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9대 국회 들어 정치권 쇄신 차원에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앞 다퉈 공언했으나 첫날 첫 무대에서 허무하게 깨져 버렸다. 국회는 7월 11일 19대 국회 첫 본회의를 열어 3선 중진의원들인 무소속 박주선,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결과는 박 의원은 가결됐으나 정 의원은 부결되는 등 엇갈렸다. 당초 이날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국회 개혁의 시험대로 평가되면서 여야의 공언대로 통과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엇갈린 결과가 나옴에 따라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이다. 특히 정 의원을 부결시키는 데 앞장섰던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어떤 명분을 갖다 붙인다 해도 ‘동료 의원 감싸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정 의원은 17대 대선 직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 원 정도의 불법자금을 받을 때 동석했고, 그 돈을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따라서 오는 12월 19일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특권포기를 강력히 밀어붙인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 의원 동의안 처리를 국회개혁의 시금석으로 삼았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이날 본회의 직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국민의 법 감정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며 가결을 당부했다. 그러나 김용태 의원 등이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심사 전에 국회가 피의 사실을 인정해주는 꼴”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 의원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새누리당 지도부는 할 말이 없게 됐다. 당장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은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새누리당이 국민을 배신했다” “여당은 무죄이고 야당은 유죄인가”라며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 지도부를 겨낭해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잘못 대처하다간 대선 가도에도 역풍이 우려된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주자인 박 전 위원장의 ‘원칙과 소신 정치’에도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벌써 나오고 있다. 물론 11일 표결 직후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총사퇴’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국민 여러분께서 갈망하는 쇄신 국회의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며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물론 이처럼 국회가 동료의원을 비호하고 나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은 45차례 제출됐지만 가결된 것은 9차례에 불과했다. 18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것은 학교 공금 81억 원을 횡령한 강성종 민주당 의원에 대한 딱 한 건이었으며, 이것도 14대 국회에서 민주당 박은태 의원 체포안이 통과된 뒤 무려 15년 만이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권위주의 정권의 부당한 탄압으로부터 국민의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불체포 특권이 법을 어긴 의원들의 피난처로 악용된 측면도 있다. 이런 마당에 19대 국회는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로 쇄신 약속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됐다. 그러므로 여야의 쇄신 경쟁이 쇼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 국회개혁을 가속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여야 모두 의원연금 대폭 축소, 겸직 금지 등을 담은 쇄신안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며 개혁을 약속했다. 19대 국회 스스로 특권 내려놓기에 박차를 가해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해나가기 바란다. - 심원섭 정치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