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신작에 이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그린(green) 신작은 기존 시리즈보다 더 넓어진 의미를 담은 작품들이에요. 쉽게 말하면 잠시 쉬어가는 번외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밝고 경쾌한 느낌을 강조했어요.” 자칫하면 촌스럽게 보일 수 있는 초록색이 정연연의 작품에서는 싱그럽고 산뜻한 느낌으로 심플하면서 더 세밀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사회 속 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꾸준히 제기해 온 정연연 작가를 이온 갤러리(EON Gallery)에서 만났다. 언제나 밝고 당찬 모습으로 활기가 넘치는 정연연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주제에 맞춘 그림을 그려왔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좀 더 밝고 가볍게 가기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그렸다. 그렇다고 기존의 주제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그동안 여성에 중점을 뒀던 범위를 더 넓혀 세상을 바라보도록 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들이에요. 여성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넓혀진 거죠. 눈도 양쪽이 다른 오드아이로 그렸어요. 가끔 우리는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또는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이네’라고 이야기하지요.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 보임을 강조했어요. 또한 우리는 각각의 눈으로 다른 세상을 보기도 해요. 오드아이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라는 의미로 표현했어요. 당신이 보는 세상의 눈이 주제에요.”
작품을 그냥 보면 한 인물만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인물의 머리카락 안에 새로운 인물들이 있다. 이 인물들은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상징하는데 사람의 표면적인 모습뿐 아니라 그 심리까지 깊게 파고들어 작품에 담고자 한 의도다. 그녀가 그리는 여성은 모두가 다른 얼굴들로, 전문 모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도 아닌, 주변 지인들의 얼굴이다. 때문에 모델 섭외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모델을 선정하는 데 있어 얼굴과 몸매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와 어울리는 이미지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으론 작가 자신이 작품이 나올 법도 하지만,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관심사는 바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 시리즈에 모델을 6명 정도 그리는데 먼저 사진으로 촬영한다. 전체적인 자세와 눈과 입모양 등 얼굴표정 하나까지 모두 직접 연출한다. 그리고 원하는 느낌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반복하고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 작업을 할 때만은 평소의 그녀가 아닌 진지한 모습으로 열정이 묻어난다.
여성성에 대한 관점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을 이야기해 “제 작품을 보고 작가 또한 작품처럼 여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일 거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실제로 작업을 할 때에는 좀 더 여성적이고 세밀한 성격이 되기는 해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털털한 성격에 웃기고 엽기적인 만화를 좋아하는 평소의 저로 돌아오죠.” 전시되는 작품 중 그린 신작에서 또 달라진 점은 재료와 배경이 수채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처럼 종이에 수채, 구아슈, 잉크, 금박 등을 쓰지만 여기에 메탈박이 추가됐다. 메탈박은 국내서 구하기 힘든 재료이기에 앞으로 계속 사용할지는 아직 확정짓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화이트, 레드, 블랙 시리즈에 이어 번외편으로 잠시 그린 시리즈를 선보인 정연연은 벌써 내년 후반기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다음 정식 시리즈로 정해진 색감은 옐로우&블루라며 조용히 얘기하는 그녀는 지금보다 더 큰 화면에 오밀조밀한 맛을 보이는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색감별 시리즈를 통해 순결과 청결, 중독과 매혹적인 여성, 모던하면서 고귀하지만 어둠과 죽음을 나타냈던 그녀가 산뜻하면서 편안한 느낌에 이어 다음에는 어떤 의미와 이야기를 건넬지 궁금해진다. 전시는 7월 16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온갤러리에서.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