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호 이진우⁄ 2013.04.01 11:17:14
“왜 이렇게 느려?” 지난 1853년 미국의 오티스사가 야심차게 선보인 엘리베이터에 대한 평가다. 오티스는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이용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기대했지만, 그들이 받은 것은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려 차라리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 못하다는 불평불만이었다. 오티스는 이내 고민에 휩싸였다. 현대의 기술로는 고속 엘리베이터가 가능하지만, 당시의 기술로 엘리베이터 속도를 더 빠르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티스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난관에 부딪힌 오티스를 구원한 것은 한 엘리베이터 여성 관리인의 관찰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관리인이 이용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엘리베이터의 속도에 불만을 가진다기보다는, 그 안에서 달리 할 일 없이 기다리는 것을 못 견뎌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오티스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거울이었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인식하지 못한 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됐다. 더불어 이용자들의 불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IGM 문달주 교수는 “오티스가 만약 속도를 높이는 것에만 해결책을 강구했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면서 “문제의 숨은 본질을 꿰뚫어 새로운 시선으로 해결책을 도출해 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교수는 “이렇게 소비자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숨어있는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통찰의 힘이다. 통찰력이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관찰을 통해서 문제의 숨은 본질을 파악하라.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문제의 해결책 찾는 것. 이것이 통찰의 3단계 프로세스다”라고 강조했다. 숨어 있는 본질을 찾아 해결하는 것…통찰의 힘! 많은 사람들은 통찰을 떠올리면 해결책을 찾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당신이 건축가라고 생각하고 다음 문제 상황을 생각해보자. 두바이의 바닷가에 전망 좋은 터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망이 좋은 방과 그렇지 않은 방의 가격 차이는 매우 크다. 빌딩주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많은 방에서 좋은 전망을 볼 수 있게 하길 원하고 있다. 당신은 빌딩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사실 이 문제 상황은 건축가 데이비드 피셔(David Fisher)의 고민이었다. 피셔는 건물을 짓기 전에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적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망이 좋은 방을 원한다. 빌딩주 역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방에서 좋은 전망을 볼 수 있게 건축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현재 빌딩의 구조로는 특정한 방에서만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다. 결국 피셔는 모든 방에서 좋은 전망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건물을 회전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것이 바로 두바이에 세워지는 세계 최초의 회전 빌딩 다이나믹 타워의 탄생 배경이다. 다이나믹 타워는 80층 420미터의 높이로, 태양전지와 풍력을 이용해 360도 회전이 가능한 신개념 건축물이다. 피셔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함으로써 그 어느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움직이는 빌딩을 생각해 낸 것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문제의 숨은 본질을 꿰뚫어 해결하는 힘, 이것이야 말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통찰의 기반이다.
문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찰에 실패하는 이유는 문제를 정의하는 데 관심을 크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거의 모두가 솔루션을 먼저 찾는다”면서 “통찰의 첫 단계는 해결책 모색이 아니라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문제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역설했다. 문제를 정의했다면 통찰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이는 새롭게 정의된 문제의 숨은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의 숨은 본질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수많은 기업들은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찾기 위해 설문조사나 인터뷰와 같은 방법을 써 왔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나는 소비자의 니즈는 매우 한정돼 있었다. 진정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전통적 조사로 드러나는 니즈가 아닌, 숨은 니즈를 찾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제럴드 젤트만 교수에 의하면 사람의 5%만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말로 얘기 할 수 있다. 나머지 95%는 자신의 욕구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영향을 의식해 진실되게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이 제대로 된 숨은 본질을 찾기 위해서 이 5%에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문 교수는 “통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숨은 본질을 찾는 해답은 바로 관찰에 있다. 숨은 본질은 기존의 전통적인 설문조사나 면담 등의 방법으로는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라면서 “면밀한 소비자의 행동 관찰을 통해서 문제의 숨은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관찰을 통해 숨은 본질을 찾아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LG전자를 꼽을 수 있다. 인구 11억 4000만 명으로 세계 총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는 새로운 소비계층이 급부상하면서 큰 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LG전자는 인도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인도인들의 집에 비디오를 설치한 후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LG전자는 인도인들이 매 끼니마다 야채를 먹는다는 숨은 니즈를 파악하고 야채 칸을 하나 더 늘린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렇게 인도인들에게 맞춰진 현지화 제품은 LG전자가 인도시장에서 창출한 54억 원의 이익 중 10%에 해당할 정도로 크게 공헌했다. 이처럼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법에는 비디오 트랙킹(Video Tracking) 뿐만 아니라, 특정 소비계층을 지정하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쉐도우 트랙킹(Shadow Tracking)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관찰 통해 문제의 숨은 본질을 파악하라 행동 관찰에 이어 소비자의 신체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2륜차(오토바이, 스쿠터) 사업으로 흑자를 유지한 혼다(Honda) 오토바이는 신흥 국가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 등에서 40~70%나 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끊임없이 혼다가 소비자들의 신체반응을 관찰한 결과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토바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혼다는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오토바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대부분의 오토바이 사고는 자동차 운전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오토바이를 인식하지 못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를 정의하게 됐다. 이후 혼다는 뇌 영상을 촬영해 관찰하기 시작한 결과, 사람들은 일반 사물에 비해 얼굴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사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를 제품에 반영한 혼다는 화난 얼굴 모양의 오토바이를 디자인해 출시했다. 이 오토바이는 일반 오토바이보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비율이 43%나 높아져 사고의 위험이 일반 오토바이에 비해 적다고 한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제트블루의 최고경영자인 데이비드 닐먼은 일반석을 타는 CEO로 유명하다. 그는 직접 일반석을 탑승하면서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CEO였다.
닐먼이 여느 때와 같이 일반석을 탑승하고 여행을 하던 중 어린 아이의 소변으로 오염돼 축축이 젖어있는 좌석을 배치 받았다. 그는 여행 내내 좌석이 마르지 않아 불편함과 찝찝함을 겪어야만 했다. 그 후 닐먼은 제트블루의 모든 좌석을 가죽시트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제트블루는 좌석 사이를 여유 있게 배치해 일반석의 답답함을 줄였고,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각 좌석마다 개인 모니터를 장착했다. 이 모든 변화는 CEO인 닐먼이 직접 일반석을 타며 소비자 입장이 되어 개선점을 찾아 해결한 결과다. 이러다 보니 제트블루는 미국 최고라 일컬어 손색이 없는 서비스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고, 항상 고객이 몰리는 항공사로 거듭났다. 이렇게 고객의 행동, 신체반응 혹은 직접 체험해서 얻어지는 관찰의 결과는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관찰을 충분하고도 꾸준하게 반복해야만 고객이 원하는 진정한 숨은 니즈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관찰을 통해 문제의 숨은 본질을 파악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문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남아 있다. 문 교수는 “기존에 있던 방식을 개선한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방법의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고 외부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스위스에선 소비자의 결핍을 해결해 주는 양말 배달 사이트인 ‘블랙삭스닷컴’이 탄생했다. 이 기업은 3, 6, 12개월 마다 소비자에게 양말을 배달해 준다. 2008년에는 누적 판매량이 100만 켤레를 돌파했으며, 이후 속옷과 기본 티셔츠까지로 사업을 확장한 상태이고, 5만 명 이상의 소비자가 정기 주문을 하고 있다. 이렇게 결핍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문제의 해결책 찾는다 해당 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회사여서인지, 소비자에게 제품 설명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가 오히려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음료수 뭐 드시고 싶으세요?”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혹시 “아무거나” 라고 대답하지 않는지 생각해보라. 싱가포르에선 실제로 이렇게 대답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탄산음료로 애니씽(Anything)과 아이스티 왓에버(Whatever)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음료의 맛은 6가지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제품 디자인에는 전혀 맛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무례한 음료수인 것이다. 하지만 이 불편한 점 때문에 이 음료수는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소비자들이 이 음료수를 마실 때마다 어떤 맛이 나올까 기대하게 되면서 매번 뽑기를 하는 듯한 느낌의 궁금증으로 자주 구매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애니씽과 왓에버는 싱가포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음료수는 원래 음료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싱가포르 방송국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업은 아이디어를 기업 내부가 아닌 소비자, 전문가, 협력업체와 같은 외부에서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외부에서 얻어진 아이디어는 더욱 획기적인 혁신을 기업에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소비자와 기업의 매개체가 생기면서 기업의 제조 생산과정에 소비자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더욱 많이 반영되고 있다. 이렇게 기업들이 외부아이디어를 활용하려고 하자, 기업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기업까지 탄생하게 됐다. 바로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합작 벤처 회사인 크라우드스피리트(CrowdSpirit)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소비자들이 발명가가 된다. 먼저 기업은 제품을 사이트에 올려 소비자에게 아이디어를 묻는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기업은 올라온 아이디어 가운데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채택한다. 이후 기업은 채택된 아이디어에 걸 맞는 보상을 해준다. 외부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방법은 소비자의 의견 외에도 협력업체와 같은 곳에서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마지막 방법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결핍을 해결하고, 또 고정관념을 깨거나, 외부아이디어를 활용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문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런 통찰의 과정에서 얻어진 해결책에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시대의 공감을 얻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대우에서는 세계 최초로 세제가 필요 없이 빨래가 가능한 세탁기인 마이더스를 개발했다. 물에 전극을 가해 체지방과 단백질로 구성되는 때의 분자고리를 분리해 세제와 같은 세척력을 발휘하게 하는 획기적인 세탁기였다. 이 세탁기에 대한 주부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이 세탁기는 2006년 단종됐다. 주부들이 거품이 많이 나야 세탁이 깨끗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아무리 좋은 혁신도 시대의 공감을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통찰의 3단계를 거치고 시대의 공감까지 얻어 새로운 비즈니스의 시대를 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소비자의 행동, 신체반응, 직접 체험한 느낌을 관찰해 숨은 본질을 파악해, 새로운 시선으로 결핍을 해결하거나 고정관념을 깨고, 외부아이디어를 활용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성공적인 통찰력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