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295호 최영태⁄ 2012.10.09 11:31:57
9일 인기 검색어에 ‘미국 실속직업’이 올라 있다. 내용을 보니 배관공이 돈 많이 버는 실속직업 10위에 당당히 올랐다는 사실이 한국 네티즌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과 미국을 같은 나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친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정이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착각들이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미국의 연봉 상위 실속직업을 보자.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 토목기사, 수의사, 생물학자, 시장 조사분석가, 회계사, 법률사무소 사무장, 경제학자, 교장, 배관공, 전기기사, 자동차 정비 기술자란다. 한국의 짭짤 직업은 과보호-독점 덕분 vs 미국은 시장이 결정 반대로 한국에서 짭짤한 상위 실속직업은 어떨까. 의사, 변호사, 공기업 직원, 공무원, 재벌 기업 직원, 정치인 등이 쉽게 떠오른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직업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의 과보호(의사, 변호사, 공기업, 공무원)이고, 다른 하나는 독점이득의 획득(대기업 직원)이다. 두 가지 모두 ‘일의 힘듦, 또는 시장에서의 돈벌이 또는 사회에의 기여’와는 상관없는 기준이다. 미국의 상위 실속직업 중 한국처럼 국가자격증, 독점의 혜택을 보는 게 있는지 보자. 명단 중 토목기사, 수의사, 회계사, 교장 정도가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같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자격증은 한국의 국가자격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방 정부가 자격증 숫자를 철밥통처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요구에 따라 배출 숫자가 신축적으로 조정된다. 또 거의 모든 자격증을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정부가 발급하므로, 국가가 일괄 통제할 수도 없다. 자격증의 분권화가 이뤄져 있는 것이다. 현대 한국이 철저히 보호하는 ‘양반들’ 반대로 한국의 국가자격증은 철저히 국가가 보호한다. 예컨대 한국에선 소소한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기 힘들다. 변호사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즉 국가가 사법고시 합격자의 먹고 살 권리를 정말로 악착같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에선 병원 화장실 등에, 마치 한국 향락업소의 홍보 명함이 붙어 있듯, 변호사의 홍보 명함이 붙어 있다. 풍부하게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살 길을 찾기 위해(바꿔 말하면, 법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미국에선 유명한 미국인 변호사인데도 의외로 고압적이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어 한국인을 놀래킨다. 반대로 한인 동포 변호사는 고압적이기가 한국 변호사와 똑같다. 어찌 못된 것만 배우는지…. 미국에서 연봉을 많이 받으려면 시장에서 통하는 직업이라야 한다. 배관공이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더럽고 힘든’ 배관 일이 많은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미국 공인회계사가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국가가 공인회계사 숫자를 조절하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공인회계사의 일 자체가 고된 측면이 있고, ‘영업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공인회계사 자격을 땄다 하더라도 무일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모든 것은 시장이 결정한다. 국가가 특정계급을 이유불문하고 과보호하는 나라가 바로 미개국 ‘자격증=돈’이 아니라 ‘시장경쟁력=돈’이란 공식이 통하는 게 미국 사회다. 한국에도 이런 시장 시스템이 더욱 철저하게 도입돼야 한다. 특히 과보호-독점 분야에 대해서. 오로지 19살 때 시험 한번 잘 봤다는 이유로 평생을 편안하게 사는 사회는 승자를 나태하게 만들고, 패자를 절망시킨다. 왼쪽 바퀴를 다는 비정규직보다 오른쪽 바퀴를 다는 정규직이 4배 이상 보수-혜택을 누리는 나라가 정상 국가인가? 고졸이면 할 수 있는 하위 공무원 직에 대졸자들이 몇백대 1의 경쟁을 하는 나라는 또 어떻고? 특정 계급을 국가가 이유불문하고 과보호하는 것은 마치 조선이 양반 계급을 싸고 도는 것과 똑같다. 특권층 보호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아직도 조선 같은 전근대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사회의 모든 이슈가 터져 나오는 대선 국면에서 한국 사회의 이런 후진성도 활발하게 논의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