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호 심원섭⁄ 2012.10.29 11:31:02
12·19 대선이 10월 30일을 기점으로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비롯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등 유력 대선후보 진영 간 ‘프레임 정치’가 한창이어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프레임 정치’란 상대 후보를 특정 이미지와 틀 속에 가둬놓고 옴짝달싹 못하게 함으로써 표의 확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유권자들이 강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간명한 구호로 이뤄진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MB악법, 부자증세, 무상급식 등이 대표적인 프레임이었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소위 빅3로 불리는 세 후보들 간에 정책 검증 없이 네거티브만 무성한 ‘프레임 대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박, 정수장학회 정면 돌파와 NLL에 총공세 박 후보는 ‘과거사 프레임’에 걸려 있다. 박 후보는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국민대통합을 내세우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5·16쿠데타와 유신, 그리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이어 정수장학회 문제 등이 겹치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행보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박 후보는 민주당이 자신에 대해 과거사·역사인식 공세 수위를 높이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대 미래의 대결’ 프레임으로 정면돌파에 나서기도 했으나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박 후보는 10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대선쟁점화하고 있는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강하게 반박하면서도 사실상 ‘버티기’를 하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에게는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모양을 취해 정치적 부담을 털어내고자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사실상 이사진의 거취를 압박하는 논리적 모순을 감수한 것은 국민적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는 과거사 논란 때처럼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정수장학회 탄생 배경 등을 놓고 “법원 판결은 강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밝혔다가 곧바로 “잘못 말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일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야당의 공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 후보는 이날 정수장학회에 대한 야당의 주장이 정치적 공세임을 강조하기 위해 장학회의 탄생과 운영 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기자회견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는 공익재단이며 어떠한 정치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한 장학재단”이라며 “저의 소유물이라든가, 저를 위한 정치활동을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당 정권 내내 장학회의 문제점을 파헤쳤고 야권 성향인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도 재임 당시 감사를 진행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거론했다. 또한 박 후보는 “부일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이름만 바꾼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며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김지태 씨가 헌납한 재산에 국내 독지가뿐 아니라 해외 동포까지 많은 분들이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김지태 씨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피력했다. 박 후보는 “안타깝게도 당시 김지태 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은 분이었다”며 “4·19 때부터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고 5·16 때 부패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받는 과정에서 처벌 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혔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등을 헌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수장학회 강압 없어” 발언번복 논란 정수장학회가 야당 등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강압보다는 김지태 씨가 징역형을 피하기 위해 헌납한 것임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탄생 배경 등에 대한 박 후보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질의응답에서 “김지태 씨 유족 측에서 강압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법원의 결정은 강탈을 인정했다’는 취지의 추가질문에도 여전히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악수하다 측근들의 건의를 받고 다시 기자회견 단상으로 올라가 “제가 아까 강압이 없었다고 얘기했느냐. 제가 잘못 말한 것 같고…”라고 발언을 번복했다. 또한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 내용은 강압에 의해 주식증여 의사표시가 있음이 인정된다고 재판부도 인정했다. 제가 아까 (강압이) 없다고 말한 건 잘못 말한 것 같다“고 애초 발언을 거듭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날 기자회견이 정수장학회의 강탈을 부정한 것으로 비치면서 역사인식 논란이 오히려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자 박 후보 측 캠프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제2의 과거사 논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며 지금이라도 박 후보가 전면적인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정면돌파 하자는 기류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인혁당 논란에서 불거졌던 박 후보의 역사인식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과 더불어 ‘불통’의 문제가 재론되면서 그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드는 것을 놓고 우려가 팽배해지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에 정치쇄신특위 이상돈 위원은 “실망을 넘어 걱정”이라며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에 있었던 일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는 법치주의에 맞지 않는 것으로, 헌정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시기인데 그 시절 조치를 두고 정당하다고 하게 되면 끝없는 논쟁을 또 야기하지 않나 라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면서 “5·16쿠데타와 유신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하면서 그때 강탈한 남의 재산은 합법이라고 한다면 자질을 의심받는다. 지금이라도 정수장학회는 말끔히 털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에 한 핵심관계자는 CNB저널과의 통화에서 “야권은 과거사 프레임을 유지하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고쳐나갈지에 대해 후보의 행보와 메시지를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안보관ㆍ친노 프레임’ 극복해야 하는 과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안보관·친노 프레임’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을 놓고 ‘영토주권 포기’, 청와대 문건폐기 지시 의혹을 ‘역사폐기’라며 대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 후보가 선대위 구성부터 탈(脫)친노 기조를 이어왔지만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전 정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과(過)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 후보는 여당의 끈질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NLL 발언 논란에 대해 “사실이라면 책임지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NLL은 엄격히 말하면 영토선이 아니다.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부속도서로 돼 있는데 영토선이라면 38선 이북은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는 가설이 성립된다”고 말한 것을 문제 삼아 NLL에 대한 문 후보의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중앙선대본부 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록 폐기를 지시해 청와대 보관용이 파기됐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 왕들도 하지 못한 국정기록 파기설”이라면서 “사실이라면 대통령으로서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역사의 대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병수 사무총장 겸 당무본부장도 “박 원내대표가 ‘NLL 엄격히 말하면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 경악을 감추지 못하겠다”면서 “NLL은 우리 국군과 대한민국 국민이 피 흘리며 지켜온 엄격한 우리의 영토선으로, 한 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문 후보를 비롯해 모든 분이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도 “박 원내대표의 NLL 발언은 민주당의 본심일 것”이라면서 “문 후보는 과연 박 원내대표와 생각이 같은지 빨리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분명히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도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진실이며, 진실이 무엇인가 그것만 밝혀지면 된다”며 “그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 그것에 대해 진실을 얘기하면 이런저런 복잡한 논란이 다 필요 없는 것”이라고 강조해 지난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회담준비기획단 단장이었던 문 후보에게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박 후보는 “책임을 져야 되느니 말아야 되느니, 대화록이 어쩌니 저쩌니 곁가지적인 내용이 많은데 중요한 것은 국민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가이다”라며 “다른 여러 가지 얘기가 다 필요없다. (그런 것은) 논의의 초점을 흐릴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 후보 측은 NLL 문제를 적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자칫 문 후보의 안보관 논란으로 비화하고 색깔론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보고 그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제2의 북풍공작’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반격을 이어갔다. 문 후보는 “(노무현-김정일) 비밀 단독회동의 녹취록이 별도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국정원과 통일부는 안다. (양 기관이) 그것만 밝혀주면 이 문제의 논란은 끝이 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 1일 민주평통 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NLL 안 건드리고 왔습니다’라는 대국민 보고를 했다”고 밝히면서 “가서 헌법 건드리지 말고 와라. NLL 문제 얘기지요. NLL 그거 건드리지 말고 와라 그랬습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소개하며 “노 전 대통령은 NLL에서 발생하는 불상사에 아파하고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통일의 단초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한 것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NLL 포기 발언’ 의혹을 ‘신(新) 북풍 공작사건’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여당의 공세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 현재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 산하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김장수 전 의원이 정상회담 직후 한 발언을 근거로 제시하며 반박의 수위를 높였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2007년 10월 6일 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기자와 만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을 지킨 게 성과다’라고 기자에게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철수 ‘정치혁신 프레임’ 강화 의도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성인군자 프레임’이 작동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안 후보가 기성 정치인과 달리 ‘때 묻지 않은 정치인’ 이미지를 갖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의 도덕성과 관련해 각종 의혹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서울대 교수 임용 시 특혜 의혹, 논문 표절 의혹,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인수 의혹 등을 제기해 안 후보가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한다는 것이지만 안 후보 측은 기성 정치권의 ‘네거티브 구태정치’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정의롭지 못하고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안 후보가 지난해 5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채용될 때 주요 연구업적 중 하나로 제시된 논문에 대해 표절 의혹이 일고 있다”면서 “재탕 논문을 주요 연구업적으로 내놓은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부도덕한 행동이 아닌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큰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 만큼, 안 후보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며 “안 후보 부부가 다운계약서 작성으로 (세금을) 탈루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는 만큼, 탈세가 드러나면 일벌백계를 주장했던 안 후보는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도덕성 공격에 따라 안 후보는 두 상대 박·문 후보와의 대결을 ‘혁신정치 대 낡은 정치’의 구도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10월 23일 인하대학교 강연에서 기성 정치가 특권을 내려놓기 위한 3가지 개혁으로 의회제도, 정당제도, 선거제도 방안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국가 정당보조금을 축소해야 하며 중앙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3가지 개혁 방안을 내놓은 것은 ‘새로운 정치’를 추구한다는 표면적 목적 이외에도 문 후보와의 ‘정치개혁’ 프레임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복안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문 후보의 ‘정치개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개혁과 변화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쌓겠다는 의미다. 물론 이 가운데 의회제도는 이미 문 후보 측에서도 기초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 만큼 두 후보 사이서 큰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앙당을 폐지 혹은 축소해야 소위 ‘패거리 정치’가 사라진다고 지적한 부분은 문 후보 측에서는 수용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문 후보 측은 대선 초반 정당 기반 없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다고 안 후보를 공격했다. 이른바 ‘정당후보론’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동의한다”고 할 경우,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칫 완전히 코너에 몰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선을 50여일 남겨둔 시점에서 후보들을 둘러싼 정치권의 각종 의혹 제기는 무성하지만 유권자들은 정작 후보의 자질에 관한 정보에는 목마른 이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각 유력 후보 진영이 상대 후보에 대해 하루가 멀다 하고 검증을 표방한 공세를 주고받고 있지만 주요 후보들의 정책ㆍ비전, 인물 됨됨이와 도덕성을 평가할 본격적인 검증 무대는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빅3로 3각구도가 짜인 지 40일이 넘었으나 흔한 ‘3자 TV토론’도 한번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저마다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주요 후보들이 지금까지 표방한 정책이라는 게 대체로 대동소이한 데다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인 야권단일화가 가져온 선거판의 유동성 탓에 본격 정책검증이 ‘단일화 후’로 미뤄지고 있는 것도 큰 이유로 꼽힌다. 각 캠프는 자신들이 마련해놓은 프레임에 상대 후보를 가두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19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네거티브 대선전’의 단초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특정 후보를 겨냥한 상대 진영의 의혹 제기가 검증의 소재가 되고 이를 둘러싼 거친 정쟁, 상호 공방이 반복되고 있어 유권자들로서는 당분간 쏟아지는 주장과 반박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