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호 최영태⁄ 2012.08.24 16:11:57
가끔 실언을 내놓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4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구태정치가 묻지마 살인 행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해 시끄럽다. 그는 민주당을 가리켜 “국민 짜증 1등급 정당”이라는 원색적인 표현도 사용했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저서 ‘노무현 이후’에 쓴 대로 “시대의 어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중근은 살인자고, 4. 19 학생들과 5월 광주 시민들은 폭도고, 6월의 광장 시민들은 교통 방해나 일삼는 불법 폭력 시위자다. 그들에게 전두환 장군은 구국의 영웅이며, 검찰은 정의의 사도고, 조선일보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론지”이기 때문이다. 세상 잘 돌아가는데, 전혀 문제없는 정의로운 사회인데, 너무너무 좋은 대한민국인데, 이런 지상천국에다가 불평을 늘어놓는 시끄러운 정당, 짜증 1등급 민주당이 있으니, 국민들이 짜증이 나서 묻지마 칼부림을 벌인다는 그의 진단이, 그의 입장에서는 진실일 수도 있다. 자살-살인율의 상승은 야당 아닌 집권당에 책임 있다는데… 그래서 그에게 그리 읽기 어렵지 않은 책이니 제임스 길리건 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일독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길리건은 의사다. 그는 교도소 수감자들의 정신상담 등을 하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의문에 잠긴다. 미국의 자살-살인 곡선은 꾸준히 등락을 거듭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리 저리 분석하던 그에게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자살-살인율이 ‘전염병 수준으로’ 높아지고,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보통 수준으로 자살-살인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보수적이었던 그에게, 이런 가설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자살률이 높아지고, 살인자들이 더 날뛴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생각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통계분석을 처리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통계학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공화당이 집권하면 자살-살인이 늘어난다’는 가설이 틀린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실패한다. 그 어떤 다른 요인과는 무관하게, 분명히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자살-살인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염병 수준으로. 그 이유를 길리건 박사는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 못 사는 사람, 성공 못한 사람을 조롱하고, 그들에게 수치감을 안겨주는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민주당 책임이 맞구만. 그러니 책임지라고 정권을 당장 넘겨” 이렇게 수치감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힘 셈 사람은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린 내 모습을 남의 머리에서 지우기 위해 남을 죽이고, 힘 약한 사람은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린 내 모습을 내 머리에서 지우기 위해 나를 죽인다.”(길리건의 책에서 인용) 길리건 박사의 진단을 읽으면서 바로 떠오르는 게 한국 사회다. 그런데도 이한구 대표님은 야당 때문이란다. 그의 발언파문을 알리는 기사에 한 댓글이 붙었다. “민주당 책임이 맞구만. 그러니 민주당더러 책임지라고 정권을 당장 넘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