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호 정의식⁄ 2013.11.11 11:47:42
창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의 역사는 창립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1993)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페루치오의 고성능 수퍼카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이뤄낸 결과가 바로 람보르기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차에 대한 열정을 가진 비즈니스맨이자 공상가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이탈리안 기업가 람보르기니는 ‘빠른 차’를 사랑했다. 이미 소년시절, 주변의 모든 기계들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볼로냐 기술 대학에서 엔지니어링 학위를 취득했다. 1946년 농업 기계회사를 설립해 2·3·4기통 디젤 엔진 트랙터를 생산해 한 달에 400대 가량을 판매했다. 그의 회사는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농산물 제조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재규어, 메르세데스-벤츠, 페라리, 마세라티 등 다양한 슈퍼 럭셔리카를 소유하고 있었던 람보르기니는 갑자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슈퍼카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잘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자신이 몰던 ‘페라리 250GT’에 대한 개선점을 들고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후 그는 복수심으로 람보르기니 사를 창립하게 됐다는 것이다.
람보르기니의 황소 로고도 페라리의 말이 그려진 방패 로고를 겨냥해 만들어졌다. 페라리 로고를 우측에 두면 쇠뿔에 말이 받혀 날뛰는 듯한 그림이 된다. 페루치오가 태어난 달의 별자리가 바로 황소자리다. 1962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볼로냐 인근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장을 짓고, 최정예 기술자들을 끌어 모아 최고의 슈퍼카 브랜드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Automobili Lamborghini)’를 설립했다. 수퍼카 ‘미우라’ 탄생 이듬해인 1963년 람보르기니는 토리노 모터쇼에서 12기통 엔진이 장착된 첫 번째 모델 ‘350GTV’를 공개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후 후속 모델인 ‘400GT’까지 잇따라 성공시켜 ‘슈퍼카 제작 시도는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던 업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1966년은 람보르기니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해로 기억된다. 당대 최고의 명차이자 지금까지도 최고의 슈퍼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우라(Miura)’가 탄생한 해이기 때문이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최초 공개된 미우라는 V12 4000cc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 출력 350마력에 6.2초 만에 100km/h에 이르며, 최고 속도 280km/h라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성능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였다.
미우라가 슈퍼카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최초로 미드십(엔진을 운전석 뒤쪽에 배치해 차량의 전후 밸런스를 이상적으로 맞춘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미우라 이후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능가하는 슈퍼카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미우라에서 시작된 미드십 방식은 경쟁사인 페라리를 비롯해 타 브랜드도 잇따라 채택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정통 슈퍼카의 상징처럼 이어지고 있다. 람보르기니의 위기와 부활 미우라의 인기로 상승일로를 걷던 창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1970년대 트랙터 사업에서 시작된 위기로 1973년 람보르기니 자동차의 지분 모두를 스위스 투자사에 넘기고 은퇴한다. 람보르기니는 은퇴 후 이탈리아 엄브리아주에 있던 그의 포도동산에서 남은 여생을 멋진 와인 생산에 바쳤다. ‘미우라의 피’로 알려진 ‘Colli Del Transiment’라는 적포도주를 생산하던 그는 1993년 2월 20일 7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페루치오의 은퇴 이후 닥친 오일쇼크는 결정타였다. 슈퍼카들의 판매가 급전직하하면서 결국 1978년 람보르기니는 파산하고 만다. 이후 스위스의 투자가인 밈란 형제가 파산한 람보르기니의 공장을 인수한 이후 ‘카운타크(Countach)’의 개발 및 출시를 적극 지원해 1980년대의 부활을 이끌었다. 1974년에 생산된 카운타크는 최고 시속이 300km/h에 달해 ‘지상 최고의 스포츠카’라는 별칭을 얻었다.
오일쇼크 위기의 와중에서도 후속 모델인 카운타크의 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이 람보르기니 회생의 발판이 됐다. 람보르기니의 부활을 이끈 밈란 형제들은 크라이슬러에 회사를 넘겼으며, 크라이슬러 산하에서 람보르기니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슈퍼카인 ‘디아블로’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모회사였던 크라이슬러는 재정난을 겪으면서 1994년 인도네시아의 부호인 토미 수하르토가 이끄는 투자자 그룹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았다. 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은 수하르토 가문은 디아블로의 후속모델 개발비용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람보르기니는 1998년 8월 아우디에 인수되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다. 아우디와 손잡은 이후 람보르기니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아우디의 든든한 지원 아래 개발한 ‘무르시엘라고’는 2001년 출시 이후 12기통 슈퍼카 시장에서 최고의 모델로 각광받았으며, 곧 이어 2002년 출시된 ‘베이비 람보르기니’라고도 불리는 ‘가야르도’는 V10 엔진을 탑재하고 고객층을 한층 더 확대했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연간 2000대 내외의 꾸준한 판매량을 이어오고 있다. 1963년에서 2002년까지 연간 250대에 불과했던 판매대수는 가야르도가 투입되면서 2008년에는 9배 증가한 연간 2430대를 판매해 사상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2년 판매대수는 2083대다.
가야르도와 아벤타도르 투 트랙 오늘날 람보르기니는 ‘가야르도(Gallardo)’와 ‘아벤타도르(Aventador)’ 두 개의 제품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가야르도는 투우 역사상 전설적인 맹우로 명성을 떨쳤던 소의 이름이다. 2003년 제네바 오토살롱을 통해 데뷔한 가야르도는 지금까지 약 1만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모델로, 후륜구동 슈퍼카에서 컨버터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가야르도 라인업에는 공통적으로 5.2리터 V10 엔진이 후방에 세로 형식으로 탑재되며, 출력은 550마력에서 최대 570마력에 이른다. 최고 속도는 320~325km로 동급 최강의 성능을 자랑한다. 형태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순수함을 지향한 디자인과 성능을 보여주는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성공한 슈퍼 스포츠카 가야르도를 타고 움직이는 매 순간은 폭발적 역동성과 완전한 제어력의 경험이다. ‘아벤타도르’ 역시 스페인 투우 역사상 가장 용감했던 황소에서 이름을 따왔다. 슈퍼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아온 ‘무르시엘라고’의 후속모델이자 람보르기니의 플래그십 모델인 아벤타도르는 숨막히는 주행성능과 디자인의 정점을 보여주는 라인업 최강 모델이다.
슈퍼카의 핵심인 초경량화와 강력한 주행성능, 그리고 미래지향적 내·외관 디자인 요소를 고루 갖춘 최근 모델 ‘아벤타도르 LP700-4’는 V12 엔진이 탑재되어 700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며, 최대 토크 70.4kg.m로 모든 드라이빙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성을 보여준다. 최고 속도는 350km/h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2.9초밖에 걸리지 않는 폭발적인 주행성능을 보유했다. 차체 전체에 적용된 경량화 기술 덕분에 총 중량은 1572kg이며, 무게당 마력비는 2.25kg으로 동급 최강이다. 황소의 뿔처럼 홀로 달려온 슈퍼스포츠카 람보르기니는 심미적 욕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디자인이 아닌 최고 성능의 ‘슈퍼카’를 구현하기 위해 완벽한 내외관 디자인을 추구해왔다. 2004년 개관한 디자인 센터 ‘센트로 스틸레(Centro Stile)’는 람보르기니 고유의 정신에 혁신적인 미적 요소와 최고의 기술력을 더하여 전통적인 이탈리안 스타일의 슈퍼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덕분에 황소 마크를 달고 탄생하는 모든 슈퍼카는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디자인에 이탈리안 고유의 정확성을 겸비한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장에서는 숙련된 전문 기술공들의 수공업으로 공정의 대부분이 진행될 뿐만 아니라, 고객이 취향과 개성을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만의 슈퍼카를 꿈꾸는 고객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고 있다. 표준 및 옵션으로 제공되지 않는 본인만의 컬러나 소재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애드 페르소남(Ad Personam)’이라는 개별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슈퍼 스포츠카 소유자의 기대와 소원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철학이 들어있다.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라’를 모토로 하는 애드 페르소남은 고객이 인테리어 트림이나 차량 외부에 자신의 스타일을 각인할 수 있는 옵션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