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과거의 일들을 선별적으로 기억하려는 성향이 아주 강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그 자극의 정도에 따라 유통기한에 차이가 있다. 기억이 불리한 것은 짧고, 유리한 것은 좀 긴 것 같다. 또 악한 것은 길게 가고, 행복한 것은 짧다. 하지만 나의 뇌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어느 순간 도출되면서 데자뷔처럼 나타날 때의 감정이나 내 처신에 대해 간혹 황망하고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더욱이 이러한 기억은 디지털 CD와 같지 않아 그전 기억 당시의 상황과 많이 다를 수도 있어 더 괴로울 수 있는 것이 문제로 다가온다. 잘 되면 내 탓이요, 잘 못되면 조상 탓이랬다. 내가 갖고 있는 나쁜 기억은 그 기억을 유발한 상대를 더 악하게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다. 물론 이것이 사람, 사물, 감정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 자신이라면, 나는 그런 행동이나 판단을 슬그머니 덮어버리려는 속성을 억누르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 감정의 해소 흐름이 결코 좋은 습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차후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사의 기억은 악연과 좋은 인연으로 나뉜다. 좋은 인연으로 기억된다면 무방하지만, 악연에 덧붙임이 있다면 다르다. 타인에 대해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는 악 감정은 간혹 시간이 지나면서 덧칠돼 더욱 악한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나중에 그를 우연히 만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낼 때 더 심한 증오를 표출하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이것이 시쳇말로 ‘뒤끝 작렬’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랜 기간이 지나고도 그런 기억으로 나의 뇌에 각인돼 있으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조차도 구별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 그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바로 감정의 부메랑이다. 사냥을 위한 부메랑은 목표물을 맞히면 돌아오지 않고 사냥감을 선물한다. 하지만 감정의 부메랑은 꼭 돌아온다. 설령 그가 의도대로 목표물을 정확히 맞혀 상처를 입혔어도 다시 선혈 낭자한 서슬 퍼런 흉기로 변해 반드시 그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이렇듯 인간사에서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은 없다. 이것이 어찌 타인에게만 해당되겠는가? 내 자신에게도 분명 돌아온다. 내게 돌아온 서슬 퍼런 부메랑은 타인의 것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다. 그로 인한 나의 내상은 단순한 관계정리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골프는 이런 기억들이 만들어지는 운동이다. 동반자와 나의 인격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나타나 내가 동반자를, 혹은 상대방이 나를 평가하고 기억하게 되는 특이한 운동이다. 동반자에게 나의 되먹지 못한 성향이 그대로 기억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의 나쁜 성향을 내가 기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골프가 상대방과의 교제 목적이라면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먼저 관대한 시각으로 동반자를 보라. 또한 본인은 더욱 예리하고 치밀한 잣대를 들이대며 빈틈없이 엄격한 행동을 하도록 한다. 어찌 보면 골프를 하면서 나의 됨됨이를 한층 격상시킬 수도, 아니면 되돌릴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러니 골프를 하던, 인생사에서든 행동과 언사가 남에게, 혹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는 용서와 화합, 그리고 희생이란 것이 있어 천만 다행이다. 그리고 악한 감정보다는 행복한 감정을 오래 기억해야겠다. 내가 던진 부메랑을 내가 되받기 전에 남의 허물이나 실수를 용서하고 감싸주도록 하자. 적어도 열 번 용서하면 내게 돌아오는 부메랑 한 개 정도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 강명식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푸른요양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