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호 최영태⁄ 2012.08.14 18:00:57
현대자동차의 사측이 14일 노조에 내놓았다는 파격적 임금협상안이 화제다.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지만 회사 측에서 먼저 내놓은 방안이 ‘임금 9만5천원 인상, 성과급 350%+900만원’이라니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월급 한 푼 오르지 않고, 물가는 팍팍 오르는 현실에서 고통 받는 ‘신의 직장 바깥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속이 상할 만도 하다. 이에 한 네티즌은 “기본급 200만원으로 쳐도 1600만원이네. 대단하구만요…. 그렇게 뛰어난 성과가 자국민 등쳐서 나온 거라니 씁쓸하네요”라고 댓글을 남겼고, “협력업체는 죽든가 살든가 모르겠고…. 에라이~ 이기주의 새끼. 노조나 경영진이나 너거끼리 잘 묵고 잘 살아. 언젠가는 국민에게 외면 받고 뒈질 날이 올 꺼야”라는 저주섞인 소리도 나왔다. 현대차가 돈을 많이 벌어 부분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것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특히 산업별 노사협상을 정부가 앞장서서 말리면서 회사별 노사협상을 적극 권장하는 한국에서는 그렇다. '신의 직장' 벽을 깨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 과제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은 하청기업들을 쥐어짜고, 재벌 3세, 4세를 위해 일감몰아주기를 하면서 천문학적인 이득을 남기고 있다. 하청업체를 쥐어짰건 말건 일단 확보한 이익을 놓고 개벌 기업 안에서 알아서 노사협상을 하라는 게 한국 정부의 지침이니 이번 현대차의 경우처럼 ‘국민의 배를 아프게 하는’ 노사협상안이 나오기가 일쑤다. 현대차 안에서만 보면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영층은 더 많은 이익을 내려 노력해 성과를 거뒀고, 그렇게 거둔 이익을 일부라도 분배받기 위해 노조는 팔을 거뒀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 보면 이렇게 아무 문제가 없는 ‘선의의 행동들의 연속’이 사회적으로는 한국 경제를 병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과정에서 불공정거래가 이뤄져도 공정위는 묵묵부답이고, 재벌의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진출 등에 대해서도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현재까지 진보 진영에서 나온 방안으로는 △재벌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통한 경제정의 구현(“처벌하자”) △‘신의 직장’ 바깥에서 가차 없는 시장의 저주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대다수를 위한 복지 정책의 확대(“고통을 줄여주자”) △유럽 같은 산업별 노사교섭 체제를 만들어 같은 업종에서는 선도 업체의 노사협상 결과가 산업 전반에 두루 미치도록 하자(“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의 추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인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하는 것" 경계선 안(‘신의 직장’들)과 밖(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복지 격차가 한국처럼 크게 차이가 나는 나라도 없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좋은 직장”이라는 곳에서 받는 임금이 1인당 GDP의 1배~1.5배 정도 받는 것이라면, 한국에서의 “좋은 직장” 임금은 1인당 GDP의 2~3배나 된다는 것이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주장이다. 경계선 안쪽의 사람이 이렇게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는 것은, 바깥의 사람들을 착취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앞의 네티즌 같은 저주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과거 군사독재정권 치하의 개발연대 시기에는 너나없이 임금이 올랐기에 조금 더 오르고 조금 덜 올라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처럼 일부 기업만 임금이 크게 오르고, 나머지 대부분 기업-직종에선 물가인상 탓에 실질임금이 마이너스가 되는 사태는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논의가 무성하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건 절대로 경제민주화는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경계선 안팎의 이런 착취구조를 없애는 것도 재벌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민주화의 과제다. 누구는 너무 많이 받고 누구는 너무 적게 받는 현재의 한국 임금 시스템은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임금민주화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인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한다"는 김종인 박근혜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의 말을 유권자는 깊이 새겨들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