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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 재벌사]금호그룹 편 3화

IMF로 계열사 절반 정리, 뼈를 깎는 구조조정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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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2-313호 박현준⁄ 2013.02.12 09:32:09

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떠오른 아시아나항공은 1990년대 중반 보유 항공기 39대로 국내 12개 도시에 19개 노선, 해외 13개국 31개 도시에 39개 노선을 운항하면서 국제적인 항공사의 면모를 갖췄다. 또한 삼양타이어를 비롯한 금호EP고무㈜, 금호쉘화학㈜, 금호몬산토㈜ 등 석유화학 계열회사들이 약진을 거듭해 1995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매출 4조 원을 올려 매출액 기준으로 재계 서열 17위를 차지했다. 외환위기 맞아 구조조정, 지주회사제로 전환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계열사 간 합병·지분매각·청산 등을 통해 한계사업에서 철수하고 비주력사업부문을 정리한 것이다. 그 결과 1997년 32개였던 계열사를 2001년에는 15개로 축소했다. 또 자본유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1998~2001년 사이에 약 3조 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해 차입금을 상환함으로써 1997년 말 966%에 이르던 그룹 부채비율을 2001년 말에는 360%까지 낮추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그 결과 1999년에는 창사 이래 최대 흑자인 약 242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성과를 실현하는 등 구조조정작업은 2003년 7월까지 계속됐다. 그 와중에서 사업내용의 변동이 불가피했는데 주요 기업들의 내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이다. 지주회사제도는 재벌들의 경영투명성 제고 및 계열사들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뿐만 아니라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구조도 단순해져 동반부실 차단이 가능한 선진 경영시스템으로 평가를 받으며 외환위기 수습과정인 1999년에 제도화됐다. 금호는 1999년 2월 금호건설과 금호타이어를 합병해서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을 설립했다. 금호산업은 2003년에 금호타이어를, 2005년에 금호패밀리랜드를 각각 분리하고 코오롱고속을 인수 합병했다. 또한 2008년에는 속리산고속을 인수했으나 2009년에는 국내 상장기업들 중 가장 큰 순손실(2조3400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호건설의 후신인 금호산업 건설사업부는 그동안 인천국제공항, 무안국제공항 등 공항사업과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등 SOC사업 및 신공항고속도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민자사업에도 참여했다. 2006년부터는 동남아시아 및 중동 건설시장에 대한 진출도 본격화했다.

아시아나항공, 그룹 주력기업으로 우뚝 서 둘째, 항공부문 강화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2월 설립 이래 착실한 성장을 거듭해서 2010년에는 매출액 5조1000억 원(44억9000만 달러), 영업이익 6358억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매출액면에서는 경쟁업체인 대한항공(101억4500만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나 창업 20여년 만에 이룬 성과여서 주목된다. 2011년 현재 항공기 보유대수 71대에 국내선 12개 도시, 14개 노선과 국제선(여객) 22개 국가 66개 도시, 86개 노선 및 화물의 경우 13개 국가 25개 도시, 21개 노선을 확보하고 있다. 1991년 9월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 최대의 항공권 판매 및 예약업체인 애바카스와 공동 출자해서 아시아나애바카스정보를 설립하고 컴퓨터예약시스템 영업을 개시했다. 2003년 2월 아시아나항공 정보통신부문과 컴퓨터예약시스템 사업을 통합, 아시아나IDT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4년 5월에는 컴퓨터예약시스템 사업을 분리해서 아시아나애바카스를 별도로 설립했다. 2007년 8월에 아시아나항공은 부산광역시와 공동으로 출자해서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저비용 항공사인 에어부산을 설립했다. 아시아나항공(46% 지분)에서 737-500 3대, 2009년~2010년에 보잉 737-400 3대 총 6대를 임차하고 국내 저가 항공사로는 최초로 에어버스 A321-200을 도입해서 국내의 부산-김포, 부산-제주, 김포-제주노선과 국제선으로는 부산-일본(후쿠오카, 오사카, 나리타), 타이베이, 세부, 홍콩노선을 운항함으로써 2010년에는 매출 1207억 원과 순이익 56억 원을 달성했다. 금호터미널(주)는 금호산업 고속사업부가 소유하던 터미널 관리를 위해 2006년 10월에 금호산업 자회사로 출범했다. 2009년 10월 1일자로 금호산업은 보유 지분 100% 전량을 대한통운에 매각해서 대한통운 자회사로 전환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한통운(주)을 매각하는 과정인 2011년 6월에 아시아나항공이 대주주가 됐다. 금호터미널(주)은 본사인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 등 7개 직영터미널과 군산터미널 등 7개의 위탁 터미널, 그리고 유성터미널 등 지분 및 임차터미널을 포함한 19개 터미널의 발권 및 개표관리를 하고 있다.

아시아나CC(주)는 1991년 (주)오봉개발로 설립되었다가 2007년 금호리조트에 합병된 골프장 운영업체다. 1990년 경기도 용인 양지면 대대리 산281-1의 221만5000㎡에 착공해서 1993년 6월에 36홀과 파3 전용코스 9홀의 골프장을 완공하고, 2003년 4월 금호에 인수되면서 아시아나CC가 되었던 것이다. 2007년 11월에는 금호리조트에 합병됐다. 석유화학부문 첨단기술 도입, 국제경쟁력 키워 셋째, 석유화학부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내의 석유화학부문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은 1976년 12월 금호화학으로 설립한 뒤 1985년 6월 한국합성고무공업을 흡수합병해서 상호를 변경한 것이다. 1988년 1월에 기업을 공개했으며 1998년 11월에 반도체케미컬 사업에 진출하고 1997년 5월에 금호케미칼을 인수했다. 금호케미칼은 1972년 4월 한남화학공업사로 설립되어 1980년 5월 한남화학으로 변경하고 1984년 5월에 기업을 공개했다. 1994년 1월 미원유화(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가 1997년 5월에 금호에 인수되어 금호케미칼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2001년 1월 금호석유화학에 흡수합병 됐다. 금호석유화학은 2002년에 금호개발 화학사업부를 양수받아 라텍스, 폴리스타이렌, 스티로폼, 폴리프로필렌글리콜, 노화방지제, 가황촉진제 등의 생산으로 2008년에는 ‘20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2009년 9월 금호항만운영을 설립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종속회사인 금호P&B화학(전남 여수시 화치동)은 석유화학계 기초화합물 제조업체로 1976년 4월 금호화학으로 설립됐다. 1986년 11월 KS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87년 6월 쉘(Shell)사와 50대 50으로 합작투자해서 금호쉘화학으로 변경됐다. 1990년 미국 UOP사의 신기술을 도입하여 페놀/아세톤 공장을 증설했으며, 1991년에는 쉘의 기술을 도입하여 BPA, MIBK, 에폭시수지 공장을 건설했다.

1998년 3월 쉘사의 지분을 매입해서 금호P&B화학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같은 해 11월에 금호석유화학으로부터 알킬페놀(Alkyl-Phenol)사를 인수했다. 2000년 7월 일본 신일본제철과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2001년 12월 알킬페놀공장을 미국 셰넥태디(Schenectady)에 매각했다. 이후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 이데미쯔화학의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2003년에 BPA공장을, 미국 UOP사의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2005년에는 큐멘, 페놀/아세톤 공장을 국제적 규모로 증설하여 2005년 4월에 완공했다. 2006년 10월 23일 BPA공장의 생산능력을 13만 톤으로 확장하고, 일본의 쓰키시마사와 기본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금호미쓰이화학은 유기화합물 제조를 목적으로 1989년 3월 금호석유화학과 일본 미쓰이(三井)화학이 50%씩 투자하여 금호삼정동압(주)으로 설립됐다. 1990년 5월 미쓰이동압화학과 폴리우레탄의 주원료인 MDI(Methylene Diphenyl Diisocyanate)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91년 11월에 금호미쓰이도아스로 변경했다가 1997년 10월에 금호미쓰이화학이 됐다. 자동차부품과 산업소재로 널리 이용되는 합성(EP)고무 제조업체인 금호폴리켐은 1985년 6월 한국합성고무공업과 일본합성고무(JSR)와의 합작으로 금호EP고무로 설립됐다. 1986년 8월 전남 여수시 월하동에 공장 건설에 착수해서 1987년 10월에 완공했다.

1988년 4월에 미국 액슨(EXXON)사로부터 기술과 자본을 도입, EP고무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해 왔다. 이후 지속적인 증설공사를 통해 1996년 5월에는 여천공장의 생산능력을 5만MT으로 확대하고 1997년 5월에 금호폴리켐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7년 7월에는 여천공장 3차 증설공사를 완료했다. 세계 최초의 초저온 EPDM 중합방식으로 연산 8만MT의 KP-Ⅱ Plant가 완성된 것이다. 중고택시 2대로 시작, 65년 만에 굴지의 재벌로 금호타이어는 1984년 9월 금호실업과 합병해서 (주)금호로 불리다가 1996년 금호타이어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9년 2월 여객운송과 종합건설업을 영위하던 금호건설을 합병하여 금호산업으로 변경했다가 2003년 6월 타이어사업을 분사해서 또다시 금호타이어가 됐다. 2003년 초고성능(UHP) 타이어가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일류화 상품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한국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 및 ‘10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2008년 미국 금호타이어 조지아(Kumho Tire Georgia, Inc)와 중국 남경TBR(트럭버스용 레이디얼타이어)공장을 각각 설립했다. 2009년에는 국내 업계 처음으로 독일 벤츠사에 트럭과 버스용 타이어를 공급했다. 국내에 광주공장·곡성공장·평택공장과 해외의 중국 남경TBR공장·천진공장·장춘공장과 베트남공장 등 총 8개 공장에서 연 6600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해서 전 세계 180여 나라에 수출하는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1년 현재 화학/타이어 5개 업체와 건설 1개 업체, 운송/물류/서비스 10개 업체 등 총 36개 계열사에 자산총액 24조5000억 원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순위 16위에 랭크됐다. 공기업 등을 제외한 민간기업 순위는 11위다. 전남 광주에서 중고 택시 2대로 창업한지 65년 만에 굴지의 재벌로 성장한 것이다. - 이한구 수원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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