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호 최영태⁄ 2012.07.19 21:18:26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봤다. 안철수는 역시 강했다. 지난 총선부터 현재까지 정치인들의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가독성' 또는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정도'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안철수의 생각'이 단연 최고다. 기자-출판사의 힘을 끌어모은 '역작' 이유는 3가지다. 1. 인터뷰 형식을 취했다 2. 기자의 힘을 빌렸다 3. 국내 최고 출판사를 택했다 등이다. 우선 인터뷰 형식의 장점이다. 정책은 복잡하고 어렵다.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거친 감정적 언어로 충분하지만, 정책을 보여주려면 어쩔 수 없이 복잡한 용어나 설명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정책 설명을 주절이 주절이 설명체로 하면 보통 국민들이 읽을 수 없다. 상당한 식견을 가진 지식인들도 '정책집' 형식의 책은 읽기 힘들다. 다루는 분야가 워낙 넓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인터뷰 형식을 취하면, 이해도를 극도로 높일 수 있다. 묻는 이가 '요점을 추려' 질문하고, 답변자는 그 요점에 대한 자신의 요점을 답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어체가 아니라 대화체라서 읽기가 더 쉬워진다. 안철수는 이런 형식을 취했다. 열달 간의 생각정리를 최고의 형식으로 내놓은 역작 두 번째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의 힘을 빌렸다는 점이다. 제 교수는 기자 출신인 만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쓰는 데' 최고다. 기사식 글쓰기의 특징은 '누구나 읽게 쓴다'는 점에 있다. 문장 앞뒤를 왕복하지 않고 죽 읽어나가도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가는 게 하는 게 잘 쓴 기사의 특징이다. '기자와 인터뷰 형식의 책 내기'는 안 교수의 아이디어란다. 그의 내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내가 쓰자"가 아니라 "함께 쓰자"다. 세 번째 안 교수는 국내 최고 출판사 중 하나인 김영사를 출판사로 택했다. 같은 콘텐츠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가독성은 크게 달라진다. 다른 정치인의 최근 나온 책은 '오로지 활자'로 돼 있어, 읽기 너무 힘든 반면, 안 교수의 책은 고품질 흑백사진을 적절히 배치해 읽는 마음 역시 깔끔하다. 안 교수의 책을 읽기 전에 민주당 모 대선 후보가 내놓은 책을 읽었는데, 내용은 좋지만 너무 어려웠다. 책 두께가 굵고 줄줄이 말하는 서술식이라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한다. 전문가를 위한 '정책 자료집'이라면 이렇게 지루한 형식을 취해도 괜찮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에 읽히려면 안철수 같은 형식을 택해야 한다. 앞의 것은 '불통의 책'이고 안철수의 것은 '소통의 책'이다. 인내심을 가져야 읽히는 '대선 후보의 책'은 자격미달 반면 안 교수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최근 열 달 동안 확실하게 정리한 뒤, 기자의 힘, 출판사의 힘을 빌려,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나절에 읽을 수 있게 했다.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유권자의 가슴을 파고들어가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박근혜 캠프의 홍사덕 선대본부장은 "책 한 권 달랑 들고 나와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은 무례하다"고 비난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에게 권하고 싶다. "한 번 읽어보고 말씀을 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