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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기 문화 칼럼]인간과 동물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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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2호 박현준⁄ 2013.09.02 14:10:09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던 동물들의 상징적 의미들은 숱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 어떤 동물은 부정적 의식 때문에 꿈에서라도 나타나면 재수없다고 여겨지고, 어떤 동물은 귀엽지도 않고 해로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숭배의 대상이다. 이러한 의식은 그 동물의 외모나 일상생활에서 해롭거나 이로운 점을 떠나서 그 민족의 문화 속에서 형성된다. 동물민속은 과거, 현재, 미래전설(?)처럼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재수없는 동물이었던 사슴, 노루는 ‘목가지가 긴 고고한 동물’로, 원숭이의 단장(斷腸)의 슬픔이 ‘님이 넘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의미 변환이 이루어졌다. 민속에는 짐승들의 출몰과 울음소리, 우는 시기, 동작 등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길흉화복이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려는 풍속이 있다. 꿈에 돼지를 보면 부자가 되거나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이고, 아침에 동쪽에서 들리는 까치소리는 좋은 소식이 온다는 징조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아침 까치소리와 거미는 복을 불러오는 것으로 환영을 했다. 옛날 얘기를 보면 동물은 나이가 들면 사람이나 다른 짐승으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 호랑이는 천년을 살면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다. 특히 산신이 된다. 뱀이나 물고기가 천년이 되면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사람도 때로는 은혜를 잊고 몰인정하는 수가 있는데, 동물이 사람의 은혜에 감동하여 주인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에 나타나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도 많다. 민속에서는 다양한 동물들이 제각기 어떤 의미를 지니면서 나타난다. 우리 선조들은 주위에서 보이는 미미한 동물들의 모습이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도 세심히 관찰하고 생활 속에서도 동행하였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에 보면 “자연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남을 꺾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과 손을 잡음으로써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과 손을 잡기를 싫어하는 것들은 소멸하고, 남과 손을 잡은 동물과 식물들은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만이 독불장군처럼 영원히 살 수 없다. 동·식물의 생태계를 포함한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이용했기에 환경의 위기에 처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동행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인간계의 대척점에 있는 동물계와 식물계를 배려하는 것이 함께 사는 길이며, 그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몇 년 전 모 일간지에 개와 관련하여 기고한 적이 있다.“우리는 보통 형편없이 잘못 쓴 글씨를 “쇠발개발”이라고 한다. 눈 위에 찍혀 있는 소나 개 발자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나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미련한 사람을 곰같다 하고 머리가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하며 교활한 사람을 여우같다고 하고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한다. 더구나 개를 빗대어 하는 욕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개의 충직성을 잘 아는 인간들이 할 말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혹 자연 속에서 가장 못된 존재를 빗대어 비난할 때 “인간같은 놈!”이라고 하진 않을까? 나는 동물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천만 다행이다.”이 글의 제목이 “인간같은 놈(?)”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행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자연 속의 동행자로서, 미래의 동반자로서 인간의 삶과 동물의 삶이 조화를 이룰 때 생태계는 건강해지고 지구는 더욱 푸르러질 것이다.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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