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서고 있는 터키. 이 나라의 시각 예술사에서 동시대 미술은 이전 표현양식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약 2세기 전부터 시작된 터키 시각 예술의 특징은 오스만터키 제국 지배층의 주도 아래 서유럽의 문화적 토대를 포용하는 것이었고 그때부터 서구의 모방이 시작됐다. 그 시도는 붕괴되어가는 제국의 재건을 도모하면서 서방에 맞선 권력 중심지를 유지하려는 데 있었다. 전통적으로 시각성(특히 인체의 형상 표현)을 금기시했던 터키 미술은 매우 독특한 발전 과정을 지니고 있다. 화가라고 불렸던 몇몇 관료들의 초기 작품들은 매우 특이하면서도 순진한 속성을 보여준다. 새로움의 놀라운 지표 중의 하나는 자연을 직접 바라보는 대신 사진에 담긴 자연을 보면서 풍경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1299~1923년) 말기에 주로 엘리트층이 서구 문화 예술과 접촉했지만 ‘서방화’라는 개념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주로 머물렀다. 표현된 형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서구 예술이 의식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약 100년에 걸쳐 국가 차원에서 유럽으로 파견된 예술가들의 영향력이 미진했던 까닭이 내성적이면서 비교우위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점에서 비잔틴 문화의 공간적(혹은 폐쇄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화,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예술의 공간과 시간의 해방과 맞물리게 됐고 현대화를 거의 겪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이르게 됐다. 의식, 관념의 변화와 함께 요구되는 새로운 표현, 즉 자유는 오랫동안 터키 미술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었던 추상과 구상의 구별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모방의 영역을 단숨에 넘어서는 터키 미술의 새로운 시대는 시대착오적인 영역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을 동시에 포용하는 공시적인 표현성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표현성을 통해 절충적인 형태가 아닌 터키의 고유한 감성을 지닌 무염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터키 현대 미술의 무염성(또는 온전성)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나눌 수 없는 초월적인 시간, 공간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터키 현대 미술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초대전을 연 비디오 작가 페르핫 외즈귀르(Ferhat Oezguer)와 부르한 도한차이, 애롤 아키야바쉬 등 파리 퐁피두에서의 전시를 통해 명성을 확인한 작가들이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터키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포함한 터키 현대 미술 작가들은 새로운 표현과 형식으로 그동안 봐왔던 미술에 새로운 의미와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왜 터키 예술인가 동방과 서방, 전통과 현대를 함께 수용하는 나라 오늘날의 광범위한 세계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험 중의 하나인 터키 현대미술은 국제미술시장의 떠오르는 별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경매장에서 터키 예술가들의 작품 가격이 치솟았고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작품들은 많은 수요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눈에 띄는 작품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은 때로 놀라운 역설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터키 시각예술의 오랜 역사를 고려해볼 때 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하다.
터키 시각예술은 오랫동안 서방에서 시작된 기본 조류들을 겪었고 자신의 독특한 작품들을 시대착오적인 형태로 제시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로는 20여 년 전에 시작된 여러 가지 흐름에 따라 갑작스런 전환을 이루었고 최근 터키의 현대적인 시각성은 이제 국제 현대예술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주도적인 박물관-미술관 등의 터키 문화와 예술가들에 대한 투자 컬렉션 덕분이다. 현대예술의 실체를 규정짓는 또 다른 요소는 재료의 다양성이다. 여러 가지 다른 감각과 방식으로 표현되는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사진 등은 전통적인 미술의 수단들을 능가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수단의 두드러진 출현을 뒤에서 결정하는 요소는 아마도 미술시장의 탄생일 것이다. 새로운 컬렉터 계층뿐 아니라 터키 현대예술에 투자하는 기관들이 시장의 미래를 위해 주목할 만한 세력이다. 새로운 화랑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는 이스탄불은 아마도 최근 들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동향을 보이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스탄불 비엔날레의 성공적 운영과 함께 독자적이면서도 매우 품격 높은 터키 아트페어의 인기는 이 분야에서 기여도가 높은 또 다른 요인이다.
동방과 서방, 전통과 현대, 옛 것과 새 것을 함께 수용하는 터키에서 출현하는 이 새롭고 놀라운 예술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그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엔날레는 미술계의 담론을 만들어내고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을 떠받쳐주면서 터키는 천천히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커버 작가]부르한 도한차이(Burhan Dogancay) 경제학박사에서 대표 화가로 앙카라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L’Academie de la Grande Chaumiere 에서 수학했다. 그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아버지 화가인 아딜 도한차이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비롯됐다. 그는 파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2년부터 미국 뉴욕 거주를 시작했다. 1969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타마린드 석판화 연구회 특별 연구원으로 선정됐고 1995년에는 평생의 미술에 대한 업적 및 공헌을 기려 터키 정부가 수여하는 국가 훈장을 받았다. 그는 1956년 앙카라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한 후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의 뉴욕, 워싱턴, 오하이오 및 스위스, 독일, 캐나다, 벨기에, 스웨덴 및 일본에서 많은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어 1982년 파리 퐁피두센터, 1992년 러시아 생 페체르부르그의 러시아 국립 미술관, 1983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현대 미술관 같은 세계 일류의 전시관에서 초청 개인전을 했으며 1987년 제1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등에 참가했다. 그는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건립했고 현재는 미국 뉴욕과 터키 이스탄불 및 보드룸에 거주하며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