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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의 와인 세상]와인 맛을 알아맞힌다고? 인생엔 도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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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9호 박현준⁄ 2013.03.25 13:18:58

50년 이상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다방면으로 유능하지만, 와인에 대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본드가 만나는 인물과 와인을 마시면서 연도까지 알아맞히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영화 속에서 007은 국가 공무원이다. 따라서 국민 세금으로 얼마든지 고급 와인의 맛을 익히는 훈련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간다. 또 세계적인 와인 중에서도 아주 유명하고 비싼 와인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연습했을 것이고, 사전에 대상 인물이 어떤 와인을 즐겨 마신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접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반인은 아무리 연습해도 제임스 본드와 같이 될 수는 없다. 그만큼 와인이 사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많이 알면 알수록 유리한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락 영화를 통하여 보여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와인의 맛만 보고, 어느 지방, 몇 년도, 무슨 와인이라고 알아맞히는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천만에! 만약 우리가 하루에 10개씩 맛을 보고 그 맛을 외운다고 가정할 때, 1년이 지나면 3650개의 와인 맛을 기억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또 다른 연도의 동일한 이름의 와인이 3650개가 또 나오기 때문에 평생을 아무리 노력해도 3650개 와인만 맛보다가 인생이 저문다. 그런데 세상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약 백만 가지 정도 된다. 수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한번 맛을 보고 몇 년도 산, 무슨 와인이라고 맞히는 장면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때는 미리 그 범위를 정해주거나, 촬영하기 전에 미리 맛을 본 후 그것을 맞히는 것이다. 분식점에서 라면장사를 한다고 하면, 어떤 라면을 사용할 것인가? 모든 사람이 맛있다는 라면을 구입해서 끓여주면 된다. 주인이 꼭 라면 맛을 보고 무슨 라면인지 알아맞힐 필요는 없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맛이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라면을 팔게 되어 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 맛에 이 정도 가격이면 우리가 수입해도 되겠구나, 혹은 숍이나 레스토랑이라면 손님에게 얼마든지 추천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되는 와인을 선택해서 많이 팔면 된다.

맛을 보고 알아맞히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나의 입맛과 고객의 입맛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으면 된다. 일반 소비자라면 와인 맛을 보고 나에게 맛있다, 맛없다고 느껴지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맛을 가격과 비교해서 구입하여 맛있게 마시면 더 이상 바랄게 없는 것이다. 와인 감정 전문가라고 해도 자기가 전문으로 감정하는 지방의 와인이나 타입이 있기 마련이다. 그 많은 와인의 맛을 모두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품종의 특성을 파악하고, 오래된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방별로 어떤 타입인지 아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와인에서 동물 냄새, 블랙커런트 어쩌고저쩌고하지만, 전문가들이나 책자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그대로 나에게도 느껴진다면 좋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뉘앙스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제 와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익숙해지는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맛있다”, “맛없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충분하다. 와인 테이스팅은 음악 감상과 똑 같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제목이 무엇인지? 작곡자가 누군지? 언제 작곡했는지? 그 시대적 배경은 어땠는지? 하는 것처럼 와인도 마찬가지다. 한번 좋아하는 새로운 와인을 만나면, 이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와인메이커, 포도, 재배지역, 블렌딩 비율, 그리고 환경까지. 결국 좋은 와인이란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이다. 테이스팅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즐거움을 주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와인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의 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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