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도전은 언제나 설렘과 불안함을 동시에 수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간 학교나 직장, 처음 사귄 친구나 애인 같이 처음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이란영(44) 연출은 요즘 연출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 첫 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제작비 20억 규모의 대형 작품인 데다 아직 검증받지 않은 창작-초연 뮤지컬 ‘쌍화별곡’의 연출과 안무를 동시에 맡았기 때문이다. 부담감에 잠도 못 이룰 것 같은데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첫 연출이라 더 과감하게 할 수 있었어요. 앞선 경험이 있었다면 예전 작업과 비교해 ‘이건 이래서 안 돼’ ‘이렇게 해보니 안 되더라’ 등 제약이 많았을 텐데 백지 상태라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공연을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웃음).” 인터뷰 바로 전날(9월 11일) 첫 공연을 올린 이 연출은 아직도 감동에 젖어 있었다. 연출로서 첫 데뷔 무대였는데 배우들과 마치 마지막 공연을 올린 것처럼 눈물을 흘릴 정도로 임했다고 한다. “흥겹고 정말 따뜻했다”며 “사고도 없었고 관객들 반응도 좋았다”고 들떠서 연신 미소 짓는 모습이 참 천진난만하다. ‘쌍화별곡’은 신라시대의 유명한 인물 원효와 의상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역사적 배경 위에 새로운 상상의 요소들이 더해 재구성했다. 원효나 의상은 워낙 잘 알려진 위인이지만 역사적-종교적 배경 때문에 사람들이 뮤지컬로 접하기엔 다소 부담스럽거나 어려워 보인다는 편견도 있었을 법하다. 이 연출은 “사람들이 처음 가지는 고정관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면서도 쌍화별곡 대본과의 신선했던 만남을 회상했다. “대본이 해학적으로 가볍게 돼 있었어요. 이야기 자체의 흐름에서 설명적이지 않은 부분이 어렵기도 했지만 매력적이었어요. 저랑 이희준 작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단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빛과 음악, 연기로 이 매력들을 설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또 인간의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첫 연출이 하필 초연-창작 뮤지컬이라니 제목만 들으면 고리타분한 역사와 종교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 같지만 ‘쌍화별곡’이 가장 주목하는 건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평범한 감정들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 식의 극적인 변화나 사건, 자극적인 소재 없이 무덤덤하게 흘러가면서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원효와 의상이 요석공주와 선묘낭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질투하고, 아파하기도 하는 등 특별할 건 없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감정들을 담은 이른바 ‘감성 뮤지컬’임을 이 연출은 강조했다. 이 연출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지만 그 시작에 있어선 어려움도 많았다. 창작에다가 초연은 위험 부담이 많기에 배우들 캐스팅에도 난항을 겪었다. 그때 선뜻 다가와준 사람이 정선아 배우다. 정선아 배우 이야기가 나오자 이 연출은 ‘진정한 의리파’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장 먼저 선아가 캐스팅됐어요. 창작이라 대본도 음악도 나와 있지 않고, 공연 기간도 그리 길지 않게 잡힌 시점에서 모든 부분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죠. 외국에서 검증된 작품이면 오디션 경쟁률이 치열했을 텐데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미지에 제작사 측도 처음으로 맡은 작품이라 선뜻 다가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평소 친분 있었던 선아가 제 첫 연출작이라니까 대본도 안 보고선 바로 출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선아를 주축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였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들이 모이다 보니 이렇게 스케일이 커졌어요.” 화합하는 팀워크를 자랑한다는 ‘쌍화별곡’ 팀에서 그녀는 호랑이가 아닌 온화한 연출가로 통한다. 이는 배우, 안무가로서도 오랜 시간 활동해온 이 연출의 남다른 경험이 만든 결과다. 발레를 전공한 그녀는 대학교 4학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던 중 뮤지컬 ‘캣츠’를 보고 “저거다!” 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배우로서 공연계에 뛰어 들었다. 1992년 ‘카르멘시티’로 데뷔하고 ‘넌센스’ ‘아가씨와 건달들’ ‘코러스 라인’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유명한 뮤지컬에서 주연급을 소화해냈다. 그토록 동경하던 ‘캣츠’에도 발레 실력을 인정받아 출연했다. 2010년엔 ‘컨택트’란 작품에 출연했는데 외국에서 온 스태프들과 일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들이 많았다. 이때 배우들의 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이 연출은 “배우들이 뭘 두려워하고 싫어하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며 “예전엔 배우가 살찌면 무대가 기우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예민했는데 이젠 강압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좀 더 다정하게 이야기를 듣고 다가가려고 한다. ‘쌍화별곡’ 연습하면서 큰 소리를 한 번도 안 냈는데 드문 경우라고들 하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군림하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봐주는 관객이 연출의 역할 아닐까요” 이렇게 배우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알 정도로 배우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안무가, 연출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이 연출은 배우로서 활동할 당시 자신에게 더 엄격한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공연을 할 땐 솔로로 노래를 부르는 파트가 있잖아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나서 정말 마음에서 감동이 우러나와서 격하게 치는 박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과감하게 배우를 포기했죠.” 배우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2000년대 초반 런던에서 안무 공부를 하고 돌아온 뒤 뮤지컬 ‘컴퍼니’의 조안무를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와이키키’ ‘삼총사’ ‘햄릿’ ‘피맛골연가’ ‘모차르트’ 등의 안무를 맡아 활약했다. 그 결과 2005년엔 한국뮤지컬대상 안무가상, 2008년 제2회 더뮤지컬어워즈 안무상을 수상했다. 배우와 안무 분야에서 모두 정상을 맛봤던 그녀가 이번엔 연출로 다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이 두렵지는 않을까. 이 연출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연출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답이나 공식이 따로 정해져 있진 않아요. 어떤 사람이 연출을 맡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이 나오기도 하죠. 그래서 저도 제가 연출을 하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궁금했어요(웃음). 또 공연계는 연출이나 안무, 배우가 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전 스태프들에게 첫 번째 관객이 되고자 했어요. 무대, 음악, 대본까지 모든 부분들을 연출이 처음으로 보고, 듣고, 올바르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기도 한데 그래도 재밌어요. 다시 이렇게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에너지도 충전하고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안무가로서 또 연출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열정을 집합시킨 ‘쌍화별곡’ 하나하나에 이 연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9월 30일까지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마치고 이후 부산, 대구, 중국에서 공연을 이어갈 ‘쌍화별곡’에서 점점 더 부각을 드러낼 이 연출만의 스타일을 기대해본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