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호 최영태⁄ 2012.06.27 17:50:06
문재인 상임고문이 27일 관훈토론에서 "안철수 원장은 정당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큰 약점"이라고 발언했다. 흔히 안철수 교수에게 “정당 기반이 없어서 약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말을 바꿔 묻고 싶다. 정당 기반을 가진 기존 정치인들은 도대체 정당 기반을 통해 얼마나 정치를 잘 했느냐고. 사실 최근 한국에서 뽑힌 선출직 지도자 중 가장 잘한다고 칭찬받는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 아닌가 싶다. 시장 자신을 위한 시정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시정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정당 출신이 아니다.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시장에 당선된 뒤 민주당에 입당했지만 그가 펼치는 시정은 ‘민주당 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이 선출됐지만, 박 시장 같은 파격적 행정을 펼친 경우가 그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출신의 지자체장이 새누리당 출신 지자체장과 거의 다르지 않은 이유는, 둘 다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민주당을 개혁 세력이라고 하지만 서구적 기준으로 치면 그냥 보수 정당이다. 보수 정당이기에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은 대부분 보수적 정책을 폈다. 토건 옹호에, 親(친)대기업에, 노동탄압에…. 박 시장의 시정이 파격적인 것은, 그가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서 정치인이란 ‘엘리트’와 동의어다. 엘리트는 서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엘리트(선민)로 생각하고 정당에 들어가 정치를 시작한 기성 정치인들은, 그 출신 정당이 새누리든 민주든 상관없이 反(반)서민적 또는 서민과 상관없는 게 당연했다. 힘있고 돈있기에 정치 시작한 게 '정당 출신 정치인들'이었는데… 안철수 교수가 정치 참여를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의 지지율이 1, 2등을 달리는 이유는 오히려 그가 당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력 대권 주자 아래 모여든 자리 사냥꾼들’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두 거대 정당과는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유권자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철수 교수가 "나는 당이 없어서 자리사냥꾼들도 데리고 있지 않고, 그러니 박원순 시장이 시정을 펼치듯 나도 사심없이 국정을 펼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상당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다. 문 상임고문이 ‘나는 정당이 있기에 유리하고, 안 교수는 정당이 없기에 불리하다’고 말하려면, 그 이전에 민주당은 어떤 당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도대체 민주당의 정강정책은 무엇이고, 민주당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고 정권을 잡으려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컬러는 확실하다. 대기업, 있는 자, 힘센 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그렇다면 우리는 중소기업, 가난한 자, 힘없는 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당”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나? 그렇지 못하다. ‘민주당 출신’이라는 게 별로 힘을 못 발휘하고 있는 이유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나 대선을 앞두고서나, 민주당 출신이라는 게 별로 소구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문 고문이 “나는 민주당 출신이라서 안 교수보다 유리하다”고 하려면, 민주당의 성격을 앞으로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를 먼저 확실히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보수적인' 정당, '새누리당보다는 그래도 덜한' 정당으로 놔두고서는 “정당 기반 없는 대선 주자는 약하다”는 소리를 하기는 힘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