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9호 정의식⁄ 2013.08.12 14:19:37
임진왜란이 소나무 때문에 일어났다면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경북 대구 계명대학교 사학과 강판권(姜判權) 교수가 최근 출간한 책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는 임진왜란과 소나무의 연관성을 파헤쳐 신선한 화제를 낳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우연히 왜구들이 해안에 상륙해 소나무를 벌채, 약탈해갔다는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연구하다보니 쓰게 된 책입니다” 강 교수가 밝히는 출간의 변이다. 임진왜란과 소나무의 연관성 파헤치다 책에 따르면, 소나무는 임진왜란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조선을 지킨 수많은 함선의 재료로 사용되어 일본 수군을 제압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배들은 대개 재질이 무른 삼나무로 만들어져 내구성이 약했지요. 그에 비해 금강송(金剛松)으로 만든 조선의 배들은 일본 배들보다 훨씬 견고해서 해전 승리에 일조했습니다.” 조선 함선의 재료로 사용된 소나무는 지금도 도처에 흔히 보이는 구불구불한 소나무 일명 ‘안강형 소나무’가 아니다. 단단하기가 금강석(金剛石)에 견줄만하다는 ‘금강송’이다. 국내에서도 경상북도 울진이나 강원도와 서해안의 일부 해안가에서만 자라는 곧고 단단한 나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병선을 만들 수 있는 전국의 소나무 자생지가 수록되어 있었고, 조선 정부는 이를 국가적 전략물자로 관리했습니다. 국토방위의 핵심이 소나무 관리였던 거지요.” 왜구들은 이 소나무를 노렸다. 왜구의 기점은 쓰시마(對馬島)였다. 쓰시마 해적들은 우리나라 소나무를 노략질해 배를 만들려했다. 왜냐하면 일본 소나무가 우리 소나무와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 남부 지역에 널리 분포한 거대한 소나무들은 아열대 기후의 영향을 받아 빠르게 자라지만 내구성은 떨어진다. 조선의 금강송은 고정생장하기 때문에 느리게 자란다. 최소한 100년을 자라야 함선용 목재로 사용할 수 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엄격한 규정을 두고 소나무 자생지를 철저히 관리하려 노력했으나, 실제로는 생산에 비해 소비가 많아 관리가 어려웠다. 배를 만들어야할 우수한 소나무들이 왕족, 양반들의 토목·건축공사에 전용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무는 한반도를 외적의 침입에서 지켜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다. ‘조선의 수호신’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동양의 고전에서 나무를 배우다 이같은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강 박사가 인문학의 영역인 역사와 자연과학의 영역인 나무를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르네상스형 시각을 가진 연구자였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차점’. 강 박사의 연구는 바로 그 교차점에서 시작된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고교까지 집 근처에서 마쳤습니다. 대학은 대구에서 다녔지요. 이후 그 대학에서 교수 생활까지 하고 있으니, 고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말은 키워서 제주로 가고, 사람은 키워서 서울로 가는 세태에 영합하지 않은 것이 현재의 강 교수를 만든 결정적 요인일지도 모른다. 1961년 경남 창녕의 화왕산 기슭 농촌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며 자랐다. 자연이 가정이고, 농사는 생활이었다. 그런 그가 나무 전문가가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1981년 계명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원에서는 중국 청대사를 전공하면서 그는 다시 나무와 만나게 되었다. “원래는 청대 외교사를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학위를 받은 후 계속 집중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보니 농업을 선택하게 됐지요. 나무는 물론 벼, 보리, 밀, 콩 등 곡물과 관련한 청대 농업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뽕나무와 관련한 논문을 쓰다 나무를 학문적으로 계속 연구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유전자가 원래 농업과 나무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역사학과 나무를 함께 연구하는 나무박사가 된 계기다. 2003년 그는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라는 색다른 제목의 서적을 출간했다. 동양 고전의 대표격인 사서삼경에 등장하는 나무 얘기를 다룬 책이다. 그에 따르면 “시경(詩經)은 식물을 빼면 읽을 게 없다.”고 한다. 유전자에 각인된 농업과 나무, 학문으로 연결 공자가 아들에게 “시경을 읽지 않으면 인정과 도리에 통하지 못하여 말을 바르게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시경에 대한 공부를 강조한 것은 잘 알려진 고사다. 그런데 그 시경이 식물 백과사전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식물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인용하는 기본 텍스트가 시경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뽕나무’다. 시경의 ‘상중(桑中)’이라는 시의 ‘상(桑)’이 곧 뽕나무다. ‘상중’이라는 시가는 ‘님도 보고 뽕도 따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 중국 주(周)나라 때 밖에 나가지 못하던 여자들이 농한기에 뽕잎을 따러가서 이성을 만났던 것을 표현한 시가다. 이 외에도 시경에는 수많은 나무 관련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두 번째 텍스트는 인류 최초의 사전이랄 수 있는 ‘이아(爾雅)’다. 전국시대 맹자가 공부했던 ‘이아’는 나무를 20여 항목에 걸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나무 이해는 ‘시경’과 ‘이아’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나무 이해는 우리나라 나무 이해의 근본이지요. 우리나라 나무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왔고, 그 이해도 중국에 근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리학의 세계화, 한국이 앞장설 때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그렇게 나무를 중요하게 본 것일까? “나무가 공부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유학 특히 성리학의 기본 이념인 ‘공부(工夫)’는 송대(宋代)에 등장했지요. 성리학에 따르면 삼라만상이 공부의 대상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지요.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른다’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사물을 직접 보고 깨닫는 것. 고대부터 내려온 공부의 기본 방법이지요.” 강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성리학적 공부 이론은 근대화의 시대에는 서구 이론에 밀려 통하지 않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다시 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적 바탕이 유학과 불교라며, 이중 유학을 발전시킨 성리학을 현대에 맞게 체계화하고 세계화하는 역할을 우리 한국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가 공유한 성리학의 가치를 세계적 가치로 확장, 적용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상과 철학을 이야기할 때 성리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핵심을 빼놓고 서구의 것을 추구해봐야 아류에 머무를 뿐 서구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삼라만상이 공부의 대상이고, 나무를 중심으로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아시아적 가치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그는 한겨레신문에 ‘나무와 성리학’이라는 칼럼을 연재중이다.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나무는 뽕(桑)나무와 차(茶)나무입니다. 그래서 ‘중국을 낳은 뽕나무’와 ‘차 한 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라는 두 권의 책을 집필했지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와 ‘은행나무’라고 봅니다. 소나무는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를 수호한 역사적 나무이고, 은행나무는 성균관과 서원같은 유교 관련 장소에 반드시 있는데, 이는 중국의 경우 살구나무를 심지만, 우리나라는 은행나무를 심지요. 중국의 것이 우리나라에 와서 바뀐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는 무엇일까? “일본의 대표 수종(樹種)은 남쪽 나라, 교토 지방의 경우 삼나무와 금송(金松), 편백나무입니다. 남부 아열대를 대표하는 수종이지요. 키가 크고 빨리 자라지만 무릅니다.” 동양 삼국을 대표하는 나무들 그에 따르면, 일본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크고 전반적으로 거대한 목재들이 사용된 것이 토양적·기후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옛 건축물들이 그에 비해 작은 것들도 나무의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나무는 속성수로 빠르게 자랍니다. 반면 소나무는 느리게 자라지요. 한옥 건축의 여러 양식, 서까래 등도 나무의 재질과 강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무의 성질을 알아야 동아시아의 목조 건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중국 자금성의 건축에 사용된 주요 목재들은 ‘녹나무’다. 20미터가 넘게 자라 목재로 쓰기 좋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아열대 환경의 나무다. 중국에서도 절강성 등 남부 지방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강판권 교수는 스스로를 ‘쥐똥나무’로 지칭한다. 본인에게 그런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의 나무를 정해 스스로 나무가 되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이름 짓고 불러줘 보세요. 하나의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되면 주변의 나무들이 새롭게 보일 겁니다. 1년 내내 한 나무를 좋아하며 관찰해보면 나무의 모든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때 예를 들어 느티나무의 경우,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 꽃 피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한번 발견해보면 더욱 깊이 알고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찰나에 작은 혁명이 일어납니다.” 60살 넘은 그의 지인 중 한 분은 60년 만에 처음으로 단풍나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놀라움이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럼 주변의 나무들이 어떤 나무인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감을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세요. 정 모르겠다면 저의 책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 사전’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215종의 나무에 대해 어원과 유래 등 모든 것을 밝혀놨습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이 사랑하는 한국의 대표수종 ‘소나무’의 ‘솔’은 ‘으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단풍(丹楓)의 한자는 ‘붉은 바람개비’를 의미한다. 단풍잎의 모양을 표현한 한자다.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뜻이다. 느릅나무는 껍질이 너덜너덜해서 느릅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렇게 주위의 나무들 10종만 알아볼 수 있게 되도, 나무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고, 30종을 알면 국내 대부분의 나무를 알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 되면 온천지가 나무입니다. 그걸 보는 법을 알고 사랑할 줄만 알면, 매일매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강판권 교수는 자신의 나무 연구를 ‘수학(樹學)’이라고 표현한다. 지금까지 수학 관련 서적을 14권 집필했다. 앞으로 40권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것을 위해 강 교수는 정년 이후 죽을 때까지의 집필 계획을 정해 놨다. 현재 집필중인 책은 앞서 말했던 ‘나무와 성리학(가제)’. 동양 철학의 정수인 성리학과 나무의 연관을 짚을 계획이다. 나무 이름 짓기에서 시작하는 작은 혁명 이외에도 그는 전국의 유명한 숲을 방문해 쓰는 답사기 ‘숲과 상상력(가제)’, 산림청 지원으로 황사 문제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청대 황토고원과 황사 문제(가제)’ 등을 집필하고 있다. 그 다음 프로젝트는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산림정책에 대한 연구’다. 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대부분 일제시대 들어온 수종으로, 일제가 대규모로 치밀하게 우리나라에서 산림정책을 추진했지만, 현재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과거 조선시대까지의 자료와 해방 후 서구식 방법론에 기초한 자료만 연구중이라고. 강 교수는 한국 산림사의 빈 공백이면서도 현재까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제시대의 산림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나무가 환경과 인류의 생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단순히 숫자와 통계로 분석하는 나무가 아니라, 역사학과 인류학, 철학의 시야로 나무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나무박사 강판권 교수의 지적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