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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보이는 게 전부 아냐. 대화 통해 내러티브를”

삼성미술관 리움 8주년 맞아 아니쉬 카푸어 동아시아 최초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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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8호 왕진오⁄ 2012.10.29 10:43:59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세대는 그러한 것이 불가능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브제를 가지고 작업하면 다른 장소로 흘러가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관객과의 상호 대화를 통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전시장 한 가운데 놓인 지름 12미터의 거대한 시계 모양 바늘이 붉은 빛을 띤 왁스 덩어리를 밀어내며 생명의 흔적을 남겨 놓은 듯한 압도적인 형태로 관람객의 눈을 자극한다. "이게 뭘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낼만 하다. 인도 출신 작가 아니쉬 카푸어(58)의 '나의 붉은 모국'이다. 이 작품은 카푸어의 손을 거치지 않고 마치 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듯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가 생성(Auto-generation)'의 개념을 구현했다. "내 작업의 중심은 색깔이다. 20∼30년간 색깔을 중점적으로 작업했다. 이 작품에만 20톤의 붉은색 왁스가 사용됐다. 색깔은 재료적 특성과 함께 비현실적 특성을 가지며, 정신적으로 인식하는 상태로 일종의 착시다." 10월 25일부터 내년 1월 27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진행되는 자신의 동아시아 미술관에서의 첫 대규모 개인전을 위해 내한한 아니쉬 카푸어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카푸어는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예술 개념과 정서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명상적인 작업을 선보여 왔다. 70년대 후반부터 카푸어는 존재와 부재, 비움을 통한 채움, 육체를 통한 정신성의 고양 등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요소들이 서로 수렴하고 소통하는 융합, 그리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카푸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수년간 관심을 쏟은 물리적 오브제, 즉 물체가 차지하는 철학적 위치를 작업의 절차와 장소와의 연계를 통해 풀어내려 했다"고 전한다.

리움 미술관의 실내와 정원을 모두 전시장으로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물질의 상태이다. 아티스트로서 작품에 계획이나 아젠다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내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작가인 저로서도 어려운 부분이다. 작업의 과정에서 물질이 가지는 성질이 철학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관 8주년을 기념하며 마련된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에는 리움 미술관의 실내와 야외정원까지 모두 할애됐다. 그라운드 갤러리에는 그의 초기 작업인 거대한 코텐 스틸 작품 '동굴'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지름 8미터, 무게 15톤의 거대한 타원형 작품이지만 불안정한 상태로 설치되어 어둠과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곳에 카푸어 안료 작업의 대표작인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라는 작품이 조화를 이뤄 전시장의 긴장감을 완화시킨다.

또한 세 개의 벽면에 설치된 '무제'는 보이드 작업이 형식적, 개념적으로 절정에 있던 시기의 작품으로, 안팎을 뒤덮은 검푸른 분말 안료가 빛을 흡수해버리고 어둠의 심연을 만들어 낸다. 이 공간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할 작품은 건물의 벽면을 이용한 '내가 임신했을 때'. 흰 벽면에서 아롱거리던 미지의 환영이나 신기루처럼 보여 세심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색깔을 중심으로 펼쳐진 카푸어의 작품을 오랜 시간 바라보다가 확 트인 야외 정원에 놓여 있는 '큰 나무와 눈'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으로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니쉬 카푸어의 예술은 동서양 문화의 만남으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단순히 이질적인 두 문화의 만남을 넘어, 보다 보편적이고 신비로운 우주적인 세계를 지향하며, 그것은 곧 인간과 자연 본연의 진리에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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