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삼각관계라 하면 남자 또는 여자 1명을 두고 ‘이성’ 2명이 다투는 상황을 떠올린다. 그러나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포스터에는 여자 2명이 손을 잡고 있다. 8월 5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막을 올리는 이 공연은 여성들 사이의 사랑에 주목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간 영화 ‘왕의 남자’ ‘쌍화점’이나 뮤지컬 ‘헤드윅’ ‘라카지’ ‘풍월주’ ‘쓰릴미’ 등 남성들 사이의 사랑을 다루는 공연은 선보여 왔지만 여성끼리의 사랑은 왠지 금기시 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1931년 4월 영등포역에서 기차선로에 뛰어든 두 여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자유연애라는 단어가 한참 만개했던 시절의 경성에서 사랑에 빠진 두 여인 홍옥임과 김용주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풀어낸다. 여러 가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작품의 중심에는 신의정(28)과 최미소(24)가 있다. 신의정은 사회에 진출해 계몽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강요로 학업을 중단하고 시집을 간 김용주를 연기한다. 최미소는 이화여전 작곡과에 입학해 남다른 행동거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 받지 못하는 홍옥임으로 분한다. 창작인 데다 초연이고 게다가 그동안 잘 다루지 않던 여성끼리의 사랑에 대해 다루니 부담감이 상당했을 듯하다. 신의정과 최미소 또한 처음 대본을 받고는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대본을 보기 전 노래를 먼저 들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전혀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엔 코미디 장르인가 했죠. 그런데 워크숍을 가서 대본을 보는 순간 완전 깜짝 놀랐어요. 미소는 알고 있었다는데 말을 안 해줬어요. 그래서 대본 리딩할 때 막 꼬집었죠(웃음). 초반에 연습할 때는 ‘널 사랑해’ 같은 대사를 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더 진하게 못해서 안달이죠(웃음).”(신의정) “저는 처음 악보를 받고 옥임과 용주 파트가 나오는데 제가 여자 역할을 맡으니 당연히 상대역이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둘 다 여자라는 말을 듣고 거부감보다는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도 임팩트 있었고요. 저도 처음에 눈을 마주치고 사랑 노래하는 게 힘들었는데 저희가 부담스러워하니 관객들도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지금은 평소 친하고 좋아하는 언니랑 함께 공연해서 정말 좋아요(웃음).”(최미소) “대상만 여자일 뿐 순수한 사랑은 똑같아요” 대본과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뒤로 하고 지금은 둘 다 공연에 푹 빠져 있다. 공연 포스터나 문구를 보고 여성 동성애를 그린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신의정과 최미소는 정작 “‘콩칠팔 새삼륙’은 다른 곳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면 오히려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극 중 옥임과 용주는 성별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사랑해요. 육체적인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사랑을 하는 거죠. 공연을 하면서 점점 옥임과 용주가 여성이라는 생각은 잊게 돼요. ‘파격 동성애’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저희가 놀랄 정도로 성별을 초월한 그저 일반적인 사랑을 연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관객들에겐 충격적일 수 있는 키스신도 태연히 연기하고 있다. 처음엔 둘이 워낙 친한 사이라 키스신이 더 어색하고 낯설어 이를 악물고 했지만 지금은 연인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몰입하고 있다. 원래는 고개를 돌려 키스를 했으나 관객들에게 김용주와 홍옥임의 애절한 사랑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정면으로 보이게 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열심히 연기하는데도 ‘키스하는 척만 한다’고 보는 분들이 있으니 억울해서라도 분명히 보여주겠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와 관련된 질문에 신의정과 최미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이어갔다. “요새는 동성애를 다루는 뮤지컬이 많잖아요. 처음에 ‘쓰릴미’를 보고는 동성애가 어떻다는 느낌보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서도 남성 동성애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열려있지만 여성들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더 쉬쉬하고 갇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공연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사랑 또한 일반 사람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신의정) “전 2009년 ‘돈주앙’을 할 때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처음으로 깨졌어요. 그때 댄서들이 스페인 사람들이었는데 2명 빼고 다 게이였어요. 그런데 정말 평범하게 사랑을 하더라고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어요.”(최미소)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김용주와 홍옥임의 사랑이 중심을 이루지만 꼭 이것만 다루지는 않는다. 김용주와 홍옥임을 둘러싼 류씨(조휘 분), 홍석후(최용민 분), 화동(정연 분), 김이진(김준오 분), 모단보이(김보현 분), 용주의 시모(유정은 분) 등 다양한 인물들이 1930년대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모던이 화두지만 도무지 모던이란 게 뭔지 갈팡질팡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는 가운데, 현대는 시작된 것 같은데 그것이 못마땅한 사람들 그리고 모던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갈등을 빚는다. 이러쿵저러쿵의 다른 표현 ‘콩칠팔 새삼륙’ 또한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새삼 공연의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콩칠팔 새삼륙’은 옛 우리말로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로 이러니 저러니 지껄이는 모습을 뜻한다. 주관을 잡지 못하고 새로운 문명에 방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르는 김용주와 홍옥임의 모습이 더욱 애처롭다. 신의정과 최미소는 “허세를 부리거나 남 이야기를 떠드는 모습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이 공감을 주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고 전했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극 초반에 나타나는 발랄한 김용주와 홍옥임과 닮은 것도 같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배역과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될까. 의외로 신의정은 “비슷한 점이 많지는 않다”고 고개를 젓는 반면 최미소는 “정말 비슷하다”고 끄덕였다. “용주는 학업에 관심이 많은 여성으로, 집안이 굉장히 부유한데 원치 않는 시집을 가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해요. 게다가 약혼자가 있는 옥임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긴 머리를 자르고 집을 나가버리죠. 항상 인내하고 속이 깊고 많이 아파하는 친구에요. 저랑 닮은 점은 거의 없어요. 전 좀 직설적이거든요. 느낀 그대로 말하고, 숨기려고 해도 티가 많이 나서 참지 못하는 성격이에요(웃음).”(신의정) “본질적인 게 다르긴 한데 비슷한 게 많아요. 옥임이는 1930년대에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솔직하고 감정적인 모습이 그 시대에 이해받지 못했죠. 옥임이가 2012년에 살았으면 딱 저처럼 살았을 것 같아요(웃음).”(최미소) 대답하는 것마다 참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도에 신의정이 배우, 최미소가 고등학생일 때 처음 만나 2008년엔 ‘라디오 스타’에 같이 출연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돈주앙’에서는 같은 역할을 맡으면서 서로 의견을 나눴고, ‘콩칠팔 새삼륙’에서도 닭살 돋는(?) 우정을 과시한다. 언니-동생이기 이전에 마치 친구 같은 느낌이란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더욱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이런 점은 요즘 공연계에서 드물게 더블이 아니라 원캐스팅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상대방을 누르겠다는 라이벌 의식보다는 함께 공연을 잘 해나가기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엔 힘으로만 노래해서 다음날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완급 조절이 잘 안 됐어요. 울면서 공연하기도 했죠. 그런데 ‘페임’ 공연을 거의 두 달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목 상태도 체크하게 됐고요. 당연히 더블 캐스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젠 원캐스팅이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이번 공연에서 용주 역할은 저만이 소화하고 있으니 더욱 책임감을 가지게 돼요. 힘든 점도 있지만 자부심이 강해요.”(신의정) “데뷔한 이후로 가장 심한 관리를 하고 있어요. 술도 끊었어요. 연습 때부터 단 한 잔도 안 마셨고요. 카페인도, 야식도 끊었어요. 의정 언니가 예전에 완급 조절이 안 됐다고 하는데 제가 딱 그 시기에요. 지금도 원래 목소리보다 굉장히 작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웃음). 제가 목소리가 워낙 크거든요. 언니가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줘서 고마워요.”(최미소) 목소리 조절에 힘을 쏟고 있다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귀를 사로잡는다. ‘콩칠팔 새삼륙’은 그동안 잘 시도되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에 눈길을 돌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매혹적인 노래를 들려준다. 노래에 관해 물어보자 둘 다 표정부터 황홀해진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는 김용주와 홍옥임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1931년의 조선에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큰 결심을 하는 ‘너와 나의 둥지 찾아’를 꼽았다. “상황 기막히게 표현하는 노래들 정말 좋아” “노래들이 정말 좋아요. 억지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캐릭터들의 감정을 기가 막히게 고민해준 티가 나요. 박자가 바뀌면서 빨라지고 느려지는 것도 이유가 있고요. 라이브 밴드라 변박도 있어서 힘들기도 한데 서로 딱 하나가 됐을 때 소름이 돋아요. 가사도 좋고 정말 천재 작곡가라고 생각해요.” 또한 이런 음악과 더불어 배우들과의 환상적인 호흡이 이번 공연의 자랑이란다. 많은 배우들이 나오지 않고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에서 공연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가식 하나 없는 정을 듬뿍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가족 같은 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 노래 녹음부터 대본 리딩, 쇼케이스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콩칠팔 새삼륙’을 통해 하루하루 더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다음 꿈이 궁금하다. “인성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전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갇혀서 저 자신을 너무 많이 채찍질했지만…. 진짜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식적이지 않고 편안한, 인성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앞으로 많이 노력하겠습니다(웃음).”(신의정) “10대 때는 최연소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고요. 데뷔한 다음에는 제가 나오는 작품들을 관객들이 믿고 볼 수 있게끔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작품을 하던 간에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웃음).”(최미소) 시종일관 형식적이거나 딱딱하지 않고 생기발랄하게 이어진 인터뷰를 아쉽게 끝마치고 연습장으로 가는 신의정, 최미소의 뒷모습을 뚫고 그들의 미래가 벌써 보이는 듯하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