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호 최영태⁄ 2012.09.24 11:25:14
‘당내 민주주의가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증명하고 있다. 인혁당사건 발언에 대한 대처가 2주나 지지부진 이어지면서 결국 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큰 폭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새누리당에 당내 민주주의가 있다면, 지난 9월 10일 박 후보의 ‘인혁당 사건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는데도 2주 동안 전원이 박 후보의 입만 쳐다보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사 정리 없이는 전진도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면, 각기 다른 의견이 분출되면서 그 갈등의 해법을 찾는 노력들이 시작되고, 이러한 논의로 해결이 안 되면 데모가 벌어지는 등 혼란상을 빚는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든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해결방안이 도출되거나 아니면 “지금 상태에선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봉합되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이렇게 최종 단안이 내려져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사든 뭐든 갈등이 일단 불거졌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테니까’라고 생각하며 “과거는 잊고 미래로 나가자”고 하는 게 헛소리임을 우리는 한일 관계에서 계속 확인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상한 논리가 있다. 산업화세력이 따로 있고, 민주화세력이 따로 있다는 거짓말이다. 박정희-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산업화를 이끌었고, 김대중-노무현 등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민주화를 이끌어왔다는 소리다. 이게 맞는 소리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의 큰 물줄기를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군부독재 세력이 “산업화의 주인공이다”라고, 즉 그들이 없었다면 산업화가 안 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산업화세력이니, 민주화세력이니 하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 쉽게 말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한국인들, 즉 일제 강점기부터 해외로 나가 산 한국인들은 재일교포든, 재미교포든 현지에서 상당한 성공을 일궈냈다. 한국인이 잘나고 부지런하기에 경제기적이 있었던 것이지, 국민은 못 났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군부 세력만이 잘나서, 그들이 없었다면 경제발전이 없었을 것이라 단언하는 것은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이미 박정희 유신시대 때 박 정권은 모든 걸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인혁당사건 같은 무리수를 둬야만 했다. 그런 저항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야당 지도자들이 눈에 띄는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없었다고 한국에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는 것 역시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산업화든, 민주화든 이뤄낸 것은 총칼 앞에 가슴을 내밀고, 기계에 손가락을 잘리면서도 할 일을 해낸 국민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민주화세력이니, 산업화세력이니 하는 거짓말은 이제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한국은 더 이상 ‘영명한 리더’가 지배하는 사회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끄럽지만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찾아낸다. 한국인이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가졌기에 정치-경제 체제를 바꾸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것이다. 만약 유신 체제가 1979년에 끝나지 않고 10년만 더 이어졌다면 한국은 북한 같은 폐쇄사회가 됐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렇듯 민주주의가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새누리당에 당내 민주주의가 없이, 당직자들이 전원 엎드려 눈알만 굴리면서 박 후보의 입만 쳐다보는 ‘복지안동’의 자세로 있는 한, ‘인혁당 사건을 2주 끌면서 지지율을 망가뜨리는’ 것 같은 사태는 계속 일어나게 돼 있다. 민주통합당이 “혁신 없이는 집권 못 한다”는 진단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역시 “당내 민주주의 없이는 집권 못 한다”는 사실을 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