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혜련(35)은 공간을 횡단하는 나무들 또는 기억을 입체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나무와 가죽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다양한 주제의 작업을 선보인다. 정 작가는 머릿속의 기억들이 현재의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물이며, 현재의 작품에 드러나는 조형성이 실제로 무의식의 세계 혹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에게 과거란 폐기된 존재가 아니라, 현재의 지속적인 토양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가의 '추상적인 시간(abstract time) Ⅰ'은 롤링된 나무를 이용해 공간에 자유롭게 그린 입체 드로잉의 성격을 펼쳐낸다. 과거 작품에서 정치, 사회적인 진실을 보여 왔던 정 작가는 ‘모든 것은 과거에서부터 온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지나온 시간을 작품에 투영시키고 있다. 작가의 머릿속의 기억들은 현재의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물이다. 현재의 작품에 드러나는 조형성은 실제로는 무의식의 세계 혹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며, 과거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속적인 토양이다. "기억이나 사실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작가는 한국 추상 조각의 거장 우성 김종영의 작품 세계와 예술정신을 기린다. 교육자로 후학 양성에 헌신했던 선생의 업적을 계승하고자 매년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김종영미술관의 '2012 올해의 젊은 조각가'로 선정된 정 작가는 10월 14일까지 새로운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그가 새롭게 선보인 '추상적인 시간'의 작업은, 구상 작업을 전개하던 작가가 “현재의 무엇인가를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결과물이다. “외부 조명이 아닌 자체발광의 자유를 표현” "예전의 작업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업의 경향을 따라한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스스로 결정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무를 이용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원형의 빛이 나오는 작품은 외부의 조명이 아닌 자체 발광을 통해 빛을 노출시킬 수 있는 자유로움을 표현해 보려고 제작한 작품입니다”고 말했다. 특히 '추상적인 시간'의 작품은 공간의 한계를 띄어 넘을 수 있도록, 모듈을 개발해 처음으로 적용시킨 작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평소 전시 장소에 제약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늘 공간과 재료의 크기로 인해 제대로 표현을 못했죠. 그런데 모듈을 만들어, 이 하나에 제 모든 것을 넣었고,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장소가 아무리 커진다 해도, 모듈의 숫자만 변경하면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정 작가의 표현대로 모듈로 만들어진 작품은 이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얼마든지 작가의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동하기도 용이하고, 제작하기도 편리해 새로운 공간드로잉의 재료로서 변화의 발판을 작가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