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8호 최정숙⁄ 2013.05.27 11:39:02
요즘 정치권은 ‘갑을(甲乙)’ 논쟁이 한창이다. 여야는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갑을 논쟁을 계기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누리당은 ‘갑을 상생’을, 민주당은 ‘을 살리기’를 주장하며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22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쪽이 힘의 논리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면 갑을(甲乙) 모두 공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갑을 논란은 경제민주화의 범위이고,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의 총선과 대선 주요 공약인 만큼 당이 빈틈없이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 정책위에서는 6월 임시국회에서 ‘갑을 상생’ 도모 법안을 우선 처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을 마련 중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22일 ‘을을 지키기 위한 신문고’ 현판식을 갖고 “을의 편에 서서 을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고 풀어가는 것이 민주당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당에서는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 추진위원회’를 통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때 새누리당은 ‘100%를 위한 정당’을, 민주당은 ‘1%가 아닌 99%를 위한 정당’을 구호로 내건 바 있다. 최근 정치권의 갑을 논쟁은 대선 당시 프레임논쟁의 연장선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여야가 이같이 갑을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운찬 전 국무총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는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것’을 강조했다. ‘국민 편 가르기’가 아닌 이른바 ‘동반성장’이다. 정 전 총리는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배는 공정하게 하는 것이 동반성장”이라며 “동반성장을 돈 많은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동반성장은 파이를 크게 하되 공평하게 나누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말도 했다. 종합하자면, 정치권에서는 불공정한 갑을 관계 해소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고, 정 전 총리는 경제민주화를 동반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봤다. 결과적으로 ‘동반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모든 것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 전 총리는 지난해 6월 ‘동반성장 연구소’ 출범식을 가지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동반성장 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쟁과 이념논쟁이 아니다”며 “1%와 99%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동반성장 체제로 국가 시스템을 개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여가 다 돼 가는 지금도 정 전 총리의 이 같은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다. 다음은 20일 가진 정운찬 전 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와 일문일답. - 국무총리 시절부터 동반성장을 강조해왔다. 동반성장의 정의를 내린다면.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배는 공정하게 하는 것이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을 돈 많은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동반성장은 파이를 크게 하되 공평하게 나누자는 거다. 동반성장이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특히 2010년 12월 민간협의체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반성장’ 용어가 대중화 되는데 기여했다. 아직도 동반성장에 대해 말도 많고 오해도 많다. 동반성장에 특정색깔을 칠해 그 진정성과 핵심을 호도하려는 움직임도 잔존한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쟁과 이념논쟁이 아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와 올해 초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급부상했다. 그런데 동반성장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도 쓰는 사람마다 그 용어의 의미가 제각각이다.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의 기치 속에 들어 있는 올바른 알맹이가 다양한 논객들의 색깔론과 목소리에 가려 국민들만 혼란스러워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 동반성장에 특정색깔을 칠한다? 동반성장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뜻인가.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번영과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의 운영체계 자체가 정비돼야 한다. 이러한 정비를 위해 온건한 사회개혁은 필수다. 동반성장은 바로 이런 온건 개혁을 지향한다. 그런데 동반성장론을 둘러싼 오해가 많다. 우리 사회에 동반성장론이 튼실하게 뿌리내리려면 보수세력이든 급진(진보)세력이든 우선 색깔론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동반성장론은 보수세력에겐 급진이고, 급진세력에겐 보수로 보이기 쉽다. 실제로 대기업 등 보수세력은 기존의 불공정 분배틀에 기초한 기득권이 일부 조정되는 것에 대해 급진이라며 불편해한다. 노동운동가 등 급진세력은 ‘부분적 조정은 보수적 접근에 기초한 눈속임’이라고 매도한다. 동반성장론이 진정성을 갖고 이 사회의 근본 문제를 논리적으로 지적해도 보수와 급진 할 것 없이 ‘문제’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지적’만을 하며 분란을 키우는 형국이다. 이 같은 형국이 계속 되면 우리 사회는 머지않아 공멸의 내리막길로 갈 수도 있다. 보수와 급진 모두 하루 빨리 단기 시야를 벗어나 중장기 시야를 갖춰야 한다. 동반성장론을 구심점으로 다함께 지혜를 모아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 동반성장의 핵심은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선(先)성장, 후(後)분배의 관성 또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확립된 불공정한 분배관행과 기존 이해관계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자이든 가난한 자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 경제라는 배에 동승한 이상 더 이상 실기하면 모두에게 공멸이다.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한 맥킨지 보고서의 평가는 동반성장의 맥락에서 볼 때 의미심장한 경고로 해석된다.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개선 없이는 성장둔화를 피할 길이 없다. 선성장, 후분배하는 20세기의 낡은 전략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거다. 동반성장은 불공정분배의 관행을 공정하게 개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 추구’라는 목적을 갖고 있다. 또 ‘함께 가는 가운데 다 같이 성장하자(공존을 통한 성장)’와 ‘함께 나누는 가운데 다 같이 성장하자(분배를 통한 성장)’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결국 동반성장의 핵심 메시지는 ‘공존과 분배를 전제로 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거다. 동반성장은 20세기와 구분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동반성장에 실패하면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경제 전체가 붕괴돼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 반대로 성공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말했을 때 일부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창조경제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꼬기도 했다. 같은 선상에서 본다면 경제민주화가 어떤 것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노동자와 소비자들까지 기존의 수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 관계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어떤 개별 경제주체도 상대방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거래하지 않을 자유를 갖는 거다. 일례로 기업이 근로조건을 내놓았을 때 노동자가 이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경제력이 한 곳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 논의의 초점인 것도 이런 이유다. 경제민주화가 이뤄진 사회란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부문이 강건해 좋은 일자리가 많고 사회안전망이 적정 수준으로 갖춰진 것을 말한다. 또 경제력 집중이 존재하지 않고 노동권과 소비자 권리 등 공동체 구성원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말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측면의 동반성장, 즉 공존과 공정한 분배를 전제로 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특히 ‘공존과 공정한 분배’에 초점을 맞춰 이를 이루려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를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또는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거다. 이것은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보상적인 거다. 이는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이 납품가 후려치기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해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예컨대 8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같은 방안들은 기존의 불공정한 게임룰 아래 대기업으로 흘러갔을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유입되도록 교정하는 조치들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 학자금 융자에 혜택을 준다거나 군복무에서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국가기관, 예를 들면 KOTRA(코트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대학, 중소기업 등과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R&D(연구 개발) 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꿔야 한다. - 동반성장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이 있나. 첫째, 성장이 촉진된다. 우리나라 경제는 인구가 5000만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50-20 그룹에 속하게 됐다. 일본, 중국에 비해 국가신인도는 같거나 높아졌다. 그러나 투자가 부진해 잠재성장력은 떨어졌다. 대기업은 돈은 많지만 투자대상이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투자대상은 있지만 돈이 없다. 투자증진을 위해 대기업에는 첨단, 핵심기술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R&D의 방향전환, 즉 D에서 R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창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것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리적으로 중소기업에 흘러가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면 단기적 성장을 이루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둘째, 동반성장은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과 분열을 해소 하는 데 기여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약자들의 생활을 개선함으로써 사후적 복지수요를 줄이는 사전적 복지제도의 역할도 수행한다. 결과적으로 동반성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할 것이다. 또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은 무엇인지.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는 첫째 단계에서 조롱당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심한 반대에 부딪친다.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동반성장론은 지난 수년간 쇼펜하우어의 첫째와 둘째 단계를 거쳐 이제는 셋째 단계로 접근하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각 경제주체들이 상호 공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반성장은 이상으로만 남게 될 거다. 동반성장이 현실화 되려면 핵심 동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 중소기업의 자조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것이 바로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 재벌개혁으로 대변되는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경제민주화, 즉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철학이 확실해야 한다. 의지도 강해야 하고,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 또한 투철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 대통령 중 어떤 사람은 철학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의지가 약했고, 어떤 사람은 의지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현실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다. 철학과 의지와 인식, 그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확실한 철학과 강한 의지를 갖고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갖춘다면 재벌개혁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 최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