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4호(창간) 왕진오⁄ 2013.11.25 13:06:55
"버티는 것이 만만치 않네요" 개관 30주년을 맞은 박여숙 화랑의 박여숙 대표의 일성이다. 30년 전 당시로서는 예술 불모지였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연 박여숙 화랑이 그동안의 발자취를 담은 전시를 마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여숙(60) 대표는 대학생 때 화랑과 인연을 맺었다.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결혼을 했지만 미술에 대한 호기심은 포기할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공간 스페이스 편집부에 근무하면서 미술과 인연을 이어갔던 그는 예화랑에서 6개월간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미술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결혼 이후 임신 6개월이었던 1983년 당시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랑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남편과 엄청 의견대립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화랑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여숙 화랑'이 됐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화상이 된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인 동시에 좀 더 빨리 화랑가에서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의미이기도 했다.
당시는 전통과 현대를 함께 아우르는 인사동에 화랑들이 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압구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자신의 집과 가깝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개관 첫 전시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점선 (1946∼2009)화백이었다. 자신도 신인이고 김점선 역시 신인이라는 점에 주목을 한 것이다. 당시 화랑가에서는 인기 있는 몇몇 작가들이 여러 화랑들에서 동시에 소개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는 인기 작가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작품을 가져다 전시를 할 때 여서 더욱 의외로 여겨졌다. 박 대표는 당시를 "유명 작가들에게 웃돈까지 주고 작품을 가지고 올 여윳돈도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생각한 화상으로써의 역할에도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가 30여 년을 넘게 화랑가에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그 작가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성숙해 가는 과정을 함께 돕고 싶었다는 초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박여숙 대표가 개관 30주년 기념전을 앞두고 그 동안의 어려웠던 속내를 풀어냈다. 미술계가 호황이었던 2007년 아트펀드를 조성해 운용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아트펀드가 오히려 부채로 작용해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펀드가 정직하게 쓰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자금을 빼돌리고 해외로 도피하는 일까지 발생하던 터이라 주변의 시선이 따가운 정도를 넘어 각종 루머까지 나돌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갑작스럽게 그림 가격이 떨어지고, 가지고 있는 그림도 팔리지 않으니 고스란히 펀드 자금이 빛이 됐다"며 "다른 금융기관과 협력을 해서 올해 104억을 다 갚게 됐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또 "지금 국내 미술시장이 너무 죽어 있어서 재미는 없다. 최근 고객들이 잘 오지를 않고, 화랑을 찾는 것이 무슨 죄를 짓는 것 같은 사회 풍조도 어려움을 더하는 것 같다"며 "30년 화상 생활가운데 최근 2∼3년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고난의 30년 지나, 도약의 발판 마련 더없이 치열한 미술판에서 박 대표는 풍부한 감성과 안정된 정서를 지닌 화상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조용하고 정확한 말투와 언어, 그것에 더하는 부드러움. 그것보다 더욱 단호한 스타일에 대한 원칙까지. 어쩌면 그 점들이 그의 성공 요인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스타일뿐 아니라 삶에 대한 스타일의 원칙 역시 지니고 있다.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표준이나 일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표현방법을 뜻한다면 그것은 자신만의 품위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박 대표가 삶에 대한 스타일, 즉 ‘품위마저’ 지닌 ‘성공한’ 여성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한편 서울 청담동 박여숙 화랑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칼라풀 코리아'(COLORFUL KOREA)전을 마련한다. 30년을 기념하는 의미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신호탄의 성격이 강하데 드리운다.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와 화랑의 공동 기획으로 한국 현대 회화의 대표 작가 김환기, 김종학, 이대원과 사진작가 배병우, 염장 한광석의 작품을 '한국의 색'이란 주제로 전시장에 걸었다. 한국 근현대 회화사 중 서양의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전통을 모티브로 거대한 색채의 축제를 담아낸다. 김환기, 김종학 그리고 이대원 등 한국 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세 작가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한국의 색채미를 찾는 거장들이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