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난 고미숙은 가풍 덕분에 대학원까지 공부에 전념했다. 전공은 독문학이었지만, 대학(고려대) 4년 때 우연히 참가한 고전문학 강의에 매료되어 대학원에서는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고전평론가는 그가 만든 직업이다.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고전의 눈으로 현대를 진단하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만나 고전 공부의 의미와 방법론을 물어보았다. - 초보자가 고전 공부를 시작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가? 논어부터 금강경, 노자, 장자 등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번역본이 있다. 열하일기나 목민심서 등 유명한 문학가들, 철학자들의 고전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다. 초심자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교재는 ‘논어(論語)’다. 논어는 중국과 한국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지금도 계속 새 책이 나오는데 그건 팔리기 때문이다. 물론 논어를 읽고 바로 그 뜻과 깊이와 재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치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가까운 열하일기나 퇴계, 허균 등 스승들의 텍스트를 통하면 조금 더 리얼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있는 ‘감이당’은 의역학과 인문학 위주로 공부하고, 여기 강학원은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과학이나 이성을 연마하는 장소다. 기본 베이스는 고전이지만 실제로는 현대과학과 서양철학 등 모든 분야를 다 공부 한다. 세미나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강의마다 100명쯤 참석하는데 10대에서 7080세대까지 다양하게 온다. - 현대인이 ‘공부’라 하면 아무래도 영어나 지식 습득 위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어떤 공부인가? 실생활에 필요한 공부는 스마트폰으로 다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실용성이 떨어졌다. 스마트폰이 못하는 공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걸 연구하는 것, 그게 진짜 ‘공부’다. 영어나 뭐 그런 것들은 디지털 기술이 조만간 해결해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 그런 물음에 스마트폰이 답할 수 있을까?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가 추구했던 생사의 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걸 찾는 게 여기서 하는 공부다. - 스마트폰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지성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인류는 이전의 어떤 문명도 이루지 못한 것을 스마트폰을 통해 이루었다. 손안에 전 세계의 도서관이 다 있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 세상은 반드시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축복 뒤에는 파괴가 있다. 이 안에 온갖 인간의 욕망을 들끓게 하는 중독과 상품의 세계가 들어있다. 이게 따로 갈 수 없다. 좋은 면만 얻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다. 스마트폰의 존재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중독되고 몸을 망치고 어마어마한 번뇌를 겪게 될 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스마트폰 중독은 정(精)·기(氣)·신(身)이 망가지는 루트를 밟고 있다. 문명은 그 안에 천국과 지옥이 같이 있다. 그래서 파괴력을 말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바꾸려 한다. 공포인데 떼놓고 살 수는 없다면 이것을 활용하는 능동적 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에 ‘몸과 인문학’이라는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 프리랜서로 쭉 사시면서 백수 예찬론을 폈는데. 노동을 신성시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된 악습이다. 노동하지 않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을 천시한다. 그런데 인류역사를 끌어온 것은 백수들이다. 공자, 노자, 부처도 그렇고 소크라테스까지 백수 아닌 사람이 없다. 백수들이 철학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발전해왔다. 그리스시대에는 귀족과 자유인은 직업이 없었다. 노예가 정규직이고, 일만 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브라만은 직업이 없고, 사·농·공·상의 사(士)도 직업이 아니다. 농공상은 직업이고, 직업 없는 계층이 고귀했다. 직업이 없는 이유는 진리를 탐구하고 정신의 세계를 일구는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가 원했던 자유는 바로 이렇게 모두가 자유인이 되어 진리 탐구와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유였는데, 자본주의가 이를 전도시켜버렸다. 법적으로 모두에게 평등을 주었지만, 모두가 일하게 된 것 뿐이다. 노동하는 인간을 고귀하다고 믿게 만들어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 벌어 뭐 할래” 물으면 “놀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이미 놀고 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행복도가 더 높은 게 그런 이유다. 근데 그런 나라 사람들을 개조해서 기어코 공장에 가게 만드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화였고, 한국은 그걸 너무 열심히 따랐다. 다들 돈 벌고 싶어 하는데 그 다음에 뭐 할지는 모른다. 철학이 없는 거다. -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놀이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몸은 어느 정도의 만족을 넘으면 쾌락이 고갈된다. 인간은 유희와 자유를 좋아한다. 어떤 장소에서 하루 열 시간씩 갇혀 일하는 그런 건 노예의 삶이다. 이걸 참는 이유가 예전엔 애국, 민족 뭐 이런 거창한 대의명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졌다. 그렇게 참아서 돈 번 후 술과 섹스로 푼다. 폭탄주 마시고 이러는 게 보상을 받으려는 거다. 이는 동의보감식으로 말하면 반양생(反養生)적인 행동이다. 일할 때 스트레스 받고, 놀면서 간과 심장을 다치게 하는데, 이걸 안하는 게 양생(養生)이다. -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도 괜찮다는 얘기인가? 나는 앞으로 “백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일단 일자리가 별로 늘어나지 않고 있다. 기계가 너무 발전해서. 어떤 경제학자도 더 이상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할 것이라 예측한다. 스마트폰 혁명이 빈부격차를 거의 줄였다. 빈곤한 사람들도 다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안에 인류가 만든 지식, 지혜, 쾌락 등 모든 것이 들었다. 공공자산이 많아서 어딜 가나 좋은 도서관과 공원이 있다. 도시락 싸가서 공부하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만간 광장이나 도서관에서 철학을 할 것이라 본다. 중년 백수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원래 인간은 자유인의 본능이 있다. 뼈 빠지게 일하느니 책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해방하고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줬다. 그런데 왜 학력이 높아져도 일하는 시간은 더 길어지나? 100년 전 경제학자들은 이정도 생산력이 되면 4시간만 일할 거라 생각했다. 칼 맑스가 생각한 혁명도 4시간 노동하고, 4시간 낚시하고, 시를 읊고, 저녁엔 평론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노동해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르조아도 일을 너무 한다. 대기업 회장님들 얘기를 봐도 걱정이 된다.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이 뭘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 그것이 고전 시대로의 회귀인가? 그렇다. 시대의 감성이 달라지고, 프리랜서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일을 좀 하다가 돈을 좀 벌면 여행을 하고, 어디 가서 좀 배우고, 어디서 좀 살다가, 어디를 또 가고, 이게 그리스·로마 철학을 이끌어내고, 공자와 부처가 산 삶의 방식이다. 공자가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했는데, 당시엔 성인이 되면 통과의례로 천하를 다니면서 체험을 했다. 걸어서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다. 지금은 비행기로 세계가 좁아졌다. 덕분에 열하를 수도 없이 다녀왔고 공자의 고향을 둘러보고 살다 왔다. 책을 읽고, 여행하고, 돌아와서 글을 쓰는, 이런 방식으로 사는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 향후 집필 계획은? 책을 쓴다는 건 힘든 작업이다. 매번 힘들지만 매번 최선을 다한다. 자식을 낳는 것과 비슷하다. 열하일기 관련 서적을 3권 내고, 잠깐 임꺽정 관련 서적을 냈다가, 동의보감 관련 서적 3권을 냈다. 지금은 18세기 근세조선을 살았던 두 천재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라이벌로 보고 주변인물들까지 다루는 ‘연암·다산 라이벌 평전 3종 세트’ 집필을 준비중이다. 다산 그룹은 형제들과 남인 그룹들 위주고, 연암 그룹은 계층과 나이가 아주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암과 다산의 인생을 설명하는 좋은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 정의식 기자