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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기 문화 칼럼]우리의 전통 염료는 대자연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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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1호 박현준⁄ 2013.11.04 14:37:31

대자연은 물감의 보고(寶庫)이다. 산야에 자생하고 있는 온갖 식물의 줄기와 껍질, 열매, 잎, 뿌리 속에는 여러 가지 물감이 들어 있고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활용하였다. 식물 염료는 다양하여 50여종 이상이다. 지지·황련·꼭두서니·울금 등은 뿌리에서, 소방목·팥배나무·오배자나무·향나무는 줄기에서, 황벽·도토리·밤은 껍질에서, 쪽과 신초는 잎에서, 잇꽃·금잔화·해바라기·괴화 등은 꽃에서, 치자·석류·연실·포도·흑태는 열매에서 가지각색의 색깔들을 만들어 냈다.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나타난 홍색·청색·황색·녹색 등 각 색상의 옷을 입은 생활풍속도, 백제에서 16품위의 관위를 색대로 표시한 제도, 신라에서도 품계에 따라 자색·비색·청색·황색의 옷을 입게 했던 제도로 보아 염색 기술의 발달과 색문화(色文化)의 다양함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우리 민족의 색체관념은 음향오행의 우주관에서 나왔다. 오방색(五方正色)은 좌청룡의 청색, 우백호인 백색, 남주작인 붉은색, 북현무인 검은색, 중간의 황색이다. 이 오방정색을 기본으로 사이색인 홍(紅)·벽(碧)·류(?) 등 천연 염료로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은 자연을 입는 것이다. 전통 염색에 사용되는 식물 염료는 공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병의 치료약도 된다. 또한 전통 생활색은 색상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염색 천의 특징적인 재질감을 십분 살려준다. 그리고 자연 염료는 섬유를 더욱 질기게 하며 좀벌레나 악취 등 환경 재해에 대한 보호막 구실까지도 해준다. 전통 염색 소재가 대부분 한양 의약제인 점을 상기할 때 피부 건강이나 인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쪽물을 들인 삼베 속곳은 피부병 치료의 처방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다. 황벽·황련은 방충성이 있고, 쪽은 살균성이 있으면, 잇꽃·치자는 위장병 치료 및 피부병 치료제가 된다. 또, 염료 식물의 색은 주성분이 혼합물인 경우가 많아 깊은 맛의 색이 우러나오며 자연스럽게 보인다.

천연 염료로 물들인 빛깔은 결코 튀는 법이 없이 다른 색과 잘 어울린다. 화학 염료로 물들인 옷은 빛깔이 좀 곱다 싶으면 서로 잘난 체하고 다른 색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튄다. 그러나 자연의 빛깔은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깊이가 있고 무게가 있어 결코 촐랑거리지 않고, 또 자신의 빛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서로 잘 어울린다. 화학 염료는 햇볕을 받아 퇴색하기 시작하면 마치 퇴기(退妓)처럼 추해지게 마련인데 자연 염료의 빛깔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단아하고 깊어져 정결한 어머니 같은 느낌을 준다. 화학 염료로 치장된 도시의 옷은 복잡하고 현란스러워 눈을 따갑게 하지만 자연 염료의 빛깔은 부드럽고 유순하고 간결하여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이 피로하지 않다. 마치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보리밭이나, 너무 찬란하여 일순 현란하게 보이는 석양이나 가을 단풍처럼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기분을 상쾌하게 할 뿐 결코 싫은 느낌이나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로 천연 염료로 염색한 옷을 해 입는다는 건 단순히 옷을 입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입는 것이다. 쪽빛만 하더라도 그렇다. 높고 깊은 가을 하늘의 빛깔인 듯,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넘치는 법도 없는 깊고 깊은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빛깔 같은 쪽빛은 영원한 청춘의 빛깔이요, 쪽물이 지나간 옷감에 올올이 생기가 감돈다.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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