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그림을 통해 하나의 열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작가 최인선(48). 최 작가는 자신의 언어를 항상 그들의 상상 능력과 그것의 작용 방식에 따라 그 언어가 그들의 경험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작품 속에서의 언어, 그것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그 언어들은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본질이 언어체계를 통해 하나의 의미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상의 체계를 통해 무한한 의미로 파생한다. 그래서 회화적 장치와 함께 나열된 언어들은 본질적 의미 너머의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이끈다. 이미 언어는 풍부한 회화세계에 있는 것이다. 최 작가의 언어는 매우 가변적이며 유연하다. 회화 자체도 언어이며 그 위에 표류하는 기호들도 언어라고 말한다.
제목 역시 언어이며 그것은 회화의 일부로 스며든다. 이러한 언어가 감상자 각자에게 가능성을 향한 모티브를 제시한다. 작품 '무한은 유한이며, 유한은 곧 무한이다'는 이 모든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드러난 무한의 기호는 유한의 표면 위에 갇히고 유한의 표면은 곧바로 무한의 연속선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1989년 첫 개인전을 펼칠 때부터 1992년 '영원한 질료'에 이르기까지 최인선의 4년여의 탐색여정을 관통하고 있는 주된 관심은, 작품의 존재방식으로서의 '물성'과 인간의 '마음'의 통합내지는 종합으로 요약된다. 최 작가가 '영원한 질료'를 통해 前 세대의 물성파 작가들과는 달리 그가 다루고 있는 물성은 자신의 전모가 물성의 주체로서 등장하며 주체 스스로가 사유하는 이른바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내용, 나아가서는 인격적 전모를 물성 안에 내재시킨 물성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어떠한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회화자체의 에너지와 힘에 의존하여 인간성 회복에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질료와 질료들의 신비스런 교감 및 상호침투와 밀고 부딪치는 물성 속에 잠겨 있는 생명의 숨은 에너지를 표출하는 데 주력하며 이때 정서적 층위를 오가며 생기는 물질적 상태는 내밀한 감성의 세계에 대한 반영이라 할 것입니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물성이 강조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인간성의 회복'이라든지 '정서적 층위' 또는 '내밀한 감성' 따위와 같은 윤리적 판단 내지는 정서와 감성 등 비물질적 요소들을 대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최인선은 전세대작가들이 인간적 층위의 요소들을 방치하거나 적어도 작품 속에 은닉시키고자 하던 데서 과감히 떠나고자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마음'이라고 하는 세계 이해의 주체자를 불러들여 마음의 그릇 속에서 물성을 해체하려고 한다. 사유의 세계로 유인해 밑바닥 감성세계 표현 최인선의 '영원한 질료'를 잡아주는 '접점'의 발견은 '원초적 본능'과 '정신적 세계', '욕구 행위'와 '종교 행위'와 같은 다양한 항목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전자의 항목에다 '물성'을 그리고 후자의 항목에다 '마음'을 설정했다.
다양한 항목들의 관계로서 이해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공허한 동어반복이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으로 그려야 한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무명의 기록이자 몸부림의 기록임을 상징하는 표시는, 그의 작품들을 어둠의 빛깔로 뒤덮어 놓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콜라주에 의해 겹쳐져 부착된 검정색 종이들의 중첩상태가 이에 가세함으로써 자아내는 평면의 입체감이 작품의 질료적 효과를 극대화해서 물성의 존재감을 고양시킨다. '영원한 질료'의 특성을 방법적으로 결정짓는 하나의 요소는 선(線)이다. 그는 화면의 전체에다 호흡의 맥을 집어넣는다는 심정으로 가늘고 유연한 선의 율동을 첨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선은 그에게 있어 그가 말한 것처럼 '그의 행동을 내포하는 흔적이며 작품의 형태를 화면에 출현하게 하는 가장 사색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선들의 집합이 정신적인 것을 이미지화하는 표현수단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의 리듬, 속도, 굵기, 겹침의 정도를 고려하는 일 또한 잊지 않는다. 이것이 최인선의 '영원한 질료'가 물성과 마음이라는 영원한 대립을 중화시키며 하나의 접점에서 통일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의 중심을 채우고 있는 작품 의욕을 대변하는 가장 완성된 모습인 '영원한 질료'는 그의 물성적 사고가 전기물성파 세대의 작가들에 뒤이은, 전기의 사례들을 확실히 극복한 위상에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을 할 수 있다. 최인선은 1986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1990년 동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물질성이 강조된 단색 추상회화에 깊이 몰입했던 시기를 갖는다. 1989년 석판화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뉴욕, 광주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1992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1994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1996년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대상과 2002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03년 제2회 하종현미술상, 2005년에는 세오 중진작가상을 각각 받았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