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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가 창조경제 核이다]이길순 에어비타 대표, 세상에 무모한 것은 없다

평범한 주부가 명품 공기청정기 개발, 비결은 ‘마음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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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35호 이성호⁄ 2013.07.15 13:39:51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전자제품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었다. 단지 소형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싶다는 신념 하나만 있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청계천 상가를 찾아다녔다. 결국 약 7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소형 공기청정기를 시장에 내놨다. 현재 독창적인 기술과 차별화된 제품으로 전 세계 2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공기청정기 분야 강자로 우뚝 선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이사(여·49) 이야기다. 독일 국제아이디어발명신제품전시회 동상,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회 금상 및 특별상, 발명의 날 대통령상·산업자원부장관상, 세계지적재산권협회 기업인상, 중소기업연구원 여성 기업인상, AT&D KOREA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선정 등은 그의 의지에 대한 훈장이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한 해 전 이길순 대표는 서울에서 빌라 3층에 살았다. 같은 빌라 반 지하에는 새댁이 살았고 3개월가량 된 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감기를 달고 살았으며 늘 아팠다고 한다. “여름철에 새댁이 살고 있는 반 지하 현관문을 열었더니 눅눅한 냄새가 심하더라고요. 아기 건강을 위해 공기청정기를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1987년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청정기가 대중화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제품을 알아봤는데 스위스제가 400만원 하는 등 고가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 월급이 50만원이던 시절이었으니 구입은 무리였다. 그러던 중 일본에 사는 언니 집에서 공공청정기를 봤다. 알아보니 일본에서는 이미 집집마다 공기청정기가 널리 보급돼 있었던 것. 순간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내가 직접 만들어 우리나라에 선보이자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자제품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던 터라 무작정 발로 뛰어다녔다. 당시(1990년대) 청계천 부품가게를 이 잡듯이 들쑤시고 다녔다.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다 보니 어느 가게 부품이 10원이 싸고 비싼지 파악할 정도가 됐다.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사람이 사랑을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덤벼들게 돼 있는 것 같아요(웃음). 공기청정기가 나에게는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소형 공기청정기 개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일본에서 지인의 소개로 한 개발자를 만났다. 그에게 조그마한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가능하다고 했다. 막막하던 이 대표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개발 작업이 진행됐고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7~8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개발자는 현재 에어비타의 기술이사를 맡고 있다. 에어비타가 내놓은 제품은 세계가 인정한 자체 보유기술(AICI, 복합 이온화)의 혁신품으로 음이온/살균이온 선택이 가능하며 공기정화 및 살균·항균·악취제거 기능을 갖췄다. 반 지하 새댁 아이 보며 공기청정기 떠올려 특히 필터를 교체할 필요가 없어 추가비용이 들지 않는다. 한 달 전기료는 100원 미만이다. 완제품과 제반사항을 모두 갖춘 뒤 드디어 2000년 10월에 ‘공기의 비타민’이라는 의미의 개인회사 ‘에어비타’를 설립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마디로 외면할 정도였다. “독창적인 특허 상품을 시장에 출시했지만 시장에서는 몰라주더라고요. 하지만 분명 사람들이 알아봐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남편 몰래 집까지 팔아가며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되뇌며 확신을 가졌다. 이후 2002년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시장에서의 매출은 제로였으나 눈을 해외로 돌려 일본에서 판로를 개척한 것이다. 그해 회사를 (주)에어비타로 법인화 했다. 서서히 독일·미국 등으로 수출 길을 넓혀 나갔다. 이 대표는 “소형 공기청정기로써 세계인이 인정하는 에어비타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진력해 나갈 것입니다. 비염을 앓고 있던 분이 에어비타 제품을 써보니 효과가 있었다는 말을 들려줬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17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5개의 특허가 출원 준비중이다. 에어비타의 기술개발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업초창기 힘든 일도 많았다. 공장에 불도 났다. 독일 QVC 홈쇼핑에 2만개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데 납기일 한 달을 앞두고 늦은 밤 공장에서 화재가 난 것이다. 당시 집에서 자고 있던 이 대표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차를 몰고 달려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납품날짜를 연기해 달라고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감쌌다. 그러나 대책을 강구했다. 결국 신용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납품기일을 맞추자고 판단을 내렸다. 전 직원이 달려들어 불철주야 철야 작업이 시작됐다. 박스 2만개를 일일이 손으로 접었고 속지까지 더하면 10만개를 접었다. 손바닥이 부르트고 벗겨지다 못해 피가 났다. “새살이 돋았지만 너무 많이 벗겨지다 보니 일반인에 비해 (손바닥)피부가 매우 얇아졌습니다”라며 당시를 떠 올렸다. 한 달 새 몸무게도 8kg이나 빠졌다. 마침내 납기일을 맞춰 선적 컨테이너 문을 닫고 차량이 출발한 순간 바로 쓰러졌다. 누적된 과로로 인한 것이었다. 공장 비용을 제때 내지 못해 쫓겨 난 적도 있다. 공장에서만 2번, 가압류도 3번이나 당했다. 질투와 시기 그리고 모략도 많았다. 독일 납품 앞두고 공장 화재…그리고 모략 언젠가는 A회사에 5000개 제품을 납품키로 거래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타 공기청정기 업체에서 A회사 대표에게 A4용지 2장 분량의 근거도 없는 악의적인 글을 보냈다. 결국 거래는 취소됐다. 대기업들도 포기한 소형 전자제품 시장에서 미니 공기청정기 하나를 들고 나타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무명의 여성 사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이 대표는 피눈물이 났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지금껏 살면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인생철학이다. “하지 마”, “안 돼” 등의 부정적 단어를 버리고 어떻게든지 되는 방향으로 바꾸려 생각해 왔다. 대표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직원들도 “시장성이 없습니다” 등의 보고는 하지 않는다. 이유인 즉, 시장성이 없으면 되게끔 뒤집어서 역발상을 하라는 따끔한 조언이 직원들에게 이미 각인된 탓이다. 이길순 대표는 여성 CEO로서 어려운 점을 술이라고 꼽았다. 체질적으로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어 전혀 술을 입에 못 댄다. 사출·금형·조립 등은 공장에 외주를 주고 있는데 공장 근무자들은 대부분 남자다. 같이 술도 먹으면서 어려운 사정 부탁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맨송맨송한 상태로 이야기 하려니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사장으로서 특유의 부드러움 등 장점도 많단다. 종교는 없지만 힘이 들 때면 108배를 한다. 늘 밝은 이유다. “사업을 하다가 누군가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 108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미운 마음이 지워집니다. 가슴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항상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들 땐 108배로 마음 다스려 에어비타 직원들은 이 대표의 또 다른 가족이다. 같이 생활하는 이들에게 부족하지만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다짐한다. 직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생각한다며 직원들과 함께 커나가는 회사를 꿈꾸고 있다. 에어비타가 소형 공기청정기를 선보였을 당시 국내 대형 전자회사들은 소형 전자제품에서 이미 발을 뺀 상황이었다. 틈새시장을 파고 든 것으로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벌써 10년이 넘게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에어비타의 성공 소식에 대기업 등도 소형 공기청정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게의치 않는단다. “주요업체들이 많이 참여하면 오히려 시장은 커지게 돼 있어 경쟁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내시장만 보고 있었다면 후발업체들로 인해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세계는 넓습니다. 애초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대표에게는 경쟁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신념이다. 에어비타는 현재 26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2010년 총 매출은 약 18억원에서 2011년 30억원, 2012년 38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6월말 기준 67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3년 목표는 150억원으로 잡았다. 폭발적인 매출증가의 비결은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본 소비자들의 입소문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10여 년간 축적된 제품 성능의 우수성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매년 해외수출과 국내 판매가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달랐습니다. 올해는 국내에서의 판매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외시장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어 내년 무렵에는 보다 큰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편, 주부로써 공기청정기를 개발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에어비타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묻기도 했다. 딸은 성장해서 현재 홍콩 회사에 다니고 있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CEO를 꿈꾸고 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는지 회사를 차려서 운영해 보고 싶다고 하는데, 딸에게 해보라고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 단, 국내에서는 하지 말고 세계시장 즉 넓은 곳을 무대로 사업을 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내시장에서 여성 사업가로서의 힘든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는 없다…세계시장이 경쟁자다 에어비타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점점 공기가 오염돼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아토피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염된 공기에 의한 질병 등 공기 속 세균과 냄새를 없애야 합니다. 예전에는 누가 물을 사먹겠느냐 했지만 요즘은 물을 사먹는 시대가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공기청정기는 필수입니다. 앞으로 더욱 커다란 시장이 열릴 것입니다.” 에어비타는 그에게 있어 자식과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신이다. 해 낼 수 있다는 고집 그리고 끝없는 믿음은 힘든 고비일 때 마다 더욱 샘솟았고 그를 지탱해왔다. “공기청정기는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는 사랑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사업 승산이 없다고 했었지만 믿음과 사랑으로 버텼습니다. 공기청정기 하면 ‘에어비타’가 떠올리게끔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이 회사목표이자 개인적인 꿈입니다.”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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