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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정 큐레이터 다이어리]영국에서 만난 ‘화이트큐브’

운명에 체념 않고 예술 개척하는 ‘척 클로스’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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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9호 박현준⁄ 2013.10.21 14:54:46

따스한 봄, 영국의 상징인 2층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를 누빈다. 버스에 내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가면서도 이내 마음이 불안했다. “이런 곳에 갤러리가?” 하는 의혹을 지닌 채 영국 특유의 집과 고즈넉한 골목을 지나 터덜터덜 발길을 옮기던 중 갑자기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시골 마을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국적인 건물,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필자를 반겨주었다. 이곳은 런던의 라디오 타임즈의 운송센터였던 창고를 개조한 곳으로,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를 알린 대표적인 갤러리로서 런던 시내에만 세 곳이 있는데 여기는 그 중 런던 버먼지(Bermondsey)에 위치해 있다. 안토니 곰리의 조각전, 데미언 허스트와 도리스 살세도, 트레이시예민이 전시를 한 그 곳! 그 곳에서 나는 오늘 ‘척 클로스’ 를 만난다. 척 클로스(Chuck Close)는 1940년 태생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다. 주변 인물들의 초상화를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그리는 방법으로 유명하다. 초상화의 미학 ‘척 클로스’ 1960년대 중반 그의 작업은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의 영향으로 대상의 인물사진을 찍어서 초상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1972년 이래 지금까지 대형사이즈의 판화작업을 하였다. 인물사진을 기반으로 제작한 그의 판화작업들은 메조틴트, 에칭, 실크스크린, 펄프페이퍼 등 매체로서 판화장르의 폭을 넓혀왔다.

이 전시공간에 ‘Chuck Close, Prints: Process and Collaboration’ 라는 부제로 작가의 40여년(1970년대~현재)의 판화의 작업과정들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작업영상, 인터뷰 내용까지 모두 소개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 온 삶의 로드맵과 같은 것입니다. 좀 더 강력한 인상을 준다며 내용을 고조시켜서 초상을 부풀릴 필요도 없어요. 나는 절대 사람들이 웃거나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중립적으로 보여주면 돼요. 정직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펑! 찍는 교도소 사진처럼 말입니다. 경찰이 원하는 정보가 내가 원하는 정보예요. 즉 있는 그대로의 정보, 아무것도 부풀리지 않아도, 정서적 내용을 딱히 강화하지 않아도, 사람의 얼굴 자체에 많은 정보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지요.” - 척 클로스 사람의 ‘얼굴’ 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가답게 수많은 사람의 초상화들이 화이트 큐브에 전시되어 있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다’ 고 말하는 ‘척 클로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가감 (加減) 없는 인물 그대로의 모습이 느껴진다. 작품의 주인공 대부분은 인생경험이 풍부한 지긋한 사람들로 여권 사진처럼 작품에 배경을 제외한 사람의 얼굴만을 포커스로 하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인물의 눈, 코, 입, 주름 하나까지 그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작가 척 클로스는 모든 범위의 인간경험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었다.

얼굴 하나에 담긴 인생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관상’ 은 사람의 얼굴이라는 소재를 운명과 결부시키는 관상쟁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이다. 전통적으로 관상을 기반으로 한 동양 문화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나 모양을 기반으로 그 사람의 운명이나 수명을 점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의 생김새를 통하여 단순한 외양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코드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일종의 통계학이었다. 척클로스의 작품 역시 이러한 관상을 바탕으로 초상화의 주인공이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작품 ‘Susan’ 의 정돈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릿결, 꽉 다물지 않은 입술, 탄력을 잃은 피부, 깊게 파 들어간 눈망울 속 슬픈 눈동자 등의 세밀한 묘사들은 세월의 흔적을 통한 인생의 깊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척클로스 작품은 통계학의 보편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믿는 ‘관상’ 과는 달리 인간 개개인이 살아온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삶’ 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모두가 인생을 살지만 모두가 다른 삶을 산다고 말하는 듯한 척클로스의 작품들에는 작가 본인의 자화상이 녹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연 척클로스는 본인의 작품을 통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고통 속에서 꽃피운 예술 필자가 영화 ‘관상’ 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관상을 믿지 않은 주인공의 아들이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는 면접관 질문에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하는 답변하는 장면이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는 자신의 장애와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극중 인물로부터 나는 척 클로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니멀리즘 기법의 극사실 인물그림과 판화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현대미술 거장 척클로스! 그는 척추 혈관이 손상돼 하반신이 마비를 겪고 있다. 또한 어린 시절 안면인식 장애자와 난독증을 앓던 학습지진아였다. 그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삶을 포기하였다면 지금의 위대한 작품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난독증으로 인하여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안면 인식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초상화를 그렸던 척클로스를 통해서 필자는 힘든 인생 역경을 겪으면서도 운명에 체념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불굴의 의지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 원미정 갤러리그림손 큐레이터(정리=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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