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 는 옛말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가난한 남의 살림 도와주기는 끝이 없다는 말,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하물며 죄인도 용서해주는데, 이제 가난을 구제해줘야 옳지 않은가.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 때문이다. 가난의 눈물과 행복의 웃음…최근 헌정사상 초유의 정부조직법 개편안 표류를 보며 든 생각이다. 국회에서 표류중인 정부조직법 여파로 20여개 주요 민생처리 법안이 뒷전으로 밀렸다. 부동산취득세 감면 연장이 무산됐고, 무상보육 국가보조금 지원도 오리무중이다. 하도급 차별 방지,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도 어렵게 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생활이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불똥이 서민에게 튄 셈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한 달도 안 돼 또 도진 여야 힘겨루기 결과다. 피해자는 서민이라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국회의원으로 대변되는 정치권 사회지도층이다. 200개가 넘는다는 갖가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을 탓하고 책임을 미룬다. 한마디로 ‘집단적 사치(奢侈)’ 에 빠진 사람들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정부조직법 표류에 불똥 맞은 민생 항상 희비는 엇갈리기 마련이고, 불똥은 누군가에 고스란히 떠넘겨진다. 정부조직법 확정이 지연된 그날, 은행창구는 유독 한산했다. 18년 만에 재산형성(재형)저축이 부활한 날치고는 의외였다. 급여소득 5000만원 미만 근로소득자와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사업자들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했지만 싸늘했다. 더욱이 이번에는 14% 세금감면 혜택이 있었지만 뜨듯 미지근했다. 경기악화의 불편한 진실이다. 서민의 저편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치졸한 행태가 낱낱이 공개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따른 인사청문회 덕분(?)이다.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나는 재벌 2∼3세는 둘째 치자. 이번의 사회지도층들은 공통적으로 ‘4+2’ 에 물들어 있다. 기존의 병역특혜,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등 네 가지는 기본이다. 추가로 논문표절, 전관예우 등 두 가지가 추가됐다. 부의 대물림, 욕망의 끝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라가 ‘그들만의 리그‘ 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서민은 가난에 분노하기 보다 불균형에 분노한다 사회지도층의 핵심 덕목은 사회적 책임이다. 불법과 탈법을 밥 먹듯 하는 행태는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정립된 선진국의 사회지도층은 우리와 다르다. 허접하게 꼼수를 부려 개인의 영달을 원하지 않는다.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한다. 불의와 불법에 대처하고 떳떳하게 자기주장을 한다.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다. 이런 조건이 갖춰져야 존중받는다. 중산층과 서민은 어떤가? 중산층이 무너지고 가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빚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서민들이 많다. 나라의 도움을 받는 사회안전망이 허술하다. 가계부채는 무려 1000조원에 육박한다. 이중 하우스푸어 등 중산층 부채가 90% 이상이지만 나머지는 서민들의 생계형 부채다. 생존을 위한 빚이다. 생활비, 전월세 보증금, 빚 갚기 위해 또 빌린 빚이다.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154만원에도 못 미치는 기초생활수급자도 140만명에 달한다. 가난의 대물림을 탈피할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이다. 이제 가난 구제에 나라가 나서야 한다. 그게 국민대통합이다. 빈부의 대물림은 나라의 죄악이다. 서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사회지도층의 탈세와 부동산투기 등 불로소득을 환수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을 인사청문회 자리에 앉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서민은 가난에 분노하기 않는다. 불균형에 분노한다.(不患貧 患不均)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