의 간판들에 주목했다. 욕망에 의해 세워지고 내려지는 간판에 의해 포위된 건물의 상징성에 착안한 작업이었다. 건물이란 구조물은 그대로지만 욕망을 얹은 간판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정체성이 달라지는 모습을 담아냈다. 2년여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업에는 도심 거리가 나타난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는 공간으로서 거리는 안과 밖의 경계 영역이기도 하다는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내 문제에서 시작한 ‘나’라는 존재가 환경에 둘러싸여 변하는 것을 실존적으로 표현했고, 그 대상은 도시였다”며 “도시의 생명 에너지가 계속 변화하는 과정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변의 일상을 보고 느끼는 것을 도시라는 상징적 풍경으로 그려내고, 도시와 거리의 탄생 이전의 순간을 그려보고 싶었다”며 “내가 느끼는 도시의 느낌을 관람자들도 시각적 환영을 통해 똑같이 느껴보길 기대한다”고 희망을 밝혔다. 작가 혜자는 수학을 전공했다. 졸업 뒤 남들이 하듯 취업을 했지만 자신의 생활이 진정한 삶인지 의문이 끊이지 않다. 틀에 박힌 삶에서는 자신의 갈구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후 자신의 고민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수단이 그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붓을 잡았다. 지금도 작업이 끝나면 만족감보다는 또 다른 부족함이 생기는 바람에 그는 또 붓을 든다. 작품 속에서 도시와 사람이 마구 뒤섞이듯 그는 세상과 소통하고 묵묵히 주변을 지켜보면서 흔적을 남기는 화가가 되고 싶다한다. “내 주변을 살피며 느끼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삶을 살고 싶어요. 묵묵히 정진하는 삶을. 지금 시대는 혼란스러워도 나는 늘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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