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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그림에서 관상을 읽다

예술을 바라보는 자세에 사람들의 성향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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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1호 박현준⁄ 2013.11.04 14:45:59

관상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하는 시각적 언어, 즉 이미지다. 지나온 인생과 미래에 대한 야심은 얼굴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필자는 운명론을 부정해왔다. 행복과 불행이 선택에 의한 것이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인상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와 노력은 결국 좋은 관상이 인생을 좋은 운명으로 이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애초에 비운명론이란 성립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치아를 드러내거나 웃음소리를 내지 않아도 웃는 인상을 풍기는 것이 진정한 내공이자 영향력이라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관상은 외관으로 뚫고 나온 내면의 그림이다. 필자는 사람들로부터 첫인상과 대화를 나눈 후의 인상이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아직 내면의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추구하는 내면과 외면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탓인 듯하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표정 짓지 않아도, 존중 받을 수 있는 아우라를 지니는 것이 필자 생각으로는 인생에 있어 궁극적으로 지향해 볼 만한 가치이다. 최근 관객 수 900만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영화 ‘관상’은 보이는 모습과 운명과의 관계, 나아가 치열한 분석 끝의 허무함에 대한 잔상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은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산속에 칩거하다가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에서 사람들의 관상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관상으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게 되면서 내경은 용한 관상쟁이로 소문이 나고 ‘김종서’(백윤식)의 명으로 사헌부를 도와 인재 등용 임무를 맡는다.

후에 임금으로부터 역모를 꾀하는 자를 찾아내라는 어명을 받기에 이른다. ‘내경’은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를 막으려 하지만 수양 측의 음모에 말린 팽헌의 밀고로 김종서의 수양 제거 계획은 실패한다. 덩달아 역적의 집안이라는 운명을 넘어서고자 벼슬시험을 통해 궁에 입궐한 아들 진형의 죽음까지 부른다. 영화 중반쯤 역적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임금이 보낸 그림을 전달하는 척하며 내경이 관상을 파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관상을 보려고 시간을 벌려는 의도와 함께 예술을 바라보는 자세를 통해서도 그 사람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금은 예술이 투자의 대상으로 그 영역이 확장됐지만, 당시만 해도 예술은 세속을 벗어난 것, 풍류 그 자체였다. 따라서 예술에 심취하는 사람은 미적 경험을 즐기는 데에 삶의 의의를 두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거리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왕에게 하사받은 작품을 우선 여유롭게 감상하는 자와 보낸 이유부터 생각하는 자는 표정부터가 다르다. 갤러리스트에게 작품은 관상가 ‘내경’ 미술작품을 앞에 두고 사람의 영혼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작품을 대하는 눈빛, 작품을 보며 꺼내는 말, 그리고 표정을 통해 정서가 맑은지 아니면 탁기가 자욱한지를 어느 정도 느낀다.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의지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부터 무언가 감흥에 벅차 좋은 작품들을 전시해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 사진만 가볍게 찍고 떠나는 사람, 조용히 오랜 시간 마음에 담고 가는 사람, 동행한 사람과 호기심 어린 즐거운 대화를 나누거나 반대로 작품을 깎아내리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 작품에 대한 오랜 관조 끝에 작품 가격을 묻는 사람, 작품의 투자가치만을 묻는 사람, 작가의 출신 학교나 나이를 묻는 사람, 자신이 샀던 다른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 어디서나 대접받는 고객임을 못 알아보았다고 역정을 내는 사람, 작품보다는 큐레이터에게 흥미를 보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이다. 이 정도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그 사람의 전반적인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예술작품의 묘한 에너지 중 하나다. 흥미롭게도 갤러리스트에게 있어 작품은 관상가 내경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역으로 관객에게 있어 작품은 갤러리스트의 성향을 감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친절히 작품의 내용에 관한 설명을 해주려는 사람, 작품의 가격과 작가의 경력에만 치중해서 설명하는 사람, 미술에 애착은 없이 사업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람, 유명한 재력가나 구매의사를 보이는 고객에게는 과도한 친절을 베풀고 반면 관람만을 할 것 같으면 냉랭한 태도로 불편하게 하는 사람 등을 통해 관객은 그 갤러리스트가 알량한 사기꾼인지 합리적인지 전문성이나 열정의 크기를 읽을 수 있다. 내경 앞에서 연홍은 자신의 신분을 거짓으로 말하지만 속일 수 없었다. 이처럼 예술 앞에서도 사람 본연의 모습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내경의 마지막 대사는 미래를 예측해도 매번 운명을 긍정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여운을 남긴다. “거대한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만 보았지 시대의 바람을 보지 못했다.” 바람은 파도를 일으킨다. 시대의 운명 속에 혁명가 수양은 파도였고 변화를 막으려 했던 김종서는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 한 줌의 모래였다. 바람은 어차피 막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는 여운은 정해진 운명에 대한 비관론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에 대한 허무함을 깨우치게 하는 교훈이다.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일에 관심 없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에는 무심할 때가 많다. 모두 현재보다는 미래가 몹시 궁금하다. 현재의 점들이 미래로 가는 선형을 갖추게 하는 원소임을 인지한다면 관상가를 찾아가기 전에 예술 앞에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은 어떨까. - 신 민 진화랑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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