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진(37).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들으면 가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2012년 수식어 하나가 더 붙었다. 바로 배우다. 아이돌 가수들이 주로 뮤지컬계에 진출하고 있는 시점에 올해 상반기 ‘모차르트 오페라락’에서 주역 모차르트 역을 맡아 뮤지컬 무대에 선 그의 행보는 돋보였다. 첫 뮤지컬 데뷔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빼어난 가창력과 안정된 연기로 합격점을 받은 것도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요인이다. ‘단지 잠시 뮤지컬 무대에 머무르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잠시, 고유진은 다시 배우로 관객들을 만난다. 12월 3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용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서 예수 역을 맡아 열연한다. ‘마리아 마리아’는 바리새인이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당시 시대의 창녀였던 마리아에게 예수를 유혹하고 하룻밤을 자라고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아무래도 두 번째로 서는 뮤지컬 무대이다 보니 처음과 느낌이 많이 다를 법하다. 고유진 또한 ‘모차르트 오페라 락’ 기자회견 당시 얼어붙었던 모습과 달리 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모차르트 오페라 락’ 때는 첫 작품인데 큰 역할을 맡아 부담감이 컸어요. 게다가 뮤지컬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보도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고생을 많이 했죠. 이번엔 미리 작품에 대해 공부했어요. 10주년을 맞은 공연이라 그간 무대에 올랐던 공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노래를 미리 듣고 동선도 익혔어요. 처음에 긴장을 많이 했다면 이번엔 보다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선배 가수 김종서와 대결? 영광스러울 따름”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마리아 마리아’에 대한 매력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왜 이 작품이 10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는지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됐다고. 본래 가수인 고유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 공연의 매력은 음악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락’ 때도 프랑스 뮤지컬 음악의 매력에 빠졌던 그는 현재 ‘마리아 마리아’ 노래를 열창하는 데 푹 빠져 있다.
“작품에 힘이 있어요. ‘작품성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리아 마리아’가 정말 그래요. 작품성과 더불어 좋은 노래들이 많죠. 전 ‘아무도 날 믿지 않네’라는 노래가 정말 좋아요. 위선자들에게 배신당한 예수가 울분을 참지 못하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부를 때마다 가슴을 울리죠.” ‘마리아 마리아’의 매력인 음악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것은 고유진을 비롯한 출연진들의 열연 덕분이다. 올해로 가수 데뷔 20주년을 맞은 도원경, 선배 가수이자 록커의 표상인 김종서가 가수이자 배우로 함께 출연해 폭풍 성량을 과시한다. 특히 ‘마리아 마리아’는 고유진과 김종서가 똑같이 예수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두 카리스마 록커들의 대결에 관심이 집중된 것도 사실. 앞서 김종서는 “고유진에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부분을 봤다”며 “기분 좋은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유진은 영광스러울 따름이라고 두 손을 모았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종교인들에 국한되지 않는 공연” “록커들의 대결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김종서 선배와 같은 작품에 같은 역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조차가 영광이에요. 대결이라기보다 각각 보여주는 예수가 매력 있어요. 김종서 선배는 강렬한 록 카리스마가 있어서 노래를 부를 때 고음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해요. 또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예수와 비주얼도 비슷하고요. 저요? 전 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노래도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하고요.” 지금 고유진은 ‘예수도 유머러스하지 않았을까’ 하는 등의 상상을 곁들여 예수를 연기하고 있다. 단지 근엄하게 서 있는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놀기도 하는 인간적인 예수를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에 굉장히 속이 깊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거기에 인자함과 편안함 또 이와 상반되는 무서움도 지니고 있는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이다.
크리스찬인 고유진은 예수를 연기하면서 하면서 바빠서 가지 못했던 교회도 다시 찾는 등 신앙생활 또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꼭 종교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고유진은 “종교색이 강한 뮤지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중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큰 테두리는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사람들 간의 사랑으로 이뤄진다. 그런 사랑이 있기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또한 감동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토록 뮤지컬의 매력에 매료된 그가 왜 그동안 뮤지컬 섭외 요청을 마다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들이 많다고. “제가 뮤지컬의 매력을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또 ‘과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플라워’ 활동도 바빴고요. 2006년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 역으로 오디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콘서트랑 겹쳐서 거절했어요. 지금은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아쉽죠. 뮤지컬은 정말 매력 있어요.” 늦게 시작된 새로운 도전인 만큼 가수라는 명성 때문에 뮤지컬 주역 자리를 꿰찼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열심히 연습에 참여했고 노래와 연기에 치중했다. 여러 가수들, 특히 아이돌이 뮤지컬에 많이 진출해 호평을 받을 때도 있지만 바쁜 스케줄에 뮤지컬 무대에 소홀한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선배 가수로서 이런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더더욱 책임을 가지고 연습에 임했다. “후배 가수들이 회사에서 잡아준 스케줄의 일환으로 무대에 설 때 안타까워요. 만약 그렇지 않고 무대에 소홀한 거라면 본인이 책임감이 없는 거죠. 그런 사례들이 많아지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요.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일 중요한 건 작품에 대한 애정이라고 봐요. 지금 공연을 함께 하는 윤복희 선생님도 사랑이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했죠. 작품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어야 열정도 성실함도 생기거든요. 뮤지컬을 하게 되는 후배 가수들이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 했으면 좋겠고, 이왕 하게 되면 잘했으면 좋겠어요.” “가수 권태기 극복하게 해준 뮤지컬 소중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유진은 지금 뮤지컬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게 절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보다 연기 잘 한다는 말이 좋을 정도라니, 할 말 다 했다. 그는 “지금도 연기 잘 한다는 말이 듣기 좋다”며 “노래 잘 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하도 들어왔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지금 갓 신인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고유진은 어느 하나 서투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기존 ‘플라워’의 고유진 팬들이 조바심이 날 법도 하다. 고유진 또한 “가수 활동을 염려하는 팬들도 있다”고 귀띔해줬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고유진이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이다. “앞으로는 가수로서 또 배우로서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말에 ‘플라워’ 콘서트도 할 예정이고요. 한 때 가수로서 권태기를 맞아 가수를 이제 그만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때 팬들이 ‘무엇을 하든 응원하겠다’는 많은 격려를 보내줬어요. 또 팬들과 소통하는 뮤지컬을 만나 새로운 열정과 희망을 찾았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로서나 배우로서나 고유진의 모습을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웃음).”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