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호 최영태⁄ 2012.06.19 10:44:00
최근 색깔론 공세 등을 통해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자들이 과거회귀적 면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권 도전로 나선 이재오 의원이 또 다시 구시대적 발언을 내놓아 구설에 올랐다. 이 의원은 1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나라가 통일돼 평화로워진 후라면 몰라도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의원의 발언이 시대착오적이며, 과학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는 점은 여러 가지로 증명된다. 우선 과학적인 데이터들을 보자. 2차 대전 당시 유럽에서의 조사를 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훨씬 잘 견디는 게 여자들이다. 독일군의 맹폭에 시달리던 영국 등에서 수시로 방공호에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자들은 위장장애, 신경쇠약 등에 시달리는 비율이 여자보다 훨씬 높았다. 스트레스 상황을 여자들이 훨씬 잘 참기 때문이다. 결정적 실수는 스트레스에 몰려 자기절제력을 잃었을 때 나타나기 쉽다. 흥분하기 쉬운 남자보다는 침착한 여자가 전쟁 상황 등에 더 잘 견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스트레서 상황에서 더 침착한 것은 여성 또 다른 과학적 데이터로는 침팬지 연구를 들 수 있다. 프란스 드 발 등 평생을 침팬지를 관찰한 학자들에 따르면, 침팬지 무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평화 파괴자는 100% 수컷이며, 암컷들은 최종적으로 우두머리 수컷이 정해지면 그 ‘알파 메일’에게 복종하지만, 우두머리 경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순간에는 약자 입장의 수컷 도전자의 편을 들어주는 등 ‘세력 균형자’의 역할을 한다. 싸움 상황에서뿐 아니라 평소에도 암컷 침팬지들은 특히 혈족적으로 가까운 친족 암컷 또는 나이어린 수컷과의 가족적 유대를 두텁게 다짐으로써 무리의 평화 유지에 큰 공헌을 한다고 유인원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건 침팬지 얘기지”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프란스 드 발 등의 침팬지 사회 연구는 인간의 정치적 행동과 아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므로 충분히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 리먼브라더스 아니라 리먼시스터스였다면… 경제적으로도 한 번 살펴보자. 2008년 세계 금융공황을 연출한 장본인인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였다. 우스갯소리지만 만약 회사 이름이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그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미국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최대 수익을 바라보고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는 ‘형제들’이 아니라 더 신중한 ‘자매들’이었다면, 전세계의 힘없는 사람들을 더욱 고통에 빠뜨리는 금융위기를 일으킬 확률은 훨씬 낮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과학적-경제적 이유 말고도 정치학적으로도 여성적 접근이 오히려 안보에 유리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분단 한국에서 흔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정치적 구호가 난무함에 따라 ‘북침 통일’ 또는 ‘흡수 통일’이 지상과제이자 목전의 과제인 것처럼 오인들을 하지만, 실제로 분단 한반도의 첫 번째 과제는 현상-평화-공존의 유지다. 주한 미군이 왜 있나? 북침을 위해서인가? 아니다. 남침을 막고 한반도의 현상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자는 게 미군 주둔의 원래 목적이었다. 당장의 한반도 최대 과제는 평화공존 유지하면서 미래 살 길 찾는 것 미군 주둔이라는 민족적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평화-공존을 유지했기에 한국의 이른바 수구보수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산업화(실제로 주역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피땀 흘려 일한 근로자들이다)가 가능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일부 인사들의 이른바 “전쟁이 나도 할 수 없다”는 식의 안보 태도는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무모한 수컷적 접근을 하는 것보다는, 무엇보다 우리 혈족의 안전이 중요하고 그러니 평화-공존을 유지해야 한다는 암컷적 접근이 훨씬 한반도 사태 해결에 유리할 수도 있다. 침공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남성적 공격성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평화를 지키는 과제에서는 남녀 차별을 가리는 발언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새누리당 일부 인사들의 시대착오적 발언(마치 지금이 유신시대라도 되는 듯한)은 지지율을 깎아내릴 뿐이다. 집권 여당의 좀 더 여성친화적 변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