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2호 이진우⁄ 2013.04.17 13:22:48
TED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본능적인 호기심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정서에 가장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는 서로 공감하는 사람들을 통해 빠르게 전염될 수 있다. 우리가 호기심에서 비롯한 아이디어를 만났을 때 비로소 ‘아하 모멘트(Aha Moment)’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은 물론 주변으로 이것을 확산시키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TED는 아이디어가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조직임을 명시한다. 송인혁 퓨쳐디자이너스 대표는 “최근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가 소통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바꾼다는 식의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일반화하는데 불과하다”면서 “정보와 지식의 시대 그 너머에서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가에 주목하고, 시대적 과제에 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왜 세상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하는 일이고, 이것이 앞으로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송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새로운 시대의 공감 기술, TED는 무엇인가? TED는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확산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 범지구적인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그저 ‘어떤 게 옳다’, ‘어떤 게 문제다’라는 식으로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당면한 숙제들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찾는 것이 TED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생각들의 연결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뜻하지 않은 행운인 Serendipity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TED는 잘 가공된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아이디어들이 최대한 확산되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우리 각자가 추구하는 것들에 새로운 행동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TED는 어떻게 전세계 혁신을 연결하는 운동으로 성장하게 됐나? 원래 TED는 기술, 오락, 디자인의 세 분야를 다루는 지식 학회로 출발했다. 1984년에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30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각 분야의 리더들이 업계 최고의 기술을 선보이는 학회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학회는 위기를 맞게 됐다. 인터넷의 정보혁명을 통해 이제 세계 곳곳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고, 이러한 혁신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 또한 굳이 현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다보니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인터넷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크리스 앤더슨이 TED에서 소개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한된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확산시킴으로써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촉발하는 TED가 더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TED를 인수했고 ‘확산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라는 기치로 새로운 TED를 만들어 냈으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TED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자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이 혁신의 현장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참석하는 데만 1000만 원이라는 돈을 내야 할 정도였지만, 그런 돈을 지불하고도 TED에 참석할 사람들이라면 참으로 대단한 열정가들이 아니겠는가. - 인간의 두뇌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복잡성에 압도되지 않는가? 오랫동안 과학계에서 풀고자 했던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 답으로 얻은 것이 연결성에 관한 새로운 패턴인 수퍼스케일네트워크(Scale-free network)이다. 연결이 강화될수록 그저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로의 개념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에는 말이 아니라 그저 이런 저런 소리만 내지만, 이내 엄마, 아빠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기가 따라하는 말들 속에서의 패턴을 인지하게 된다. 결국 일정한 패턴을 가지는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나아가 언어로 사고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처음엔 무작위적인 연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패턴을 형성하고, 그 패턴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턴을 연결하면서 계속해서 더 고차원적인 패턴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연결성이 강화되는 것이 복잡성이 커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조직이 성장하면서 복잡해지고 또 다른 복잡성을 낳는 ‘조직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인류의 역사는 사실 연결성의 강화 방향으로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DNA에서 복잡한 두뇌를 형성했듯이, 마을의 부족장을 중심으로 하는 허브 네트워크로 소통을 하다가 마을과 마을이 소통하고, 도시와 도시가 소통하고, 결국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가 연결되고, 이제는 그보다 더 밀접한 형태의 연결로 진화하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연결성이 강화될수록 기업도 진화하고 있다. 처음엔 매커니즘의 형태로 시작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에 최적화되고, 또 이를 관리하는 간접조직으로 점점 복잡성이 커졌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러운 복잡성의 관리문화 속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는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이러한 복잡성을 다양성으로 변화시키고 연결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 점 대 면 소통방식을 가능케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또 연결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의 전차군단은 미리 계획된 전략대로만 움직이지 않고, 실시간으로 무전을 주고받으며 프랑스 탱크를 무찌르고 기선을 제압했다. 이때 탱크병들의 소통수단이었던 무전기가 점 대 면 소통방식의 수단으로서, 전술적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를 가져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LG트윈타워 인근 여의나루역에 있는 LG 대형광고 스크린이 고장 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여의나루역을 지나가는 수많은 LG 직원들이 그것을 봤을 테지만, 그들은 고장 난 스크린을 고치라고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는 주인의식의 부재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연결, 소통의 문제다.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회사와 고객의 상황에 대해서는 소통을 강조하지만 회사 내 소통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많다. 이 사례의 경우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1:1 소통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설령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연결을 통해 점 대 면으로 소통했을 때에야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이러한 점 대 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 화난 원숭이의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학습된 무기력) 우리 모두는 회사 밖에서는 이미 열정적이다. 그런데 왜 회사에만 오면 열정이 사라지고 마는가? 화난 원숭이의 실험을 보자. 우리 안에 원숭이들을 가둬 놓은 채 바나나를 매달아 두고, 한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만지면 실험자가 우리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후 원숭이들은 모두가 찬물이 무서워서 바나나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원숭이 한 마리를 새로 우리에 넣었는데, 그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려 하자 다른 원숭이들이 그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말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안의 원숭이를 한 마리씩 모두 바꾸었어도 원숭이들은 아무도 바나나를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찬물의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이것이 학습된 무기력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우리가 조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동료들이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고, 일만 벌여봤자 벌인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로 인해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열정이 없어지는 것이다. - “창의성과 열정은 학습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는? 열정과 창의성은 의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의지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부모가 아이에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해도 안 되는 공부가 한 순간에 되기 어려운 것처럼, 직원들에게 “열정을 품어라”, “창의성을 가져라”고 외쳐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창의성이 각자의 내재된 독특한 능력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창의성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보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것이 연결되는 순간에 가치가 생성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때 비로소 창의성과 열정이 생기는 것이다. - 어떻게 조직 내에서 열정과 창의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일본의 미야자키 현의 고지마라는 섬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섬의 원숭이 가운데 이모라는 이름의 18개월짜리 원숭이가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모습이 관찰됐다. 3개월이 지난 후에는 다른 원숭이들도 이모의 혁신적인 시도에 함께 참여하면서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늙은 원숭이 한 마리는 끝까지 고구마를 씻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조직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이모’와 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그 열정과 창의성이 금방 사라지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연결이다. 우리 조직은 어떤 모습인가? 이모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인가, 아니면 늙은 원숭이의 모습인가. 회사는 개인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일들을 시도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즉 창의성이 증폭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을 서로 연결시켜 줘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면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증폭되지 못하고 바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 아이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탄생시키는 방법은? TED는 전세계 혁신을 연결하는 운동으로 성장해 오면서 사람들 간에는 서로 강력한 동기로 묶여 있다. 이런 정서적 유대감이 강한 사람들 수천 명이 모여 조직으로 뭉친다. 이들로부터 아이디어가 확산되고, 아이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결을 통해 프로젝트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삼성에서 시작한 ‘MindStorming’ 프로세스를 보자. 이는 구성원들의 끈적끈적한 내적 연결을 만들어 틀을 쉽게 깨고, 실제 행동을 하며 내적인 호기심과 창의성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게 한다. 그리고 전체 내용을 공유하고 여러 사람이 서로의 지혜를 교환하면서, 전체 과정에 대해 회고하고 뜨거운 미친 리액션의 에너지 버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20명 가량으로 시작해 이상한 사진도 찍고 서로 머쓱해 하면서도 이를 공유했다. ‘이런 거 한다고 회사에서 자르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이들은 주로 사회적 기업이나 적정기술 등의 자유주제를 정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이러한 행사가 ‘힐링’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점점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로 부서가 달라도 질문을 하면 바로 답변이 이어지는 등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후 더 큰 도전을 위해 행사 규모를 늘렸고, 미션, 근무시간이나 고과가 없는 전무후무한 조직으로 탄생하기에 이르렀으며, 35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참여했다. 그리고 루게릭병을 위한 안구마우스라든지, 갤럭시3의 핵심기능에 대한 아이디어 등이 여기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사업부에서는 이 조직이 아무런 체계가 없다고 판단하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직의 딜레마는 어디에나 있기에.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