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성복(48)은 모델을 세워 놓고 조각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꿈을 조각한다.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내는 말처럼, 작가는 어려운 시기에 스스로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앞으로 희망적인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주문을 걸 듯 작품을 완성해낸다. 일상의 무거움 앞에서 유쾌한 상상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담긴 그의 작업은 전래동화나 동물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현실에 맞도록 형상화시킨다. 그래서 익숙하고 알기 쉽다. 김성복의 작업에 등장하는 호랑이, 해태에서 차용한 동물 그리고 금강역사상 등은 원본이 있으면서도 김 작가 자신이 독창적으로 재구성해낸 형상들이다. “한국의 도깨비는 해학적입니다. 남을 괴롭히기보다는 같이 노는 친근한 이미지죠. 부를 상징하는 도깨비 방망이도 상징적입니다. 돼지를 쌓아 부를 축적하는 것처럼 일상의 희망적인 내용을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각가이자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그는 수많은 주제들 속에서 무엇을 찾기보다는 삶에 주목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교하는 게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를 은은히 녹여 넣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바탕이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하나의 표정, 하나의 형태를 이끌어내 작업하는 그의 조각상들은, 거친 사회현실 앞에서 굳건한 의지로 맞서려는 작가의 모습을 드러낸다. 초인처럼 강해보인다고 반드시 초인은 아니다. 겉은 강하고 낙관적인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회의적인 기운이 감도는 이중성이야말로 과거 자신의 작품을 구성하는 대표적 특성이었다고 그는 되돌아본다. 신화와 일상의 만남…“바람아 불어라. 나는 간다” 꽤 오래 전에 진퇴양난의 시기를 만난 적이 있다는 작가는 “내 삶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나? 예술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거듭했다. 작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그 당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야 할 것 같다는 의식을 가지고 “너는 할 수 있어!”라는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자는 일종의 의식처럼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라는 연작 작업이 시작됐다. 조각가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조각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희망적인 느낌이 여실히 드러나도록 구성을 했다. 그 자신의 유머러스하고 엉뚱하기도 한 캐릭터를 세상에 내보이듯, 그의 작품에도 그의 개성이 드러나 있다. 최근 그는 삶의 불안함을 해학으로 넘어선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신화 속 동물인 해태나 용의 형상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조형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신화 속 캐릭터는 그를 수호해주는 일종의 대리인이다.
“삶은 무겁고 진지하지만 가벼운 미학을 취하는 게 더 좋다”라는 입장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무거운 재료를 가지고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그는 힘든 삶을 넘어설 수 있는 경쾌한 유머를 택한다. 해학적인 동물상이나 상상 속의 도깨비 방망이에서 영감을 얻는 이유다. “금 나와라 뚝딱” 하고 두드리면 주르르 금을 쏟아낼 것 같은 도깨비 방망이는 가공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장난스럽다. 김성복은 전통을 자신의 경험으로 녹여내고, 자신의 일상에서 발굴할 줄 안다. 작업실에서 그가 쪼아내고 다듬고 갈아낸 호랑이의 얼굴에는 무거운 현실을 가벼움으로 버틸 수 있게 된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역경을 익살로 넘겨온 능글맞은 한국인의 자태가 스며 있다. 그래서 더욱 의미를 더한다. 호랑이 눈은 칼눈, 꼬리는 열정으로 꼿꼿 호랑이와 상징적인 동물로 표현된 작품의 네 눈은 칼날처럼 번득이며, 꼬리는 열정으로 충전된 남근처럼 꼿꼿하다. 전통의 모티프가 현재의 생명력으로 승화된 모습이다. 맥없는 일상은 그의 조형적 재치와 여유를 만나면 하나의 신화로 남는다.
그는 15년 동안 돌과 호흡했지만 최근에는 브론즈와 스테인리스 등 다양한 재질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미래의 세계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삶과 꿈의 열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형태 때문에 재료를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원하는 형태가 우선 완성되면 이를 조형으로 완성시키는 재료는 무궁무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삶을 조각하는 작가로서 이제 어엿한 중견 조각가인 김성복은 젊은 작가들에게 “자기가 현재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최근 미술 장르에서 평면 그림보다는 덜 평가되는 편인 조각 분야를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그는 “당장에 돈이 안 되더라도 좋아하고 자신있는 일을 하면 승산이 있다. 답을 찾으려 멀리 가지 말고 자신의 삶 속에서 소중한 자신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조각가 김성복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9회, 부스 개인전 12회 그리고 태화강 국제 설치 미술제, 동아 국제 조각 심포지엄, 마니프, KIAF 등의 기획 단체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2004년에 마니프 우수 작가상과 2008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교수와 동경예술대학교 조소과 석조전공 객원 연구원,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장으로 재임 중이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