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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學 ②]“집권까지만 잘한 대통령, 집권 뒤에도 잘한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보는 성공과 실패의 대통령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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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4-295호 최영태⁄ 2012.10.04 13:38:38

김영삼: 과감했지만 권력욕에 머물러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과 잘 비교되기도 한다. 일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최고 업적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군부 독재정치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종식시켰다는 점이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저서 ‘대선 2012, 어떤 리더십이 선택될 것인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지역에서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과거(전두환-노태우)를 단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고, 윤여준 전 장관은 책 ‘대통령의 자격’에서 “김영삼이 없었다면 김대중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외 분야에서는 “실질적인 비전과 대안 제시가 없어 처음서부터 스테이트크래프트(국가통치 리더십) 상의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냈다”(윤여준)는 평가를 받았다. 장기적 계획 없이 포말적인 지지율에 매달리는 이벤트성 개혁으로 일관했고, 1994년에는 시드니행 비행기 안에서 세계화 정책을 밝혀 마치 한국이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듯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무분별 해외여행, 조기유학, 과소비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재벌들이 ‘노태우 정부가 업종 전문화니 뭐니 하면서 재벌을 틀어쥐는 바람에 경제발전이 위축됐다. 풀어야 경제성장이 된다'고 주장하자, 규제 풀고 돈을 푸는 ‘신경제 100일 계획’을 펼쳤고, 이는 엄청난 과잉 중복투자와 금융기관들의 발호로 이어져 1997년 IMF 환율위기라는 망국적 사태까지 불러왔다는 평가도 받는다. 전체를 보는 스케일 없이 부분을 주목하는 개혁이 시스템 전체의 퇴행을 불러왔다는 평가도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책 ‘노무현 이후’에서 “국지적 선진화는 주변요소-하위요소와 충돌하며 시스템 전체의 퇴행을 초래할 수 있다. 최악의 사례는 김영삼의 금융자율화와 대학 설립-정원 자유화였다. 이에 따라 대학의 폭발적 증가와 대졸 근로자의 중소기업 기피로 중하층 노동자의 기근 현상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으로는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공직자 재산 공개를 통해 관료와 정치인의 사정에 나섰으며, 금융실명제 단안을 내림으로써 자본가의 특권에 중대한 제약을 가했다”(임혁백)는 좋은 평가도 있다. 그러나 “당시 국가경제를 활성화시켜야 되는 시점에서 금융실명제는 경제정책과 충돌했으며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김영삼 정권의 운영에는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왔다. 종합과세 제도와 함께 실시됐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여론몰이 식으로 추진해 어려운 경제상황을 자초했고, 사채시장에 의존하던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으로 부도 사태에 빠졌다. 결국 근로소득자의 수입만 투명하게 드러남으로써 못 가진 자가 고통 받는 시대를 불러왔다”(윤여준)는 강한 비판도 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0년 1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집권 민정당과 전격 통합하는 3당 합당을 함에 따라 호남을 남겨놓고 나머지 지역이 모두 연합하는 이른바 ‘보수대연합’이 이뤄졌다. ‘3당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 이 조치로 민주 진영이 분열됐고, 지역구도 정치가 고착화됨으로써 그 해악이 오늘날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악평을 받기도 한다. 결국 김영삼 정권은 특유의 저돌성으로 역사의 획을 긋는 굵직한 성과를 내놓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재임 중 6차례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하는 등 ‘도덕성을 앞세워 투쟁으로 일관했던 민주화 세력이 집권 뒤에는 부족한 스테이트크래프트로 고전하는’(윤여준) 선례를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첫 민주정부라 할 수 있는 김영삼 정권은 ‘국민의 강력한 지지로 집권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에 대한 환멸만 불러일으킨’ 첫 사례로 기록될만하다. 그리고 이어진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 이른바 ‘2기 민주정부’ 역시 마찬가지 평가를 받는다. 반응성 굉장히 뛰어났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기 위한 임기응변’도 많아 혼란 불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었지만 모든 것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이 한계. 김대중: 모든 걸 직접 챙긴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IMF 환난이라는 비상시국을 맞아 국난 극복을 위해 선택된 정권이었으나, 지나친 욕심으로 집권 후반기를 망친 경우”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국민의 정부’는, 해방 이후 50여 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보수-반공 세력이 IMF 환난이라는 건국 이후 최악의 사태를 일으킴에 따라 “못살겠다, 바꿔보자”는 건국 이래 계속 이어져온 구호가 마침내 대중적 지지를 얻으면서 선택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터를 잡아놓은 불균형 성장전략 탓에 고착된 기형적 한국(중소기업-호남-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김대중 정권은 IMF의 외압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재벌 중 일부를 정리하는 등의 개혁에 성공한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국민의 정부는 1999년 IMF 부채를 조기상환하면서 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러한 ‘IMF 조기졸업’은 겉으로는 찬란했지만, 실제론 실책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윤여준은 “1999년 IMF 조기졸업은 이듬해 총선을 겨냥한 포석이었지만, 한나라당의 죄의식을 벗겨주고 탄압받는 야당 이미지를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단국 이후 최악’이라는 국난을 일으킨 책임에서 완전히 위축돼 있었던 한나라당, 그리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모든 걸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사상 처음으로 받으며 정부 지시에 따라야 했던 재벌들의 부담감을 ‘IMF 조기졸업’이 벗겨줌에 따라 2000년 총선에서 다시 반공보수 세력이 발호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즉, IMF 국난이라는 최대의 위기이자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천천히 한국을 개혁해 나갔어야 하는데,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욕심 탓에 재벌 개혁을 어정쩡한 상태로 끝내고, 각종 무리한 경제부흥 정책을 내놓다가 결국 파국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지도자 중에는 모든 걸 직접 챙기는 이른바 ‘만기친람형’이 있고, 반대로 적절히 아랫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권한위임형’이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만기친람형이 김대중 전 대통령 아니었을까 싶다. 만기친람형은 무능하고 독단적인 지도자보다는 낫지만, 권한위임형보다는 한수 아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주도면밀함 때문에 오히려 “참모와 관료의 자율성-창의성, 자발적 협조를 끌어내는 데 문제점을 보였다”(윤여준)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 정부는 IMF 졸업 뒤 각종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정우 교수는 책 ‘박정희의 맨 얼굴’에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제금융 조기졸업을 선언한 뒤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초조한 나머지 토지공개념 3법 폐기, 그린벨트 해제 등 전방위적 부동산 규제 완화를 추진함으로써 10년간 잠자던 부동산 투기라는 맹수를 탈출시켰다. 이는 단기적 부양에 집착해 국가의 장기적 기초를 파괴한 중대한 실책이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후유증은 몇 년 뒤 노무현 정권에서 나타났다”고 썼다. IMF만 졸업하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생각한 성급함이 결국 국가지대사를 망쳤다는 비판이다. 2003년 이른바 ‘카드 대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책 ‘안철수의 힘’에서 “김대중-노무현을 거친 뒤 한국인의 정치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 이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혐오의 대상이 된 정치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지적했다. 첫 민주정부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 그리고 그 후계자인 노무현 정권까지 정치적 환멸을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김대중 정권을 끝으로 한국의 이른바 보스 정치는 끝을 맺는다. 그 길고 긴 이른바 ‘3김 정치’가 막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보스 정치의 종말은 특히 한국의 야권에 숙제를 남긴다. 권력과 돈이라는 힘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라도 일사불란함을 과시하는 보수정당과 달리 ‘말이 많기 마련인’ 개혁-진보 진영에서는 김대중 같은 보스가 필요한 측면도 있는데, 김대중을 끝으로 보스 정치가 사라짐에 따라 야권이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평론가 박성민은 책 ‘정치의 몰락’에서 “보스 정치는 나쁘다고? 김대중 말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야당과 지금의 민주주의가 만개한 야당 중에 어느 쪽이 제 역할을 하고 있나?”는 질문으로 현재 야권의 분열상을 질타했다. 노무현: 새로운 대통령상 제시했지만… 박정희만큼이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대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현재 박근혜 후보에게 “아버지의 과를 인정하냐”는 질문이 주어지고 있는 만큼이나, 문재인 후보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를 인정하냐”는 질문이 주어지고 있는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삼성 등 재벌에 휘말리는 양상을 보이면서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임기 중반의 부동산값 폭등을 일정 부분 조장 또는 방치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높다. 이 중 부동산값 폭등에 대해서는 ‘전임 김대중 정부의 잘못이 차기에 나타난 것’이라는 옹호도 일부 가능할 것 같지만, 노무현 정권은 삼성 등 재벌과 밀착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양극화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후회된다”는 발언을 한 데서도 드러났듯, 변명의 여지가 없다. 노 정권의 친재벌적인 자세는 “기왕 시장주의를 하려면 골수 시장주의 한나라당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국민들이 하게 만들었다”고 장하준 교수는 지적했다. 윤여준은 노무현에 대해 “반어법과 냉소적 표현 등으로 언어와 태도에 관한 한 대통령으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경제는 보수 진영의 의제라며 의도적으로 회피한 점” 등을 들어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실패한 스테이트크래프트로 규정한다. 비극적 생의 마감으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정부라는 평가가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임혁백도 “4대 개혁 법안을 한꺼번에 일괄처리하려 함으로써, 2004년 총선 패배 이후 망연자실해 있는 여러 분파의 보수 기득권 세력을 결집-단합시켜 주는 효과만 가져왔다. 보안법 폐기 노력은 구 기득권 반공주의 세력, 사학법은 보수적 종교 세력을, 언론법은 조중동을, 과거진상규명법은 구 친일-권위주의 세력을 다시 단결시켰다. 그리고 이런 개혁입법 실패는 보수 세력을 다시 약진시켰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했다”는 요지로 평가했다. 양극화 심화로 “못 살겠다, 먹고 살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서민층의 외침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채 지나치게 정치투쟁에 몰두함으로써 정치적 지지기반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장하준-정승일 교수는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노무현 정부는 노인 복지에는 별로 한 게 없으면서 재산세를 높이고 종부세를 도입하니 집 하나 갖고 있지만 소득은 별로 없는 노인들이 크게 손해를 보게 했고,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과 종부세 폐지에 감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낮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대호 소장은 책 ‘노무현 이후’에서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으로 “한국 정치 지도자의 표준 내지 최저 기준을 높였다”는 점을 꼽았다. 권위주의로 가득찬 나라에서 기성 권력의 편을 드는 편한 자세 대신 서민 편에 서려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최소한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새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기준’ 높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대가 어두워지면 더욱 빛나는 존재. 그러나 시장주의 경도 따라 “기왕 시장주의 하려면 골수 시장주의 한나라당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국민이 갖게 해. 김 소장은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중요한 점으로 “권력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권력-권위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지만 노무현은 이를 실천했다”고 썼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이 쓸 수 있는 칼(정보기관-사법기관의 활용)을 활용함으로써 ‘한국에서 제대로 안 되는 일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 때문’이라는 잘못된 상식을 심어줬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자신의 칼을 내려놓음으로써, 한국 사회 자체가 갖는 온갖 모순점을 드러나게 했다는 평가다.

일례로, 대통령이 검찰을 수하처럼 부릴 때는 검찰이 ‘권력의 주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검찰은 원하지 않는데 대통령 등 권력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저러는 거다”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검찰을 통제하는 끈을 완전히 놔버리자 ‘검찰 스스로가 원해서 적극적으로 권력 편을 드는’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됐다는 논지다. 노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의 끈을 내려놓은 것은 꼭 좋은 평가만을 받지는 않다. 임혁백 교수는 “권위주의를 청산하면서 대통령의 권위까지 청산해버렸기 때문에 기득권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단이 없었다. 민주적 대통령일수록 권위에 의존해야 하는데…”라고 썼다. 그런 식으로 권위를 내려놓아서는 안 됐고, 수구세력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위를 옳은 방향으로 활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호 소장은 또한 “노무현이 빛나는 것은 시대의 짙은 어둠이 다시 밀려왔기 때문”이라고 썼다. 세상이 어두워질 때 노무현처럼 친서민적 자세의 대통령을 한국 서민은 원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세상살이가 어려워질 때 보수 쪽에서 떠올리는 전직 대통령이 박정희(“밥을 먹고살게 해준 대통령”)라면, 개혁 쪽에서는 노무현(“지배층 편만을 들지 않은 대통령”)을 떠올리게 됐다는 식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가, 보는 견지에 따라서는, 제2의 박정희 정권이냐(박근혜 후보), 제2의 노무현 정권이냐(문재인 후보), 아니면 이도 저도 다 아니고 제3의 길이냐(안철수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노무현이 남긴 그림자는 앞으로도 한국 역사에 길게 드리워질 전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엇갈려도 한 가지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부분도 있다. 강준만이 ‘안철수의 힘’에서 쓴 대로, 노무현과 그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한국인은 이른바 언더도그(약자에서 출발한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됐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언더도그에게 무한감동을 느끼기엔 노무현과 이명박이 입힌 상처가 너무 크다”고 썼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최소한 속으로는 착한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한국인의 마음이지만, 가난한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을 연달아 본 유권자들은 ‘기존의 보수적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면 곤란하겠다’라는 인식을 앞으로 당분간 계속해서 갖게 됐다는 것이다.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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