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호 최영태⁄ 2012.06.27 09:40:18
드라마 ‘추적자’를 보는 재미 중에는 등장인물을 좌파와 우파로 나눠보는 것도 있다. 우선 지지율이 65%를 넘는다는 사실상의 차기 대통령 강동윤을 보자. 그는 출신이 비천하고(아버지는 아직도 현직 이발사), 재벌가의 데릴사위였다. 말하는 것도 좌파-서민적이다. “힘 있는 자와 타협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고 아래를 살피겠습니다. 서민들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겠습니다”는 그의 연설은 영락없이 좌파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출신이 비천하고 말을 좌파적으로 한다 해도 그는 영락없이 ‘수구 보수’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약자에 시선을 맞추는 듯 위장할 뿐이다. 강자에 마음 맞추는 우파, 약자에 마음 맞추는 좌파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이 여럿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강한 자에 맞추는 사람은 우파,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맞추려는 사람은 좌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힘이 있느냐 없느냐와는 상관없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정치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극빈층이라도 새누리당을 지지할 수 있고, 반대로 부유층이라도 민주통합당 또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다. 우파의 대표적인 감정이 수치심(강한 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이라면, 좌파의 대표적인 감정은 연민이다. 강동윤이 홀로 눈물까지 흘릴 때는 자신의 약함에 대한 분노 때문이지, 이 세상의 약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좌파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주인공 백홍석(손현주 분), 최정우 검사(류승수 분), 재벌가의 막내딸 서지원 기자(고준희 분), 조 형사(박효주 분) 넷이라고 할 수 있다. 위보다는 아래를 보면서, 약자를 도우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거의 다 우파인 가운데 딱 넷만이 좌파라는 설정이다. SBS의 이 드라마 홈페이지에 보면 등장인물을 좌우로 나눠 놓았는데, 왼쪽에는 좌파 인물이, 오른쪽에는 우파 인물이 배치돼 흥미롭다. 현실적으로 서민이면서도 강자에 끌리는 황 반장(강신일 분)이 오른쪽에 배치된 것도 재미있다. 드라마의 상황을 바꾸는 것은 좌파 등장인물에 달렸다 우파가 주름잡는 세상은 사람만 바뀔 뿐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힘과 권력이기 때문에 일단 권좌에 앉으면 약했을 때의 ‘수치심’이 강자의 ‘자부심’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그들은 세상의 불평등-양극화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즉 강자는 더 강하게, 약자는 더 약하게 만드는 쪽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아가게 된다. 반대로 좌파는 시선을 약자에게로 향하는 심리적 특성이 있기에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드라마 ‘추적자’에서도 상황을 바꾸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할 사람은 백홍석, 최정우, 서지원 셋과 이들을 돕는 조 형사뿐이다. 이들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극의 결말이 달라지게 돼 있다. 재벌의 막내딸이 험한 직종인 사회부 기자라는 게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에서처럼 북을 찢는 역할을 맡기기 위함인 듯하니 설정상의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다. 당신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누구에게 마음이 끌리는가? 그 어떤 역경이라도 뚫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강동윤인가, 아니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 한 몸 내던지는 백홍석 또는 최 검사, 서 기자인가? 드라마를 보면서 당신의 정치 성향까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