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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철 건강 칼럼]심장보조장치와 심장이식으로 다시 태어난 체니 전 美 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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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7호 박현준⁄ 2013.05.20 13:37:03

미국 전 부통령인 딕 체니는 2013년 5월 7일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린 제93차 미국흉부외과학회에 참석해 ‘흉부외과 의사들과 심장수술과 관련된 의료인들의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12년 3월 25일 심장이식을 받았으며, 수술 후 1년이 넘은 지금(2013년 5월)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2013년 5월 초 TV 인터뷰에서 2012년 9월 11일 벵가지 미국 주둔지 테러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당한 미국의 리더십의 부재”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예리하면서도 공격적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 일하면서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국제적으로 많은 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한 훌륭한 인물로 각인된 분이다. 한편 체니 전 부통령은 발전하는 현대의학의 모든 혜택을 때에 맞추어 받은 행운아이자, 의료진들에게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좋은 환자로 인식되고 있다. 딕 체니는 네브라스카주 링컨에서 1941년 1월 30일에 태어나 와이오밍주 캐스퍼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1950년대 시골의 한적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예일대학에 입학했으나 다니지 못하고 다시 와이오밍주의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해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는 럼스펠드 의원에게 발탁돼 1976년 포드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를 시작으로 이후 6차례 와이오밍주의 하원의원으로 봉사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국방장관으로 ‘사막의 폭풍’이라는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탁월한 안목과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이후 2000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부통령으로 참여해 성공했다.

그러나 많은 선거로 스트레스를 받던 체니 전 부통령은 37세인 젊은 나이에 급성 심근경색증을 앓았으며, 이후 6번의 심근경색증을 앓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1980년대 이후 발전된 고혈압 및 동맥경화증과 관련된 고혈압 등의 약물치료와 수술로 질병을 극복하고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급성 심근경색증 앓은 체니 전 부통령 좌심실 보조장치로 제2의 삶 얻어 여러 번 심근경색증을 앓은 이후 2001년 부통령 재임 당시 관상동맥우회수술을 받고도 정치적 활동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한 인물로 평가 받았으나 은퇴 후 심장의 기능이 매우 나빠졌다. 2010년 당시 69세의 체니 전 부통령은 심장의 상태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전은 그에게 다른 삶의 빛을 보여줬다. 최근 발전된 좌심실 보조장치가 그의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했다. 2000년대 이후 발전된 심실 보조장치는 2010년 미국의 식품의약국(FDA,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으로부터 환자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특별히 2010년에는 심장이식의 가교로써가 아닌 영구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게 된 것이다.

2010년 당시 체니 전 부통령은 말기심부전증으로 약 40일 이상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약 20kg 이상 체중이 빠지는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2010년 7월에 심실보조장치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고 심장재활 치료 후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당시 69세였던 체니 부통령은 거의 죽음에 다다른 과거 정치가였으나 의료진들과 가족들의 적극적인 치료로 빨리 회복했다. 이후 20개월 후인 2012년 3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으며, 이제 완전히 회복한 상태로 학회에 참석해 본인의 삶을 잠시 회고했다. 심장이식 수술 후 이제 대외적인 활동과 더불어 주치의사와 함께 ‘환자와 의사, 진료팀’이라는 주제로 상호이해와 신뢰에 기반을 둔 발전된 현대의학의 도입과 치료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된 좌심실 보조장치는 1998년 심장이식의 가교(이식을 기다리는 일시적 보조장치)로 미국 FDA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후 영구적인 심장보조장치로의 가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해 2001년 연구결과 약물치료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여 역시 미국 FDA로부터 심장이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수술할 수 있도록 사용 허가를 받게 된 것이다. 특별히 2000년대 중반 이후 발전된 비박동형(또는 로타리 펌프 : 양수기 펌프처럼 박동이 없이 혈액을 내보내는 장치) 심실보조장치는 크기와 무게가 작아짐으로써 처음 개발한 박동형보다 많은 장점들이 있어서 장기간의 심장보조나 영구적인 심장보조장치가 각광받기 시작해 유럽에는 2005년 11월 CE Mark를 받고 상용화 됐으며, 미국에서는 2008년 4월 심장이식의 가교로, 그리고 2010년 1월 20일에는 영구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됐다. 따라서 체니 전 부통령의 경우 2010년 급격히 심장상태가 나빠져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으나 71세의 나이에 좌심실보조장치 수술로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개월 후 심장이식수술로 제2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성품과 의료진들을 믿고 따르는 긍정적인 성품으로 25년 이상을 심장질환과 더불어 그리고 현대의학의 발전과 함께 적극적으로 치료 받으면서 탁월한 삶을 살아온 역사적인 인물로 오래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에 인공심장과 심장보조장치에 관해 일부 의학자들과 공학자들이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필자는 좌심실 보조장치와 관련된 동물실험 등 연구를 시작했으나 여러 사회적 경제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아 중단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에서는 2000년 7월 64세의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체니전 부통령에게 삽입한 HeartMate II 이전 모델인 HeartMate I을 삽입하는 수술에 성공했으며, 18개월 후 심장이식수술을 해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체니 전 부통령과 같은 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말기심부전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 위해 인공심장보조장치-심장이식 활발히 연구해야 심장보조장치는 이미 1~2년 전부터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서 치료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지난 4월 임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났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이후 인체삽입 제품의 규정이 재개정되고 까다로워짐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에서 허가된 제품도 일정 수량을 제출해 여러 시험을 거쳐야 수입을 허가하며, 이후에도 의료보험공단의 신기술 허가를 받아야 시술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는다 해도 일정 기간은 무상으로 의료기관이 임상연구로 시술해야 한다. 얼마나 소요될 지 대강 짐작하기 때문에 이를 수입해 진료에 도움을 주려는 의료기계 회사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치료에 1~2억 원이 넘는 의료장치를 수 십 개 가량 시험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이 충분한 업체도 없다. 더구나 이미 구미에서는 매년 수 천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기에 임상연구를 무료로 시험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닐 것이다. 아울러 임상시험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재 의료 환경에서는 돈이 있어도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외국으로 나가거나,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말기심부전증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인공심장보조장치와 심장이식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는 국가 정책의 미래가 밝게 느껴지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유죄(無錢有罪)라는 우스꽝스러운 가십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무전유사(無錢有死)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한 우리는 답답할 뿐이다. 조만간 희귀 의약품처럼 구미에서 이미 임상에 인정된 경우에는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고 인정받은 의료진들이 예외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 장병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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