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2호 최영태⁄ 2012.07.11 15:11:13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11일 대선 공약의 하나로 ‘정부 3.0’을 내놨다. “정보 공개의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대한 법률'을 개정해 공개할 수 있는 공공정보의 폭을 넓히고, 정보공개 의무 대상 기관을 늘리며, 분석결과의 근거가 되는 원천 데이터까지 개방하는 등 정보의 질을 높일 계획”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박 전 위원장의 ‘정부 3.0’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말하고 싶은 건 “여러 정보를 널리 공개하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국민 호주머니 건드리는 안건은 미국 하원 통과못하면 안돼!" 미국에 살면서 확인한 사항이 하나 있다. 바로 국민의 ‘돈’과 관련된 문제는 반드시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의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 정치의 철칙 중 하나로 한미FTA처럼 국민의 돈 주머니를 직접 건드리는 사항은 세상이 두 쪽 나도 미국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실행될 수가 없다. 그래서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는 의회 관련 소위원회는 물론, 미국 내의 여러 업종 대표들에게도 협상 진행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국은? “내용이 공개되면 국익에 해로울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막판까지 전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 국익의 정체는 뭐길래 국민이 알면 안 되는 것일까? 이때의 국익은 기업의 이익 또는 일부 관료의 이익으로 드러난 경우가 많다. 한국의 일부 관료에게 국민은 '적'이다. 심지어 한국의 협상대표들은 미국 하원의원에게는 살랑살랑 미소를 지으며 관련 내용을 소상히 설명했으면서도, 국내에만 들어오면 "너희들은 알 필요없어"라는 듯 차가운 표정의 벙어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협정 전문을 공개한다면서 “와서 눈으로 보기만 하고 복사도 안 되고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된다”고 했던 적도 있다니, 도대체 이런 정보공개의 원칙이 지구상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필요한 건 정보의 홍수가 아니다…꼭 알아야 할 것을 아는 게 더 중요 최근 문제가 됐던 일본과의 ‘군사정보 보호협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안인 데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최종 서명 직전까지 철저히 비밀리에 일이 진행됐다.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에게 널리 공개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보 공개의 ‘범위’를 넓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정보를 꼭 공개하게 하느냐’ 하는 점이다. 99.99%의 정보를 다 알아도 문서의 양으로 보면 0.01%에 불과할 수도 있는 한미FTA의 전문을 협상 진행과정에서 국민들이 모른다면, 나머지 99.99%의 정보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우리도 미국처럼 ‘국민의 돈을 건드리는 내용은 무조건 국회를 거쳐야 한다’든지, 군사-안보 관련 대외 협상, 해외 무기 구입 등에 대해서는 ‘사전 공개’를 의무화한다든지 하는 원칙의 확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원칙을 어겼을 경우는 대통령을 비롯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국익’을 핑계 삼아 걸핏하면 국민을 장님으로 만드는 정부, 국민을 적으로 아는 정부 아래서 사는 것은 정말로 너무 한심하고 고통스럽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마련할 정부 3.0의 내용에 이런 ‘원칙’이 확고히 들어가, 앞으로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으려 드는데도 어찌 할 바가 없네”라며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못 나오는 한국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