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호 심원섭⁄ 2013.11.04 15:03:06
“원격진료를 허용하기 전에 사전에 충분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안 된 상황에서 큰 혼란을 가져올 위험성이 큰 원격진료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지난 10월 30일 의협회관에서 정부의 ‘원격진료를 허용 의료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관련해 CNB저널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아울러 노 회장은 “인터넷 진료, 화상진료를 허용하는 정부의 섣부른 실험은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 회장은 “정부가 그동안 전문가 집단인 대한의사협회의 강력한 반대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 채 원격진료 허용 법안을 밀어 붙였다”며 “향후 의료시스템의 붕괴와 의료기관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노 회장은 “그동안 11만 대한민국 의사들이 정부가 원격진료를 강행할 경우 벌어질 상황에 대해 누누이 경고했음에도 고집한다면 의사들은 올바른 의료제도를 위해 정부와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고 정부에 경고했다. 다음은 10월 30일 오후 의협회관에서 가진 노환규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정부가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환자간의 원격진료를 허용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의사협회에서는 왜 반대하며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이번에 정부가 입법을 예고한 법안은 환자가 컴퓨터ㆍ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전을 발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진료하던 대면진료가 컴퓨터를 통해 진료하는 것으로 대체된다는 것으로 진료의 개념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의료계 내의 질서라고 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뒤바뀌어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오진의 위험성과 책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그리고 원격기기의 품질의 안전성과 표준화가 마련되어야 하는 등 원격진료를 허용하기 전에 사전에 충분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연구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에서 큰 혼란을 가져올 위험성이 큰 원격진료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원격진료는 현재 의사협회뿐 아니라 한의사협회에서도 반대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에 약사회와 간호사협회 그리고 시민단체들도 반대에 동참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연대하고 국민들을 이해시켜 반대여론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 보건복지부가 장관의 공석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와 환자, 시민단체 등이 입을 모아 반대하는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강행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서두를 이유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서둘러 원격의료법을 개정하려는 이유는 세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새 정부가 미래창조산업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그 배경에 있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는 대기업들이 의료계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새롭게 재편되는 의료시장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의료의 성격과 원격의료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출발한 정부와 산업계의 과도한 환상과 낙관주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원격의료와 유헬스의 가능성에 대해 몇 번 언급하자 원격의료에 대한 경제부처들의 발걸음이 무척 빨라진 것도 원격의료법안의 입법예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정부는 내년 1월 임시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인데 법률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는가. “정부는 지난 2009년에도 원격의료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고 당시 규제개혁위원회까지 통과되어 사실상 국회본회의 통과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번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정부가 조용히 입법예고를 진행했었고, 당시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의 위험성을 간과해 강력히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정부의 의지가 강력하고, 또 그 반대의 목소리도 강력하다. 정부가 4년 전과 달리 강력히 원격의료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나는 이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 의사협회의 정치세력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오랫동안 의사들은 환자 진료에만 전념해왔으며 의료제도에 대해 무관심해왔으나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진료가 의료제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료제도가 의료현장을 일일이 관여하는 것으로 곧 법이고, 대다수 의료제도가 정치적인 이유로 만들어지거나 바뀌고 있었다. 더구나 의료제도, 즉 법을 만드는 이들은 국회의원들이고 이를 실행하는 사람도 정치조직인 정부였다. 따라서 올바른 의료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현재 활동하는 의사는 10만 여명에 달하며 한 사람이 하루에 30명의 환자를 본다고 가정하면 의사들이 하루에 만나는 환자들은 300만명에 달한다. 의사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의사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들이 정체적 영향력을 키워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의사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길이다. 따라서 올바른 의료제도란 정부가 국민을 속이며 생색을 내는 의료제도가 아닌, 국민과 의료기관 그리고 정부가 모두 만족하는 의료제도를 만들기 위해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 올 초 대한의학회와 공동으로 선포한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선언’을 철회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들은 처방의 대가로 제약회사로부터 받는 의약품 리베이트 때문에 많은 질타를 받아왔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처방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것은 의사의 정당한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협회는 올해 초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선언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의사나 제약회사가 아닌 약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하는 정부에 있었다. 제약회사는 높은 이윤이 보장되어 있어 그것으로 리베이트를 만들어 의사와 약사들에게 제공하면서 영업을 해 온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정부는 의약품 리베이트와 관련해 두 가지 거짓말을 했다. 첫째는 의약품 리베이트가 의사들의 요구에 의해 생긴다고 한 것이며 두 번째는 의약품 리베이트로 인해 건강보험재정이 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약사들에게 제공된 리베이트는 약값에 반영되어 건강보험재정에서 지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 놓은 제약회사의 이윤에서 지출되는 상황에서 의사협회는 제약회사에 ‘리베이트를 받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주었고, 정부에는 불투명한 약가결정구조를 투명하게 바꿀 것과 ‘의사정 협의체를 만들어 합법과 불법이 모호한 리베이트쌍벌제를 올바르게 개선하자’는 주문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요구는 듣지 않은 채 최근 ‘저가약 대체조제 장려금제도’라는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즉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이 아닌, 제약회사의 돈에서 의사에게 지급되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불법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사협회는 리베이트 단절선언을 재고하겠다고 한 것이다.”
- 최근 일어난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 등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는가. “리베이트가 발생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즉 연구와 신약개발능력이 부족한 경쟁력 없는 제약회사들, 그리고 신약개발을 할 필요가 없도록 정부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놓은 약값은 제약회사들로 하여금 손쉬운 리베이트영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하고 낮은 보험수가 제도 속에서 경영난에 부딪힌 의사들 역시 리베이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서는 리베이트 사건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리베이트 쌍벌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조차 모호하다. 이에 따라 억울한 피해자들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 의료기관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없는가. “의료기관의 양극화는 최악의 상황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네의원 간에도 양극화가 심하고, 병원간의 양극화도 심하며 대형병원과 의원간 양극화는 더 할 나위 없이 심각한 상태다. 의료의 양극화는 1차의료기관(동네의원)의 붕괴를 가져오고 중소병원 및 지방병원의 도태의 요인이 된다. 이로 인하여 의료접근성의 저하 및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경영개선이 어려운 실정에 놓인 1차의료기관과 중소병원 그리고 지방병원들이 비정상적인 경영수지개선 방법을 찾게 됨에 따라 의료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양극화를 위한 근본적 제도개선 방안은 첫째 건강보험료를 적정수준으로 인상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며, 둘째 선택진료비를 급여화하고 및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병원에서 경증환자 진료를 억제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하는데, 중대형병원이 의원과 경쟁하면서 외래진료에 매달리지 않도록 병원급 의료기관의 중증질환 치료비를 대폭 상향조정하고 외래진료비를 하향조정하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단순 경증질환에 대한 외래진료비를 대폭 하향조정해야 할 것이며 외래진료비 총액을 억제해야 한다. 또한 상급병원 단순환자 비율 상한제와 같은 병원급 의료기관의 외래진료 억제책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상급종합병원이 연구와 교육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예: 연구중심병원 지정시 재정지원) 병원 외래에 차등수가제를 적용함으로써 대형병원의 외래진료 무한확대를 억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증질환 및 만성질환관리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세제 경감의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사가 병원급 의료기관의 시설을 활용하여 환자를 진료하도록 병원을 개방하는 제도인 개방형 병원제도 활용도 양극화의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 의사를 꿈꾸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중학교 시절 급성 충수염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병실에 걸려있던 위 해부도와 새벽마다 혈압 및 맥박을 체크하기 위해 병실을 찾았던 간호사의 손길에서 의료의 숭고함을 느끼게 된 것이 의사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로 유명한 탈주범 지강헌과의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연유로 만났는가.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하고 있던 1988년 지강헌이 총에 맞고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목에 유리로 자해한 자상이 있었고 무릎 부위와 복부에 총상이 있었다. 총상의 모양과 각도를 보아 무릎을 관통한 총알이 다시 복부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부 팽창이 심해지고 쇼크 상태가 악화되어 긴급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아쉽게도 당시 의료진들은 응급실을 가득 메운 언론사가 부담스러웠던지 수술을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지강헌은 응급실에서 나 혼자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생을 마쳤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 광경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 의사생활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있다면… “1980년대 후반 당시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의국은 혹독한 수련과정으로 유명했다. 1년차 전공의는 일주일에 반나절씩 집에 갈 수 있어 30일 중 26일을 당직하지만, 4년차 Chief Resident는 오히려 30일 중 28일 이상을 당직하기 일쑤였다. 병원이 직장이고 직장이 곧 집인 생활이었다. 24시간 환자 곁에 있으니 어떠한 응급상황에서도 즉각적인 처치가 가능했다. 그 때문에 ‘바로 그 순간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환자가 살 수 있었다’고 자부하던 일들이 자주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들이 의사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낀 순간을 말한다면 1993년 아버님께서 관상동맥수술을 받으신 후 의사 아들로서 효도를 했던 순간이다. 수술 다음 날 아버님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모든 의사들이 회진을 떠났는데 중환자실에 계시던 아버님께서 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하셨다. 흉부엑스선 사진을 확인해 보니 수술 중 열린 좌측 흉막을 통해 수술부위의 출혈이 폐로 많이 넘어가 폐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들 회진을 떠난 터라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내가 직접 아버님의 가슴에 아프지 않게 흉관을 넣었고 아버님은 즉시 편안해 하셨다. 그 순간만큼은 힘든 흉부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반대로 혹시 후회스럽다거나 안타까웠던 일이나 상황은 없었는가. “안타까웠던 일은 올해 초, 한겨레신문에 격주로 약 10회 동안 주말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제가 병원에서 의사로서 겪은 일들 중 기억이 나는 특별한 사건들을 연재했었는데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일들은 대부분 극적으로 살아난 환자들보다 가슴 아프게 환자들을 잃었던 아쉬운 순간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안타까웠던 일들을 환자를 잃게 된 모든 순간들이었다. 사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의사협회장이 되어, 잘못된 수많은 의료제도를 바꿔야하는 실로 무거운 책임이 어깨에 얹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무게를 느낄 때 의사가 되어 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후회할 때가 있다.” - 다음달 3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거행된 한일 커플 ‘늦은 결혼식’의 주례를 서는 것 알고 있다. 어떤 인연인가. “신랑이나 신부와 개인적인 인연은 없고 재일한인의사회 회장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주례를 맡게 되었다. 최근 신랑을 만나 사정을 알아보니 신랑의 어머님이 대단한 분이셨다. 직접 청와대에 편지를 써서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주례를 맡게 된 것도 재일한인의사회 회장에게 직접 부탁을 하신 것이었다. 신랑의 어머님 덕분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또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신랑의 어머님께서는 또 최근 내게 아들을 소개하는 장문의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주셨다. 아직 뵙지 못했지만 내게도 적지 않은 것을 깨우쳐주신 분이다.” - 은퇴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사로 불리기를 바라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의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어쩌면 국민들은 저를 ‘나쁜 의사협회장’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대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에게 ‘관치의료를 타파하고 의사들이 패배의식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한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잘못된 의료제도의 근본적인 원인 때문에 때로는 의사들이 양심을 저버려야 하는 일도 늘어나는 등 의료현장의 왜곡이 갈수록 심화되었지만 힘을 가진 정부와 국민의 불신 사이에서 의사들은 좀처럼 용기를 내기 어려웠다.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봐야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었다. 저는 의사들이 잊고 있던 권리의식을 깨우기 위해 노력했고, 의사들이 의사로서의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환자를 위한 권리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사의 권리회복은 의사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 심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