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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연 작가, 선으로 만들어낸 강직한 정신성

판화 외길로 한국적 아름다움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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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3호 왕진오⁄ 2012.09.24 11:11:44

“홍재연의 회화에서 상징성은 영혼의 항해를 위해 설계된 배 같은 모양으로, 성당, 성화, 성인의 유골함을 연상케 한다. 강렬한 빨강, 파랑 그리고 금색으로 둘러싸인 아크릴화는 비전통적이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홍재연의 이미지는 아몬드 모양을 한 만다라처럼 정관을 독려하려는 아시아적인 추상 모티브의 계보를 계승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헬렌 해리슨(Helen A. Harrison, 잭슨 폴록 미술관 디렉터)은 서구적 시각을 기본으로 종교적 측면을 내비친다. 단순한 형태와 그가 사용하는 색상에서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는 종교적 원천을 발견했다는 의미다.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화면에 가득 담긴 자연에 대한 거대한 감성은 미처 몰랐던 홍재연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계룡산 인근 갑사를 여행하던 중 사찰의 부도를 발견하면서 ‘바로 이거’라는 깨달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깨달음이라는 명제 아래 ‘부도’ 시리즈 연작을 만들면서 진실함에 대한 소통을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가 찾은 아름다움이다. 그는 “자연의 거대함에 나 자신이 너무나 작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자연을 노래하고 싶은 생각을 작업으로 풀어냈다”며 “여기에는 희생, 사랑이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내가 깨달음을 통해 얻은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시대 판화의 명맥을 위한 여정 서양화가 홍재연에게는 판화라는 명제가 항시 따라 다닌다. 오늘날 미술을 다루는 이들에게 판화는 미술의 본질적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시장에서 찾지 않는 장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 그의 행보는 가히 장인이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를 위해 꾸준히 정진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가 판화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 것은 1980년대 초 해인사의 8만 대장경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화엄경 변상도를 보게 된 이후였다고 했다. 한 판에 수많은 경전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내 그 이해를 높이는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석판화 작업을 하면서 회화가로보다 판화가로 불리게 됐으며 한국현대판화가협회장도 맡았다.

판화가로 지칭되는 것에 대해 그는 “최근 미술계가 판화냐 유화냐를 구분 짓는 것이 너무 심하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성 같다.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미술계의 답답함”이라며 판화를 멀리하는 세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특정한 명제가 없다. 그냥 일련번호가 있을 뿐이다. 이는 “특정한 명제를 부여하면 그로 인해 작가도 얽매이고, 관객도 작품을 보기보다는 명제에 고립 되는 것 같기 때문”이며 “자유롭게 작품과 대화하는 방법으로써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한국에서 판화로 하는 미술에 대해 “현실에 어려움이 상당히 많다”고 이야기하는 홍 작가는 “그냥 내가 가장 끌리는 분야이고, 이야기하려는 대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기에 누가 무어라 해도 묵묵히 이 길을 가려고 한다”고 했다.

작가로서 선택하기 어렵고 힘든 작업에 비해 그 혜택이 크게 적은 편인 판화를 지속하는 자신에 대해 그는 “내가 선택한 길이고, 가장 편하다. ‘겉만 아름답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작업을 해왔다면 지금의 내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의 작업을 세상에 다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그는 “앞으로 수 년 내에 기회를 만들어 내 모든 작업을 공개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시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으로 인해 다수의 작업들 중 일부만이 선별돼 보여지면, 너무 주관적인 견해로 작품을 나누는 오류가 많이 발견된다. 가장 현대적인 분야가 바로 판화일 수 있다. 그 다양성 전부를 펼침으로써 관객의 선택 폭을 넓혀 주는 것도 작가로서 해야 할 본분이기에 이 계획은 반드시 완성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서양화가 홍재연은 1978년 이후 개인전 30여 회를 펼쳤으며, 다수의 그룹 기획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현대판화가 협회 공모전, 경기미술대전 등의 운영위원, 심사위원,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작가는 1988년 체육부장관 문화장 수상과 2003년 경기대학교 소성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한국현대판화가협회회장,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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