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286호 최영태⁄ 2012.08.11 17:03:11
양학선 선수의 ‘금메달 신기(神技)’를 보면서 즐거웠던 마음이, 그의 비닐하우스를 보면서 눈물로 바뀌고, 그의 비닐하우스 집에 전달됐다는 라면 100박스를 보는 순간 짜증으로 바뀐다. 도대체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70년대로 돌아갔다고 하더니, 왜 금메달 뒤에 이어지는 스토리도 70년대식으로 돌아가는지…. 세계 유일의 기술을 갖춘 체조 1인자의 집이 비닐하우스라는 사실은 가슴 짠한 감동스토리, 효자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 주거 복지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아들은 국위선양을 위해 징발돼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서민을 위한 복지는 없고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만 판치는 이 나라의 금메달 부모는 찜통더위에 비닐하우스 신세다. 이런 현실을 전하면서 언론들은 그저 ‘효자 스토리에 뭉클'에만 머물 뿐, “이들은 왜 비닐하우스에 살아야만 하나?”라는 문제 제기의 시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금메달리스트의 비닐하우스‘는 미국-유럽에서도 감동스토리일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본다. 미국이든 독일이든, 세상을 놀래게 만드는 신기한 기량을 갖춘 선수가 금메달을 딴 뒤 그의 집이 비닐하우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이나 독일의 언론은 감동스토리를 전하는 한편,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이 나라의 주거 복지는 도대체 어디로 갔나?”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부터 쓰지 않을까.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된다'는 질타와 함께…. 사람이 살 집이 없어 비닐하우스에 산다는 것은 이유야 어떻든 비극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대통령, 유명 스타 등이 참여해 빈민을 위한 집을 무료로 지어주는 ‘해비타트(Habitat)' 프로그램이 꾸준히 운영된다.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염가 임대주택이 많기에 최소한 국가 대표 선수의 부모가 비닐하우스에 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비닐하우스가 기가 막힌데 이번에는 또 라면 100박스가 전달됐다고 한다. 기업체의 홍보에 도움 되기를 바라는 모양이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모에게 라면 100박스를 전달하는 게 과연 아름다운 풍경인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극빈 메달리스트에 라면 100박스‘는 기업 홍보에 정말 도움이 될까 예전에 1986년 아시안게임 때 “라면만 먹고 뛰어 금메달 땄다”는 임춘애 선수의 스토리는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때만 해도 너나없이 라면을 먹던 때라 “라면을 먹고도 할 수 있다”는 정신은 국민을 북돋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금메달리스트의 집은 비닐하우스요, 라면을 먹는다’는 2012년판 스토리는 북돋는 효과는커녕, 이 나라의 무(無)복지와 무신경에 짜증만 돋굴 뿐이다. 금메달리스트에게 집이 없으면 집 한 채를 주면 되고(이 땅의 수많은 무주택 비닐하우스 거주민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이), 금메달리스트의 가정이 어려우면 라면을 듬뿍 안겨주면 된다는(도대체 라면 회사의 홍보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가 될지를 생각하고 한 결정인지가 의심스러운) 70-80년대식 발상이 왜 이 땅에 아직도 판을 치는지, 이 땅에서 도대체 올림픽의 의미는, 운동선수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저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