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제각기 선호하는 색들이 있다. 여러 가지 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혹은 기분에 따라 그 종류가 바뀌기도 하며, 특정한 색을 고집스럽게 좋아하기도 한다. 지난 30여 년간 유독 파랑색을 고집하며 모든 작업에 이 파랑 칼라를 사용하는 작가 조은필(33)은 유독 파랑색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변함없이 이 한 가지 색만 좋아했습니다. 제 주위는 파란 사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파랑에 대한 저의 집착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인생 전반에 걸친 평생의 인연과도 같습니다"고 말한다. 조 작가는 살면서 삶의 면면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형태와 소재들에 파랑색을 대입시켜 보았고, 자연스럽게 가장 적절한 파랑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미학적 안목과 실력이 생겼다 한다. 그의 작업에서 필요한 감성의 부분, 가장 인상적인 기억과 감정의 단편들은 그 형태와 상관없이 결국 파랑이라는 하나의 색상으로 귀결된다. 작품들은 대부분 파랗게 칠해져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물을 파랗게 칠하는 행위는 자신이 기억하고 경험한 부분을 기억해내는 행위이며, 지나간 시간들의 감성과 스토리의 재현이 작가 자신의 영역 확장으로 이어진다. 사람마다 잘 쓰는 언어가 있듯이 블루는 조은필에게 가장 오랫동안 그녀를 대신해 줬던 언어다. 일반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블루란 단어의 경직성이 작가의 손을 거쳐 완전히 의미가 다른 새로운 단어가 됐다. 일종의 파격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블루는 그녀와 함께 움직인다. 작품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색에 집중하는 조 작가의 방식은 오늘날 미술 조류를 볼 때 매우 드문 일이다. 과거 1세대 모노크롬 작가들의 회화가 그런 측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모노크롬은 지극히 평면주의를 지향했으며, 그들이 추구한 궁극의 회화관은 색을 바탕으로 한 우리 전통적 회화의 여백에 대한 감성적 실험이었다.
하지만 조은필의 블루는 조형성보다는 그녀의 정신이며, 전작과 다름없다.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작업들에 작가 자신만의 블루를 보여주기 위해 조각과 회화, 설치의 영역을 하나로 통합하는 집요함, 그리고 더 완전한 블루를 찾기 위한 여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조 작가는 블루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추상적 색을 재료로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삶의 면면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형태와 소재들에 파랑색을 대입시켜 가장 적절하며 완전한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미학적 안목과 실력을 키워갔다. 〃복잡미묘한 감정과 애환이 뒤섞인 개인사가 파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자라온 것 같습니다. 저의 기억과 감정의 단편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결국 파랑이라는 하나의 색깔로 마침표를 찍었죠. 파랑을 알면 알수록 더 순수한 파랑을 찾기 위한 욕망이 생겼고, 완전한 백색, 완전한 검은색과 같은 완전한 블루, 이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광기의 블루를 보고 싶은 저의 집착은 전공인 조각을 통해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런던 유학시절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입체적인 조형물과 평면 드로잉, 비디오 작업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하면 할수록 기법의 과잉이 오히려 순수한 블루의 존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블루를 에워싸던 수많은 필터를 걷어내고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갔다. 조형적 기법에서도 2차원과 3차원을 동시에 넘나드는 뜨개질을 이용한 작업들을 구체화시켰다. 이 작업들은 실 하나하나를 평면상에 겹친 2차원 배열을 통해 3차원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뜨개작업이다. 작가는 데자뷰처럼 기억 속에 생생히 전달되는 상황들에 대한 감정과 사유들을 현재라는 공간에 그래도 재현시켜 시공간을 초월한 기억들을 씨줄 날줄로 얽는다, 그 동안의 여러 가지 변화들로 인해 무너졌던 자아를 다시 찾아가고, 과거의 자신을 위로해주는 자기 치료를 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조 작가가 사용하는 파랑은 희망, 젊음, 신성함, 진실을 상징하는 일반적인 파랑보다는 훨씬 진하고 강한 울트라 마린 블루를 사용한다. 색채심리학에서는 광기란 의미를 내포하는 색이다. 하나의 색깔에 오롯이 집중해온 자신의 모습과 색상의 의미도 일맥상통하게 된다. 그는 최근 작업을 통해 완전한 백색, 완전한 검은색과 같은 완전한 블루를 찾고 싶은 욕망을 작업으로 선보인다. 어쩌면 유채색에서 순수한 색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에서 가장 원초적인 블루를 보고 싶은 본인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저 형태와 색이 가진 힘만을 극대화한 미니멀 아트를 넘어서서 삶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과정을 담아내려 한다. 너무 파랗다는 평도 듣지만, 이 색상이 익숙해질 무렵에 평면과 입체의 중간적 형태가 흥미롭게 눈으로 들어온다. 형태가 동물이나 다양한 다리들, 궁전 같은 모양을 보이지만 친숙하게 다가오고 비교적 대중적인 형태를 선보여 낯설지 않는다. 작가는 순수한 블루를 찾기 위해서 좀 더 직관적이고 단순한 방향으로 작업을 전개하고 싶어한다. 이를 통해 작가 조은필은 다양한 형태에서 가장 원초적인 블루를 보고 싶은 욕망의 표현으로 완전히 순수한 블루를 찾는 여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