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가 아닌 옷에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임혜영 작가의 그림에는 인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옷의 형체, 주름, 꽃무늬, 색동, 줄무늬, 도트 등의 다양한 패턴과 곡선에 대한 주목과 탐닉이다. 임 작가는 과거 정물 풍경을 즐겨 그렸다. 그러나 그리고 나면 무언가 불만이 쌓이고 답답해지는 것에 “붓을 놓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라는 조언을 듣고 옷에 주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옷을 사랑해서 옷을 많이 샀어요. 시장에 가서 옷을 사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요. 생활의 냄새가 묻어나는 재료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게 됐습니다." 옷을 화면으로 사용하는 작가는 일상의 애환이 묻어있는 홈웨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회화적으로 완성된 패턴과 모습을 집어넣고 있다. 임 작가의 작품은 단순히 옷에 대한 정교한 묘사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리기 과정에서 느껴지는 옛 기억과 순간순간의 느낌들을 바탕과 옷 주변에 채워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원색적인 색상과 대비되는 중후한 분위기의 무채색과 함께 화면이 어우러져, 풍부한 톤이 형성되고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내면의 풍경이 드러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옷들은 인물에 착용되어진 모양 그대로 표현됨으로써 현실성을 벗어난 초현실적인 구성들이 두드러진다. 화면 가득 메워진 옷과 옷감의 패턴 위에 하나의 작은 원피스를 한 귀퉁이에 그려 넣거나, 단추가 자연스럽게 풀려 벌어진 블라우스 안에 붉은 양귀비꽃을 배치한다. 또는 가슴 쪽 안감에서부터 한 송이의 꽃이 화면전체로 화려하게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 관념을 적극적으로 사물관계에 끌어들임으로써 내면의 모습과 여성의 열정, 독립성 등을 작품에 상징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옷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진 임 작가는 옷을 그리되 사실적인 패턴이 아닌, 옷에 들어간 예쁜 문양을 그리며, 옷이 가진 의미에 행복을 담는 작가로 남고 싶어 한다.
아직은 여성복을 주요 소재로 표현하고 있지만, 싫증이 나면, 유아복이나 남성복 그리고 유니폼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임 작가는 오는 9월 5일부터 11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16번째 개인전을 연다. 옷을 탐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캔버스 위에 다채로운 옷을 그리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자신에게 옷을 입혀주며, 자신의 삶을 진솔하고 아름답게 코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회다. 다양한 문양의 옷들이 펼쳐져 있는 화면은 바로 삶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여인의 이야기가 화면 곳곳에 펼쳐져 삶의 대한 사랑과 긍정, 그 감흥을 화면 가득히 채워가는 작가의 열정과 호흡을 느끼게 한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