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호. 그의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로 왕이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에서 맡았던 왕 역할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터라, 그는 항상 사극 주요 캐스팅 물망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그런 그가 왕이 아닌 곤충학자로 변신한다. 한전아트센터에서 10월 27일부터 11월 11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부활 더 골든데이즈’에서 임호는 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석주명 박사로 분한다. ‘부활 더 골든데이즈’는 일제강점기 시절 나비 연구에 매진했던 석주명 박사 이야기를 다룬다. 석 박사는 일제시대에서 한국전쟁까지의 비극의 시대를 살다간 인물이다. 그는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75만 마리 이상의 나비를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어 도시처녀나비, 부전나비 등 조선말 이름을 붙이며 분류했다. 또한 한국전쟁의 발발로 모두가 피난을 가던 때 폭격 맞은 과학관의 건립을 위해 서울에 남아 자리를 지켰다. 그의 연구는 세계 학계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우리는 석 박사에 대해 잘 모른다고 임호는 짚었다. “석주명 박사는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에요. 항상 송도 인근을 조깅했다고 하는데 나비채집을 할만한 체력 유지를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운동까지도 연구의 일환이었던 거죠. 한 일화에 따르면 미국 선교사 재단이 경성에 가야 하는데 실수로 개성에 머물렀을 때 석 박사가 개성 안내를 맡았다고 해요. 그때 여러 나비 표본을 보여줬고, 그게 인연이 돼서 그 재단이 석 박사의 연구비를 지원해줬다고 전해져요. 그만큼 국제적으로 알려졌던 분인데 정작 저 자신도 몰랐던 게 부끄럽네요.” 석 박사 역할을 맡은 임호는 그를 잘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백과사전 사이트에서 여러 자료들을 접하면서 석 박사가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작업을 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는 유리창들썩나비, 봄처녀나비 등 다양한 나비들의 이름을 줄줄 꿰차고 있었다. 실제로도 나비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이젠 너무 많이 봐서 지겹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지지만 그는 이미 나비박사가 돼 있었다.
나비와 살던 시대와 자연 파괴된 미래 대비시켜 요즘은 나비들을 보기 힘들다. 이는 ‘부활 더 골든데이즈’에서 짚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석주명 박사의 일대기와 더불어 파괴되고 있는 현재의 환경 문제를 되짚어 본다. 석주명 박사가 살았던 과거 즉, 자연과 함께 살았던 시대와,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이 파괴된 초현실적인 미래상황이 동시에 펼쳐지며 판타지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얘기가 이렇다 보니 이해하기 어렵거나 너무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극적이고 쉬우면서도 재밌는 소재에 익숙한 관객들이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라는 질문에 임호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나비박사 석주명의 이야기라고 하면, 뮤지컬 ‘영웅’이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처럼 ‘세상을 바꾸는 석주명 박사의 일대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만 다루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많은데, 그 속에 담겨 있는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와도 같아 공감할 수 있죠. 마지막 부분에서는 손수건을 준비하셔야 하지 않을지…(웃음). 또 그 안에 석 박사와 제자 간의 로맨스, 갈등도 그려지고요.” 극 중 석 박사는 그의 연구를 돕는 조교 지민과 러브라인을 펼친다. 지민 역에는 슈(유수영)와 배슬기가 캐스팅됐다. 이들과의 호흡에 대해 임호는 “공연 안에서 포옹 2~3번 하는 것이 전부”라며 웃어보였다. 그는 “수영 씨는 아내와 동갑이라 아는 또래 친구 같은 느낌이고 슬기 씨는 어리다보니 아기 같다”며 “내가 잘 이끌어야 할 것 같다. 둘은 따라오려고 노력 중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화려한 캐스팅이 화제가 되는 가운데 이번 뮤지컬 공연은 또한 임호의 첫 뮤지컬 도전이기도 하다. 무대 위 뮤지컬 공연이 처음이라는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겁 없는 도전이었지 않나 싶다”며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얼굴을 비췄던 그의 뮤지컬 도전은 관객들에게도 색다른 충격이다. 하지만 그가 뮤지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부터 뮤지컬과 연극을 많이 보며 연기의 꿈을 키웠다. 학창시절 동창들, 선후배들과 창작 뮤지컬을 함께 작업해 올릴 정도로 굉장히 좋아했지만 탤런트로 먼저 데뷔하다보니 방송 연기를 오래 하게 됐다. “요즘엔 더블 캐스팅이 많잖아요. 그런데 전 젊은 시절, 책임감을 가지고 혼자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극이나 뮤지컬 제의가 들어와도 피했어요. 그런데 이러다가는 아예 무대에 서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제 고집 때문에 무대 자체를 멀리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부활 더 골든데이즈’의 대본을 읽게 됐는데 석 박사에게 반했죠. 약간의 판타지와 드라마가 섞여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어요.”
이번 공연을 위해 그는 금주 약속까지 연출자에게 했다. 몸에 익을 때까지 상대 배우와 3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하는 뮤지컬에 색다른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TV 드라마는 제작 여건 상 빨리 촬영해야 하므로 ‘하루 이틀 대본을 더 읽고 상대배우와 2~3번 정도 더 맞추고 촬영했더라면 더 좋은 호흡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많았다는 실토다. 연기한 지 어언 20여년, 임호는 뮤지컬 연습에 매진하면서 자신의 연기 인생을 새롭게 돌아보고 있었다. 시선처리부터 대사 한 마디를 던지는 사이사이에 담긴 의미들까지 되짚어보며 다시금 공부하고 있다. “뮤지컬-연극 등에 활발히 도전하겠다” 춤과 노래도 색다른 도전이다. 가요 식으로 부르는 자신의 노래에 연출이 충격을 받았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은데, 뮤지컬 넘버를 가요 부르듯이 부르면 의미와 뉘앙스 전달이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발성부터 연습했어요. 노래는 자신 없지만 곡들이 클래식하고 정말 좋아요. 춤 같은 경우는 제가 리드해서 추는 춤이 없어서…(웃음). 동작을 크게 하고 있어요.” 뮤지컬 연습에 한창인 그는 배우들의 뮤지컬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방법적인 부분이 다를 뿐이지, 연기 자체는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 다 똑같다는 것이다. 오히려 장르에 구애 받을 필요 없이 서로 교류가 왕성하게 이뤄져 장단점을 고쳐나갔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좋은 작품이 있으면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끊임없이 도전할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저한테도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그동안 제가 어떻게 연기를 했고, 역할을 창조해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고 정리하는 계기가 됐죠. 앞으로 계속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자극과 활력소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큰 사건사고 없이 성실하게 연기해왔는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제 맡은 본분에 충실한 배우가 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임호는 다시 석주명 박사로 분하기 위해 연습실로 돌아갔다. 그의 연기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빛을 발할지 주목해 본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