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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법]대한섬유 배만현 회장, 한 평생 도전과 봉사 ‘영원한 청년’

황무지가 숲으로…팔공산에서 20년간 ‘대한수목원’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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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8호 도기천⁄ 2013.05.27 11:36:32

대구 섬유업계의 산 증인, 나무(木) 박사, 기부 천사, 돌산을 수목원으로 바꾼 기적의 사나이, 라이온스 클럽 최연소 가입 기록… 대한섬유 배만현(70) 회장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배 회장은 섬유업이 전성기 시절인 1970년대에 대한섬유를 설립해 40여년을 좋은 옷감 만드는 일에 몰두해왔다. 최근에는 팔공산 자락의 돌산을 수목원으로 개간해 숲속에 묻혀 살고 있다. 대구 동구 중대동 ‘대한수목원’은 산세가 수려하기로 유명한 팔공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파계사 가는 방향으로 산길을 드라이브하다 보면 오른쪽 산자락에 ‘대한수목원’ 표지판이 보인다. 지난 3월부터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하면서 도로변에 소박한 푯말을 세워 뒀다. 표지판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어 구불구불 급경사 길을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눈앞이 휘둥그레진다. 주변은 온통 아름다운 나무와 숲, 연못, 정자, 꽃밭과 벤치로 덮여있다. 배 회장은 지난 1991년부터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곳은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온통 바위와 자갈뿐인 ‘돌산’이었다. 고향인 경상북도 칠곡에 세운 대한섬유 공장과 부지가 지방자치단체의 택지개발 사업으로 수용되면서 부득이 공장을 경북 고령으로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 받은 토지보상금으로 땅을 산 것이 오늘날 수목원의 시초가 됐다. 당시 배 회장의 지인들은 한사코 팔공산 개간을 만류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자 붐이 일고 있던 시절인지라 거금을 들여 그린벨트로 묶인 땅을 매입한 배 회장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눈동자와 손가락으로 수목원 설계” 배 회장은 손수 곡괭이와 삽을 들고 실성한 사람처럼 이 땅을 일궜다. 무려 20여 년 간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땅을 개간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고 한다. 뱀에 물려 고초를 겪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심지어 나무를 손질하다 추락해 중상을 입기도 했다. 돌을 옮기고 축대를 쌓으면서 손톱과 지문이 다 닳았다.

배 회장은 “눈동자와 손가락만으로 이곳을 설계했다”고 말한다. 산 전체가 돌로 덮인 황무지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꿔야 할지는 어차피 의미가 없었다. 불도저처럼 사력을 다해 산자락을 넓혀가는 것이 유일한 전술이고, 전략이었다.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 11만여㎡ 규모의 대한수목원 곳곳에 1800여 가지의 나무와 꽃이 심어졌다. 매실나무와 살구나무 등이 지천에 널려 숲을 이뤘다. 잔디밭, 산책로, 오솔길, 연못, 돌계단 등이 어우러져 동화 속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배 회장은 80만여 개 이상의 돌을 직접 손으로 깔아 계단과 길을 만들었다. 아담한 연못의 분수대에서는 사시사철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다. 산책로를 따라서 걷다 보면 포석정도 만날 수 있다. 아기자기한 풍경들, 새소리, 진한 숲 향기로 눈·코·입 모두 즐겁다. 식당, 찻집 등 부대시설들도 수목원의 명물이다. 휴게공간은 20~30년 된 느티나무 뿌리(괴목)를 잘라 손수 가공한 식탁, 의자 등으로 채워져 있다. 마치 요정들이 사는 나무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다. 배 회장은 어렸을 적부터 나무를 배우고 만져왔다고 한다. 지금도 늘 작업복을 입고 수목원 관리에 매달린다. 덕분에 이제는 ‘나무 박사’가 됐다. 소년 시절, 어머니가 선인장 몇 그루를 화분에 심어 방안에 두고 애지중지 하던 것을 보며 자랐는데, 놀랍게도 선인장의 용도는 긁히고 베인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제 역할이었다. 선인장을 끊어서 외상에 바르면 상처가 잘 아물었다. 배 회장은 선인장이 지혈과 윤활제 역할을 한다는 걸 깨닫고 그때부터 나무에 관심을 가졌다. 배 회장은 “나무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고 산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수목원이 적자지만, 대신 재물로 따질 수 없는 건강을 유지하며 산다는 게 큰 행복”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포목상에서 섬유업계 거목으로… 팔공산에 터를 잡기 전까지 배 회장은 대구 섬유업계의 산 전설로 통했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촌형 밑에서 포목점 점원으로 섬유를 처음 접했다. 이후 결혼하면서 독립해 1970년경부터 대구 서문시장에 포목점을 열었다. 그는 ‘옷감 고급화’ 전략에 승부를 걸었다. 서울 동대문시장까지 영업라인을 넓히며 고급 원단을 공급해 좋은 호응을 얻었다. 자신감이 붙자 1977년에 대구 섬유업계의 판도를 바꾸게 된 대한섬유를 설립했다.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가자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유명 재래시장 곳곳에 대한섬유 직영점을 둬 생산과 동시에 물량을 소화시켰다.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동대문시장 상인들이 앞다퉈 공장에서 원단을 떼어갔다. 이 원단은 남대문 봉제업체들에게 넘어갔고 거기서 완제품(옷)이 되어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980년대 대구 섬유업이 활황 시절을 맞으면서 대한섬유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배 회장은 “섬유는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중국 등 섬유 후발국들에 밀려 비록 섬유업계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고급화로 승부를 건다면 얼마든지 글로벌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는 게 배 회장의 지론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 요건이 의식주(衣食住)인데, 그 중에서도 옷(衣)이 가장 중요하다. 물건만 잘 만든다면 얼마든지 승산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대한섬유는 배 회장의 조카가 일선에서 경영하고 있고, 배 회장은 뒤로 물러난 상태다. 배 회장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통한다. 배 회장은 경북 칠곡(현 대구시 북국 국우동)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칠곡에서 대구 수성동 대륜고등학교까지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경북도청, 칠성시장, 신천로를 거쳐 왕복 6시간을 도보로 통학했다. 유우배달, 신문배달, 가정교사 등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워낙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다보니 약자들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안다. 수목원도 원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요양시설로 가꾸려고 했었다. 이웃, 친구들이 한데 모여 산을 일구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 배 회장의 포부다. 배 회장은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1977년, 33세의 나이에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했다. 당시는 최소 40세가 넘어야 가입할 수 있는 단체였다. 이후 캐나다 버나비시티 라이온스와 대구 라이온스가 자매결연을 맺자 배 회장은 선진국의 봉사활동 견학 차 캐나다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당시로서는 생소한 ‘장애인복지관’을 접했다. 가난한 어린시절… 약자를 위한 삶 결심 지역의 라이온스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복지관을 후원하는 시스템을 보고 겪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장애인복지관을 설립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발로 뛰며 발기인·후원인들을 모집해 마침내 1980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복지회관을 대구 수성구 파동에 설립했다. 복지관은 장애인을 위한 각종 교육, 자활프로그램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배 회장과 라이온스 회원들은 복지관을 비롯, 양로원·고아원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음식전달, 청소 등 자원봉사활동을 해왔다. 배 회장은 라이온스 가입 때부터 현재까지 정기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아 ‘100% 출석상’을 수상할 정도로 평생을 라이온스와 함께해 왔다. 40여년 간 수많은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서도 이름을 숨겨왔다. 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됐을 당시, 복지관장이 복지관에 나무를 기증해준 배 회장에게 ‘기증자 표지석’을 만들어 갖고 왔다. 배 회장은 그 표지석을 땅 속 깊이 파묻었다. 배 회장은 “오른팔이 하는 일을 왼팔이 모르게 하는 게 참다운 봉사”라고 말했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작은 포목상에서 섬유업의 거목(巨木)으로, 불모지를 숲으로 바꾼 뚝심의 사나이, 평생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 그가 이제는 대구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수목원)를 완성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이뤘다. 그래서 그는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배 회장에게 ‘쉼’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 평생을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그이기에, ‘배만현’이라는 거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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