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호 최영태⁄ 2012.08.23 10:59:09
‘짝’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자 출연자가 결혼의 기본 조건으로 “잠실 29평 전세 정도”라고 발언한 내용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이들에게 최근 출간된 ‘결혼불능세대’(김대호-윤범기 지음)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단순히 결혼불능세대만을 논한 게 아니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2013년 이후 국가전략’을 논한 스케일 큰 내용을 담았지만, 단순히 2012년 현재의 결혼 세태를 아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저자들의 현실 파악은 간단하다. 현재 한국의 실정에서 결혼할 수 있는 남자는 딱 두 부류라는 것이다. 하나는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한 남자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가 1억 5천만 원 이상을 턱하니 내줄 수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다. 전자는 당장은 돈이 적어도 ‘미래’가 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고, 후자는 아버지가 집을 사주니 결혼할 수 있다. 나머지 대다수는 ‘신랑의 몫’으로 정해져 있는 집 장만 때문에 결혼을 못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해결책도 제시한다. 근본적으로 신랑이 집을 장만해야 한다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집은 부부가 돈을 모아 마련해 나가는 것” 또는 “집 장만은 부부의 공동책임”이라는 식으로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지금처럼 젊은이 태반이 홀몸으로 살아야 하는 비극이 계속될 것이란 지적이다. 과거 다 같이 못 살 때, 그리고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았을 때는 거의 모든 신혼부부가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너나없이 그렇게 시작하니 창피할 게 없었다. 그 뒤 부부가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늘려가고, 내 집 장만까지 하는 즐거움을 맛보며 사는 게 현재 40대 후반 이상의 인생살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강남스타일’(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재산이 많아 신혼집을 사주거나, 아니면 최소한 좋은 대학 나온 신랑이 융자를 끼고라도 전세라도 얻을 수 있는)이 표준이 되면서, 번듯한 아파트 전세라도 마련하지 못하면 결혼을 못하는 이상한 세태가 돼 버렸다. 미국에서 '맨해튼 스타일' 또는 '베버리힐즈 스타일'이 표준이 된다면… TV 드라마들이 온통 돈 많은 할아버지-아버지를 가진 사람들만 주인공을 삼으니 이른바 ‘강남스타일’이 한국인의 머리 속 표준이 돼 버렸다. 미국이나 일본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이다. 만약 뉴욕 맨해튼(집값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이 표준이 된다면 미국 젊은이들은 절대로 결혼을 못 한다. ‘맨해튼 스타일’을 표준으로 만드는 바보짓을 미국 TV들은 안 한다. 미국 젊은이들은 “결혼의 천국”이라는 라스베이거스로 가면 불과 몇 십만 원만 있으면 결혼 사진만 촬영하고 카운티 정부(한국의 구청에 해당)에 결혼증명서만 제출하면 정식 부부로 등록을 마칠 수 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인의 어깨를 흥겹게 만들고 있지만, 한국에선 TV 드라마를 점령한 ‘강남스타일’이 한국인의 씨를 말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