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호 정찬대⁄ 2013.11.29 18:05:05
진보정치가 오랜 침체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제2창당 작업을 완료한 정의당(옛 진보정의당)이 천호선 대표를 새롭게 꾸리고 진보정당의 재기를 위한 본격적인 혁신 작업에 돌입했다. 스스로를 ‘덜’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지칭한 천호선 대표는 “진보의 가치는 계승하되 현대적인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겠다”며 체제 변화를 예고했다. 취임(7월21일) 한 달 만에 시민의 품(노숙농성)으로 달려간 천 대표는 정치가 실종된 작금의 상황을 우려했다. 옆집 삼촌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녔지만, 현 정국을 논할 때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과감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진보정치의 척박한 토양 위에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는 천호선 정의당 대표를 지난 3일 CNB가 직접 만나봤다. 천막농성과 국정원사태 관련 - 천막농성 2주가 지났다. 힘든 점은 없나. 몸은 견딜 만하다. 농성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소음인데, 나보다 앞서 천막농성에 들어간 민주당 김한길 대표도 이에 대한 어려움을 언급한 바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다 보니 낮엔 행사가 많고, 밤에는 행사장 철거문제로 소음이 적잖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며칠 간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요즘은 그나마 더위가 꺾여 지낼 만하다. -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촛불을 든 채 광장에 모이고 있는데.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국민적 비판의식이 촛불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석기 의원 사태에도 불구하고 촛불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과거 광우병 파동 때처럼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문제가 아니다보니 수만에 이르는 폭발적 행동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태도 여하에 따라 비약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분명 잠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팟캐스트 방송에서 ‘대통령의 품격’을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지시한 적 없고, 아는 바도 없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도움 받은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됐다. 국정원은 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선거에 개입했다. 국정원의 댓글작업도, 이를 왜곡 발표한 경찰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해명은 말이 안 된다. 만에 하나 도움 받은 것이 없다손 치더라도 ‘도움 받지 않았으니 나와 무관하다’는 입장은 곤란하다. 당락에 영향을 끼칠 수준이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을 돕기 위해 국가기관이 불법을 행했다면 이에 대한 포괄적 책임으로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것이 대통령의 품격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내가 몰랐으니 나와 무관하다는 윤리의식을 갖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박 대통령의 품격’을 말한 것이다. - 야당의 거듭된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사과하면 대통령으로써의 권위와 정당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를 좀 버렸으면 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소통할 것은 소통하는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권위도 서는 것이다. - 국정원 사태와 관련 특검을 요구하고 있는데. 특검을 하면 좋겠지만 특검이 촛불 또는 야당의 실질적인 요구라고 보진 않는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파탄나면서 ‘노숙농성’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 대표들이 장외투쟁을 하고 거리로 나선 것은 박 대통령이 결단해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또 다른 표현이다. 처벌할 사람들은 처벌하고, 국정원 개혁도 대통령이 직접 천명해 실천하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다. 국정원을 저 상태로 둔다면 ‘남은 임기동안 충성해라, 그럼 어느 정도 불법을 봐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비칠 수 있다. 결국 국정원 사태의 해결책은 박 대통령 결단의 문제라고 보여 진다. -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인물로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실문제, 어떻게 보는가.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입법을 주도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기록물은 자료를 생산하고, 보관해서 이를 잘 활용하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아울러 관련 내용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하자는 뜻도 갖고 있다. 어떤 자료를 만들 때 숨길 내용이 있다면 폐기하거나 대통령기록물로 15년 이상 지정해 놓으면 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속기록을 만들어 국정원에 한부 주라고 지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를 숨기고자 대통령기록관에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앞뒤가 전혀 안 맞는다. 노 전 대통령이 숨기려고 했다면 국정원에 주지 않고, 대통령비서실에 녹취를 풀라고 지시한 뒤 기록물로 지정해 버리면 된다. 대화록 한부를 국정원에 넘겨준 이유는 상대 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어가고, 이를 위한 참고자료로 쓰라는 배려의 차원이었다. 뭔가 미심쩍어서 대통령기록관에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화록을 왜 못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없는 것인지 아니면 못 찾은 것인지…. 분명한 것은 참여정부가 이를 숨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애당초 국정원에 자료를 주지도 않았다. 이석기 사태와 진보정치 관련 - 이석기 의원 사태, 어떻게 보는가. 국정원이 이 시기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국정원이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도 않았다. 녹취록이 사실일지라도 내란음모죄를 구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실제로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입증의 책임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녹취록 내용은 대게 사실로 보여 진다. 처음에는 사실인지 아닌지 이 의원과 통진당 지도부의 얘기를 기다렸지만, 반론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속기록 내용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헌법을 토대로 활동하는 국회의원과 정당의 간부로써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유치하며, 실현가능성도 낮다. 사법적 판단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해야할 문제라고 보여 진다. -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처리, 어떻게 생각하나.(인터뷰는 체포동의안 가결 하루 전에 이뤄진 것임) 체포동의안 표결처리는 사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이 의원의 혐의 내용을 보고 수사를 받을 때 불체포 특권을 해제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표결에 찬성한다고 해서 국정원이 보고한 혐의내용을 모두 다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녹취록이 대부분 진실이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의원 또한 특권을 버리고 수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 체포동의안과 관련, 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체포동의안에 찬성한다면 그 혐의 내용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에 반대한다면 이 의원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양 극단으로 이해되는 대목 때문에 우리도 고민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할 생각이다.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체포동의안의 당초 뜻보다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에 대한 걱정을 갖고 있고, 이는 우리가 감수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인터뷰가 끝난 뒤 ‘광역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를 갖고 체포동의안 찬성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 이 의원 문제에 대해 당초 ‘신중론’을 폈다가 최근 ‘선긋기’에 나선 것처럼 비치는데. 지금도 신중하다. 처음 녹취록이 공개됐을 때 판단을 유보하고, 당사자들의 해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해명을 놓고 볼 때 녹취록이 사실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판단에 근거해 우리 당의 정치적 입장과 행동을 결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도 신중하게 한 단계 한 단계 판단하고 있다. -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따갑다. 진보정치가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정치개혁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누구보다 서민을 투철하게 대변해왔다. 그런데 운동권의 연장선에 있다 보니 독선주의나 패권주의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맞고 남들은 틀리다고 하는,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가치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경직성 내지는 폐쇄성이 아직까지 제대로 극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계에 부딪친 것이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진보정치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들려줘야 할 때라고 본다. - 이석기 의원 사태로 진보정치 전반에 적잖은 타격이 가해질 것 같은데. 물론 진보진영에 굉장히 안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진보’와 ‘다른 진보’를 구별해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대표 취임사에서 2년 내 대표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인가. 관련이 있다. 대표정당이 되겠다는 것은 진보정치의 가치는 유지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모범적인 정당,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풀어야할 숙제 중 하나가 진보의 건강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과정을 통해 건강한 진보와 그렇지 않은 진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본다. 당내 문제 및 선거 관련 - 당대표 취임 40여일이 지났다. 사람들은 정의당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당의 단기적인 지지율 상승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진보정치의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독선주의적 성격과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달까지 혁신의 방향을 잡았다면 이제는 그 혁신을 실천하는 단계다. 지금은 체제를 정비하고, 당내 조직과 시스템을 정비하는 과정에 있다. 다만, 천막농성으로 인해 혁신의 속도가 느려진 점은 걱정이다. - 당대표에 당선됐을 때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다. 정통진보세력 내에서 ‘덜’ 진보적인 내가 당대표가 됐다. 민주당 이력이나 청와대에서의 국정운영 경험도 그렇다. 과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해오긴 했지만 그 가치를 온전히 지키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시비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와 같은 사람과 정통적으로 진보정치를 해왔던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 진보정치의 지평을 넓힌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원들이 나를 선택해준 것은 그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 10월 재보선,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9월 중반쯤 선거구가 확정될 것 같은데, 일단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낼 수는 없다. 선거를 치를만한 지역은 1~3개 정도로 압축될 것 같다. 그 중 한두 군데 정도는 후보를 내야하지 않겠느냐 해서 현재 내부 검토 중에 있다. 아직 혁신의 진행 과정이기 때문에 큰 소리 칠 순 없어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자신은 있다. -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연대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야권연대의 필요성은 재보선이 끝난 이후에나 논의될 것 같다. 다만, 야권연대가 이뤄진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과거처럼 후보를 하나로 만드는 것도 국민적 비판을 살 수 있다. 우리 당은 작은 정당이지만 독자적으로 간다는 전제 하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단 좋은 후보를 최대한 많이 내고, 승산이 있는 지역은 올 가을부터 치밀하게 준비할 계획이다. -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또한 지녔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가능성일 뿐 그것이 어떤 비전인지, 어떤 구상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지, 안 의원이 어떤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향후 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재보선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지 않겠나 생각한다. - 앞으로 각오가 있다면. 기존의 진보가치는 지키되 현대적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책과 행동양식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임기 마지막에는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진보정치를 복권시키고, 국민적 사랑을 받음으로써 진보진영의 대표정당이 ‘정의당’이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 - 정찬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