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제 사고의 총칭이라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단어 하나로 시작됐는데 계속 이어가다보니 인간과 세상에 대한 저의 폭넓은 호기심이 용기에 응축된 거 같아요. 유형의 용기(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와 무형의 용기(씩씩하고 굳센 기운) 외에도 다의적(벌레가 탈바꿈을 하는 과정의 한동안 둥)으로 쓰이죠. 즉 ‘용기’라는 단어의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무한한 잠재성을 부여해 비유적인 형상성을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화사한 색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밝은 기운을 전해주는 김호경 작가의 작품 주제는 ‘용기’다. 용기라고 하면 대부분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무엇인가를 담는 그릇 또는 겁내지 않는 기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이를 다 포괄하는 광범위한 용기다. 이러한 용기 작업은 2003년 작업실에 있던 작은 주전자(용기)를 사유하며 시작됐다고 한다. “주변 사물을 소재로 한 상상적 형상들이라는 논문을 쓸 정도로 사물을 항상 가까이 하고 그림으로 그리다 보니 힘들 때 주전자(용기)가 저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때부터 주변에 버려지는 용기들(냄비, 기타, 가방 등)에 관심을 갖고 오브제로 활용하게 됐죠. 버려지는 용기를 깨끗이 닦고, 상처를 치유하듯 붕대로 감은 후 정성껏 색을 칠해 작품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듯이 우리도 살면서 입게 되는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을 담았어요.”
이렇게 10년 가까이 용기를 생각하고 이미지화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것이 용기로 보인다는 그녀는 용기를 가지고 놀다가 용기 안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그녀는 작업 방식에 있어 형식적으로는 화면을 색면으로 나누어 구성하는 방식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대학 학부 때부터 여러 방법으로 화법을 실험해 왔는데 색면이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방식 중 하나였기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색면 만들기 위해 수십번 덧칠하는 오랜 작업 “어려서부터 다양한 미술놀이와 색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원색 위주의 색감을 잘 썼죠. 색과 함께 놀았고 색을 쓰는 게 즐거웠어요. 이후에 공부하면서 미술사에 나오는 여러 가지 기법들이 어릴 때 자연스럽게 놀면서 시도하던 것들이라 신기하기도 했죠. 만약 색 자체에 무게중심이 실렸다면 색면 추상으로 빠졌을 수도 있겠지만 성격상 자연스럽게 지금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밑바탕도 한 번이 아닌 열 번 정도를 칠하는데, 그 위에 색면 하나마다 수십 번을 덧칠한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다양한 색을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에 색에 따라 다르게 수 십 번씩 색을 올린다. 때문에 작품은 평면이지만 입체감이 두드러지며 두께도 다 다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작업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이어가야겠지만 요즘에는 빠르게 작업하는 작가들과 경쟁하기 힘들어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고 털어놨다. 미술의 많은 장점 중 하나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그녀는 작가와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공감하는 기쁨도 크고, 관람객이 다른 느낌은 받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라고 했다. 예술에는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한다는 말이었다. “제 작업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작업이 나올지 저도 기대가 될 정도에요. 첫 개인전부터 대중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전시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고 일반 가족들이 참여하는 ‘해피 용기 프로젝트’라는 전시도 기획해서 많은 분들과 좋은 추억이 됐어요.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어요.” 현재 ‘용기 대행진’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아트북도 준비 중인 그녀는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확장시켜 나가고자 한다. 대중들에게 작품을 보일 기회를 넓히고 자신만의 독특함을 유지하며 기억되려는 노력이다. 김호경은 7월 13일부터 8월 30일까지 나무그늘갤러리 영등포점에서 개인전을 연다.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