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295호 심원섭⁄ 2012.10.04 13:38:57
오랫동안 한 배를 타고 온 동지였지만 오는 12월에 치러질 대선의 길목에서는 상대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는 바람에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된 4명의 엇갈린 행보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대선기획단 기획위원을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과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대선 총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선숙 전 의원, 그리고 일찌감치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에 참여해 경제민주화 정책 등을 주도해 왔고 현재 새누리당 대선공약을 만들어낼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인 전 장관과 9월 26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 민주캠프의 국민통합위원장에 전격적으로 발탁된 윤여준 전 장관이 그 장본인들이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각각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캠프의 선봉에 서면서 맞수로 재회하게 된 것이다. ‘박(朴) 자매’ 박영선-박선숙, “동지에서 맞수로…” 1960년 동갑내기이면서 지난 18대 국회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더불어 민주당 내 대표적 ‘주포’로 활약하며 전투력을 한껏 과시했던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박선숙 전 의원이 대선국면에서 맞수로 재회하게 됐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한 배를 타온 동지였지만 박 의원은 문 후보 대선기획단의 기획위원으로 기용됐고, 박 전 의원은 안 후보의 총괄본부장을 맡아 캠프를 진두지휘하게 되면서 각각 양 진영 캠프의 선봉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된 셈이다.
지난 9월 21일 오전 국회에서는 공교롭게 두 사람 사이의 장외 브리핑 대결이라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원외’인 박 본부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국회 본청 옆 의원동산에서 총괄본부장 자격으로 기자들에게 안 캠프의 추가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이어 30분 후 박 의원은 국회 브리핑룸에서 문 후보 캠프 운용의 주요 골간을 브리핑했다. 박 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탈당 문제가 언급되자 “민주당은 제가 17년 동안 몸담았던 곳”이라며 “(탈당 결심이) 쉽지 않았고 민주당 입장에서 섭섭한 게 당연하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반면 문 후보의 담쟁이 선거캠프 기획위원 자격으로 국회 기자실 정론관을 찾은 박 의원은 ‘새 정치’를 내세운 안 후보에 맞서 기존 정치권의 관행에서 벗어난 수평적 네트워크가 중심인 캠프 구성안을 공개한 뒤 박 전 의원의 안 후보 캠프 합류에 대한 질문에 “그건 좀…”이라며 다소 괴로운 듯 말을 아꼈다. 두 사람은 97년말 당시 16대 대선직후 MBC 기자(박영선)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부대변인(박선숙) 신분으로 만나 오랜 인연을 이어온 ‘절친’이기도 해 당내에서 ‘박(朴) 자매’로 불려왔다. 특히 2010년 8월 김태호 당시 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 나란히 청문위원으로 배치돼 화려한 콤비 플레이를 펼쳐 민주당 내에서 총리 후보자 낙마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지난해 5월 저축은행 사태 때에도 각각 정책위의장과 국회 정무위원으로 최전방에서 대여 공세를 주도했다.
이어 두 사람은 손학규 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6월 초 각각 정책위의장과 홍보전략본부장으로 발탁되면서 지도부 핵심으로 떠올랐다. 당시 손 전 대표는 ‘미인 영선’, ‘선숙 최고’라는 별칭까지 지어주며 두 사람에 대한 각별한 신임을 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박지원 원내대표와도 막역한 사이여서 한 때 세 사람을 합해 ‘박(朴)남매 트리오’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박 의원은 18대 국회 때 박 원내대표와 법사위에서 함께 활동하며 ‘찰떡 공조’를 과시했고,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람’인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 박 원내대표가 청와대 대변인일 때 부대변인으로,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일 때는 첫 여성 공보수석 겸 대변인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박 본부장은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홍보전략본부장이었던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영선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단일화 경쟁을 벌이다 박원순으로 단일화된 뒤 시민사회 인사와 민주당 인사들이 뒤얽혀 있는 박원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서도 본부장을 맡아 캠프를 총괄했다. 지난 총선 때는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로 나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단일화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박 본부장이 안 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은 의외였다. 박 본부장은 9월 20일 배포한 자신의 입장문에서 “안철수 원장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하겠다. 오랜 시간 고심하는 안 원장을 보면서 그가 국민의 호출에 응답해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고 결심하면서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의 진심을 믿는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있지만, 단일화 국면 등이 본격화되면 가파른 대치전선의 최일선에서 일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향후 야권 단일화 국면에서 안 후보와 민주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박 본부장은 안 후보 캠프 합류를 확정지은 뒤 박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으며, 두 사람은 “잘 해보자”고 서로에게 덕담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책사’ 김종인-윤여준, “대선전에서 엇갈린 행보” 원로 정치인 중 손꼽히는 ‘책사’로 불리는 김종인·윤여준 전 장관이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전에서 상대 진영에 둥지를 틀어 주목된다. 비슷한 연배로 노태우 정권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사람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20년이 흐른 지난해 대선 분위기가 지펴지자 정치적으로 의기투합해 당시 정치 참여 가능성이 점쳐지던 안철수 원장의 ‘정치 조언 역’을 맡는 바람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들을 ‘안철수 멘토’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안 원장과의 정치적 비전 차이로 결별을 선언하며 ‘마이웨이’를 걸었다. 김 전 장관은 일찌감치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에 참여해 경제민주화 정책 등을 주도했고 현재 새누리당 대선공약을 만들어낼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반면 윤 전 장관은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으나 9월 26일 전격적으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진영에 참여해 민주당 선대위 내 ‘민주캠프’의 국민통합위원장에 발탁됐다. 따라서 두 사람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전개될 치열한 접전의 최일선에서 맞서는 모양새를 구성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한때 ‘정치 담론’을 나눴던 안 후보를 꺾기 위한 전선에 나선다는 동반자적 관계도 일부 갖게 됐다. 물론 과거 17대 국회에서 민주당에 몸담았던 김 전 장관이 새누리당으로, 그리고 16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적을 뒀던 윤 전 장관이 민주당으로 각각 향한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윤 전 장관이 ‘보수 성향 책사’로 분류돼 왔다는 점에서 그의 민주당 행(行)에 대해 새누리당에서는 “상상도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지난 4·11 총선에 앞서 윤 전 장관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번 중앙선대위 출범에 앞서서도 “윤 전 장관을 모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한 영남권 한 의원은 “윤 전 장관이 민주당을 택한 것은 의외의 일”이라며 “우리가 진작 개방적인 의사결정·소통 구조를 만들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9월 26일 민주당의 ‘윤여준 영입’ 발표가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이날 첫 선대위 인선 결과에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라는 점에서 새누리당 쪽에서는 윤 전 장관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물론 문 후보 측은 윤 전 장관을 우군으로 만듦으로써 안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중도층 및 무당파 공략에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이 안 후보와 가까운 사이인 법륜 스님과 최근 시민사회 활동을 적극 펴온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단일화 과정에서의 역할론도 거론된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에 오랫동안 몸을 담은 그의 이력을 놓고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민주당 내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경제 멘토’로 거론되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모피아 대부’ 논란, 관치금융 주도 논란 등에 휩싸였던 것처럼, 윤 전 장관도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한 개혁성향 재선 의원은 “윤 전 장관의 선거에 관한 능력은 출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문 후보의 정체성 논란이 빚어지면 자칫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될 우려가 있다”며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게 되면 낭패”라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 듯 문 후보 측은 윤 전 장관의 역할론에 선을 긋고 나섰다. 한 핵심 인사는 “윤 전 장관은 선거전략·기획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트위터에서 “윤여준 씨는 2006년 새누리당 서울시장 선거를 총괄한 사람이고 이번 대선은 새누리당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인데 어떤 명분과 전향의 과정도 없이 민주당이 그를 덜컥 끌어들이다니”라고 비판하면서 “일에는 도리와 순서가 있어야 한다. 야권단일화도 안 됐는데 윤여준 씨부터 끌어들이다니 민주당 너무 한다”고 비판했다. 문 후보와 윤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2013 체제’를 주제로 열린 한 시민사회단체의 토론회에서 공동 패널로 나란히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으며, 문 후보는 지난달부터 윤 전 장관의 영입에 각별한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두 분이 최근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가졌다”며 “연말 토론회에 저도 참석했었는데 윤 전 장관이 이때부터 문 후보에 대해 신선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종인-윤여준, ‘안철수 꺾기’에는 동반자? 윤 전 장관이 문 후보의 지원 요청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지난주쯤 선대위 합류 원칙이 정해졌으나 직함이 최종 확정된 것은 발표 전날인 9월25일이라고 전해진다. 문 후보가 합리적 중도성향 인사가 대거 포함된 중량급 인사 20여명으로 이뤄진 경제정책 외곽 자문기구 발족을 검토하는 것도 윤 전 장관 영입에서 드러난 외연 확대 차원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윤 전 장관 역시 보수 성향인 자신이 민주당 캠프로 간 것이 의외라는 시각에 대해 “지금 여도, 야도 국민통합을 하자는 것 아니냐.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국민통합은 진보, 보수를 따질 일이 아니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전 장관은 “한 달 전쯤부터 문 후보 쪽 사람들이 자꾸 도와달라고 하는데 안 하겠다고 하니까 후보가 직접 나선 것 같다”며 지난 24일 문 후보와 2시간 동안 회동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그 날은 그냥 고민만 해보겠다고 했지만 어제도 후보를 모시는 분들이 와서 계속 얘기해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어젯밤 늦게 ‘그러면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전 장관은 “문 후보와는 그 때 2시간 얘기한 것이 전부였지만 진솔하고 확고한 자기신념도 있고 열정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TV로 나타난 인상은 삭막하다 싶었지만 대화해 보니까 TV 인상과 많이 달랐고 만만치 않은 내공이 있어 보였다”고 평가했다. - 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